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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고 나서야 채울 수 있는 것들

by 아마토르

"돈 주고 사라고 해도 못 고르겠어."

나만의 공간을 찾고 있다.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책을 읽고, 마음을 나누는 작은 아지트 하나를. 운이 따른다면 마음에 쏙 들었던 그곳을 다음 주에는 계약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공간이 정해지기도 전에 마음은 벌써 인테리어 구상으로 설레기 시작했다.

스타필드 마켓에서 본 감각적인 구성에 그대로 마음을 빼앗겼다. 홀린 듯 인테리어를 알아봤다. 숫자를 마주할수록 이건 '투자'가 아니라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풀었던 욕심을 꾹 눌러 담았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해결하기로 마음을 접었다.


옆에서 내 모습을 지켜보던 회장님이 인터넷을 뒤적이다 사진 한 장을 툭 보여줬다. 공원에 있을 법한 파라솔 의자를 둔 상담 공간이었다. "이런 데서 하는 사람도 있네." 팍팍해진 내 마음에 웃음을 주려는 그녀의 위로였다. 그 마음이 고마워 다시 힘을 내 검색을 시작했다.

내가 원하던 콘셉트의 집기들을 파는 곳을 발견했다. "오호, 괜찮다!"를 연발하며 쇼룸 위치를 확인했다. 출동하고 싶었다. 연휴에는 문을 열지 않는단다. 그렇지, 다들 쉬어야지. 아쉬운 마음을 접었다. 연휴가 끝나면 드라이브 겸 직접 보러 가기로 약속했다.

그러다 문득, 이케아에 가서 실제 가구들의 사이즈만이라도 직접 확인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회장님, 출동하시죠!" 보고를 올리자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왔다. "지금 몇 시인데 광명을 가?" '광명? 웬 광명?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데.' 요즘 부쩍 총기가 흐려진 듯한 회장님이 걱정되던 찰나, 아차차 착각했다며 수줍게 웃는다.

이케아에 도착했다. 쇼룸을 돌며 머릿속에 그려둔 공간에 눈에 들어온 가구들을 하나씩 배치해 봤다. '이런 테이블은 왼쪽에, 저런 소파는 입구 쪽에.' 나는 꿈에 부푼 그림을 그렸다. 그동안 회장님은 의자 하나하나에 직접 앉아보고 테이블을 흔들어보며 디자인 너머의 실용성을 꼼꼼히 체크했다. 그녀의 진지한 모습은 들뜬 내 마음의 좋은 경고가 되어주었다.

한참을 돌다 내가 꾸미고 싶던 구성과 비슷한 테이블 세트를 발견했다. 가격표를 본 순간, 탄성은 탄식으로 바뀌었다. 누가 이케아가 가성비의 천국이라 했던가. 정신이 번쩍 드는 숫자에 '아, 내가 정말 쓸데없이 눈만 높아졌구나' 하는 자책이 밀려왔다.

풀이 죽은 내게 회장님이 말했다. "가격 보지 말고, 일단 사이즈를 체크해. 그게 여기 온 목적이잖아." 그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시나마 그녀의 총기를 의심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역시 회장님 자리가 아깝지 않은 분이다.


한정된 공간에 하고 싶은 것은 너무도 많았다. 코칭을 위한 아늑함, 북클럽을 위한 개방감, 강의를 위한 효율성. 그러니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다는 욕심만 앞섰던 것이다. 인터넷으로 공간을 훔쳐보고, 이케아에서 현실적인 크기와 질감을 직접 느끼고 나니 머릿속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처음 "돈 주고 사라고 해도 못 고르겠다"라고 말했던 건, 선택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 안의 과욕이 너무 많아 무엇을 비워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막연한 상상으로 가득했던 머릿속 공간을 비우고, 현실적인 치수를 재고, 쓰임새를 따져보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내 공간에 무엇을 채워야 할지 선명해졌다.

어쩌면 공간을 채우는 일은, 내 마음의 욕심을 먼저 비워내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정말로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계약부터 잘하고.

생각에 잠긴 내게 회장님이 무심히 한마디 했다.
"돈 생각에 너무 얽매이지 마."

회장님의 말이 한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미친 척 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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