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 잔에 담긴 리더의 신념
오랜만에 만난 동료와 맥주잔을 부딪쳤다.
“맥주나 한 잔 하고…”
가벼운 제안으로 시작된 만남이었지만, 대화는 어느새 ‘한결같음’이라는 단어의 무게로 흘러갔다.
그날의 계기는 책 한 권이었다.
블로그 이웃 고독한직장인 님의 책, ≪나를 이끌어야 세상을 이끌 수 있다≫를 선물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하지만 대화의 흐름은 곧 다른 책 이야기로 옮겨 갔다. 그가 최근에 70권이나 주문했다는 책. 숫자 속에는 ‘교육용’ 이상의 의미가 숨어 있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12년이었다. 나는 막 새 회사로 이직한 참이었고, 그 회사는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 막 전환된 시기였다. 모두가 바쁘고 정신없던 시절, 특히 영업 지사장들이 본사로 올라와 매주 교육받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 중심에는 ≪피드백≫이라는 책이 있었다. AAP, AAR 기법을 도입해 현장에 적용하려 애쓰던 때였다. 그는 교육의 중심에 있던 지사장 중 한 명이었다. 시간이 흘러 회사의 주인이 바뀌고, 사람들도 바뀌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성장의 핵심은 피드백”이라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이, 그의 한결같음이, 내겐 꽤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조직의 문화도, 일의 방식도 하루가 다르게 바뀐다. 어제의 필독서가 오늘은 낡은 유물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는 달랐다. 모두가 새로운 방법론을 외칠 때, 그는 다시 ‘기본’을 꺼내 들었다. 아마 그의 답답함은 동료들 때문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잊혀 가는 ‘본질’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문득 예전에 그를 리더로 추천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선택에 후회가 없다는 사실이 새삼 다행이었다. 사람을 추천하는 내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화려한 언변보다,
뛰어난 실적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묵묵히 지켜내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나누려는 사람.
그가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세월의 흔적은 그에게도 남았다. 예전엔 없던 투덜거림이 생겼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생긴 상처일 것이다. 하지만 그 투덜거림 속에서도 그의 진심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 속에서도 신념을 놓지 않으려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었다.
누군가는 그를 ‘고인물’이라 부를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본 그는 흐르는 강물에 휩쓸리지 않으려 깊이 뿌리내린 ‘바위’ 같은 사람이었다.
그의 책장 한편을 떠올렸다.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꽂혀 있을 ≪피드백≫, 그리고 이제 그 옆에 나란히 놓일 ≪나를 이끌어야 세상을 이끌 수 있다≫.
두 권의 책이 그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북마크처럼 느껴졌다. 그의 한결같음이 유난히 빛나던 저녁이었다. 한 잔만 하자며 두 잔째를 기울이던 순간, 괜히 마음이 따뜻했다.
“연락할게요!”
그가 떠나며 남긴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다음 만남이 벌써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