아버지와 나는 요즘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자주 마주한다. 대기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번호를 기다린다. 아내의 농담처럼 내 스케줄표의 주요 일정은 병원 방문이다.
예전의 아버지는 병원을 혼자 드나들며 의사와 대화도 거뜬히 해내셨다. 진료 내용을 요약해 집에 돌아와선, 약 봉투를 들여다보는 아내에게 설명도 해주셨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아직은 건강하시구나' 하며 안도하곤 했다.
하지만 두 달 전 치과에서 벌어진 작은 사건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상담 과정에서 어딘가 놓친 부분이 생겼고, 치료 계획을 잘못 이해하신 채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그때부터 나는 아버지 곁에서 보호자 노릇을 자처했다. 원하셔서라기보다 내 마음이 그리 기울어 버렸다.
정작 아버지는 내 동행이 썩 달갑지 않아 보인다. 차 안에서 내가 늘어놓는 잔소리가 귀에 거슬릴 것이다. 룸미러로 보니 가만히 두어도 괜찮은 부분까지 내가 앞서 챙기려 든다는 얼굴로 아버지의 표정이 굳는다.
얼마 전 일이다. 아버지는 혼자 버스를 타고 이비인후과에 가겠다며 집을 나서셨다. 전날 연락해 모시러 가겠다고 몇 번이고 말씀드렸는데도 이미 출발해 버리신 뒤였다. 당황스러웠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이 뭉클해졌다.
‘아버지가 아직 스스로 해내고 싶으시구나.’
나는 급히 버스 노선을 확인해 전화를 걸어 알려 드리고, 곧장 뒤따라 병원으로 향했다. 대기실에서 나를 발견한 아버지는 뭐 하러 왔냐며 특유의 시크한 말투로 나를 맞이했다. 마스크 뒤에서는 분명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 창밖을 바라보는 아버지 옆에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보호자 행세를 하고 있지만, 어쩌면 내가 아버지의 보호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아버지와의 관계는 병원이라는 낯선 무대를 배경으로 다시 쓰이고 있다. 그곳에서 나는 아버지의 나이 듦을 배우고, 나의 서툰 돌봄을 연습한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따뜻하다.
어쩌면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버지와 내가 함께한 가장 선명한 장면들이 병원 복도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병원에 갔다. 동행이 아니라, 아버지와 관계를 이어가는 또 다른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