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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와 함께라면 Mar 25. 2023

천재견 보더콜리가 왜 똥을 먹을까?

못 말리는 천방지축 태리와의 동거(9)

  

태리가 어리광부리던 3개월 차가 지나고 4~5개월 차가 되어가자 서서히 보더콜리의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태리는 원반 던지기와 달리기에 특출한 능력을 보였다.      


원반 던지기는 흔히 프리스비(Frisbee)라고 하는데 프리스비의 본래 의미는 ‘던지기를 하고 놀 때 쓰는 플라스틱 원반’을 말한다. 태리는 원반 던지기가 생전 처음 시작한 놀이인데도 금방 적응하고 잘 따라 했다. 태리에게 원반에 주목시키고 원반을 멀리 던지면 태리는 곧바로 뛰어가서 물어왔고 시간이 점차 지나자 나는 원반을 점프하여 물어서 가지고 왔다.      


한 번은 반려견 놀이터에서 진돗개 견주가 원반을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주었더니 진돗개는 나는 원반만 멀뚱멀뚱 바라볼 뿐 미동도 하지 않아서 머쓱해진 적도 있다. 그런데 의외로 프렌치 불독이 느린 속도로 원반 던지기를 해서 놀랐던 일도 있었다.     


보더콜리면 누구나 한다는 원반 던지기지만 보더콜리라고 모두 원반 던지기를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 워킹라인(working line)의 보더콜리는 이 같은 놀이를 잘하지만 의외로 쇼라인(Show line)으로 구분되는 아이들은 이 같은 놀이를 잘 못한다고 한다. (‘세나개’에 방송출연한 태리, 과연 달라졌나요? 참조 https://brunch.co.kr/@57e66ab6ad034f0/3)     


태리는 특히 달리기에 진심인 아이였다. 집에서는 멀뚱하게 앉아 있다가도 야외로 나가 목줄을 풀어주고 자유시간을 주면 정신없이 뛰어놀면서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달리기이기 때문에 고라니를 쫓아 산으로 가는 일이 생겨도 자유시간을 주지 않을 수가 없다.     

태리는 달리기 선수다 달리기를 좋아하고 또 잘 뛴다. 반려견 놀이터에 가면 영낙없이 다른 반려견들을 부추겨 달리기 놀이를 한다. 마치 "나잡아 봐라~~~!" 하듯이.


집에서 5분 정도만 걸어가면 만 평도 넘을 것 같은 너른 나대지가 있다. 이 공터는 도로변에 붙어 있는데 여기가 좋은 점은 도로와 맞닿은 면은 거의 완벽하게 펜스가 처져있고 반대편은 야산이어서 태리가 뛰어놀기에 최적인 환경이라는 것이다.      


이 공터는 사실 사유지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이다. 그러나 이 공터를 벌써 여러 해 사용하면서도 한 번도 제지를 당한 적은 없다. 그저 이 땅의 소유주인 H그룹에 감사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실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그날도 공터에서 태리와 놀고 있었는데 태리가 무언가를 주워 먹고 있었다. 나는 태리가 흙을 먹나 싶어 뛰어가 봤더니 "맙소사!" "오 마이 갓!" 그것은 다른 반려견이 일을 본 똥이었다. 나는 놀라서 태리에게 엄중한 주의를 주었다.     

태리는 4개월차부터 원반던지기 놀이를 했다. 짧은 시간에도 충분한 운동효과를 얻을 수 있어서 태리에게는 맞춤한 놀이였다.


그런데 태리의 똥을 먹는 행위는 나의 준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 후로도 여러 번 계속되었다. 그때마다 혼을 내고 야단을 쳐도 영 효과가 없었다.      


내가 하는 명령어는 거의 다 알아듣고 분위기 파악도 잘하는 태리가, 흔히들 천재견이라는 보더콜리가 왜 그렇게 멍청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똥을 먹는 행위는 위생상으로도 좋지 않을뿐더러 습관화될까 봐 고민 아닌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나마 자신이 싼 똥은 안 먹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런데 태리가 똥을 먹는 행위는 사실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보더콜리들은 기본적으로 식분증(食糞症)의 성향이 있는데 식분증이란 동물이 자신이나 남의 똥을 먹는 것을 말한다. 보통 식분증은 생후 2~3개월에 나타난다고 하는데 태리는 이 시기에 실내에서 자랐고 변을 보면 바로 처리하였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었는데 야외로 나오게 되자 뒤늦게 그런 성향이 나타난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동물들의 식분증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고 한다. 또 보더콜리에게 특화된 증상만은 아니다.   

   

개들은 왜 똥을 먹을까?      


식분증의 첫째 이유는 배가 고파서이다. 성장기 에너지원이 많이 필요하거나 운동량이 많은 데 급식량이 부족하게 되면 식분을 할 수도 있다. 나는 오래전 썰매견들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썰매개들이 극한환경에서 장거리를 달릴 때 급식량이 줄어들게 되니까 개들이 달리면서 용변을 보고 그것을 본 다른 개들이 그 용변을 날름 먹어치운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높이 던진 원반을 물어오는 태리. 며칠 원반던지기를 하지 않으면 운동을 하자고 자발적으로 원반을 물어오기도 한다.


둘째는 야생성이 남아있어서이다. 야생에서는 자신의 생존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런데 자신의 배설물을 여기저기 널려 놓으면 다른 포식자가 이를 확인하고 자신 또는 자신의 무리를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거주지역에서 먼 곳에 용변을 보는 것이 일상적이다. 그런데 도시의 개들은 멀리 갈 수도 없기 때문에 먹어서 없앤다는 것이다.     


셋째는 호기심이다. 변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나고 질감도 부드러워서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변에는 다른 개들이 남긴 여러 가지 유전자 정보도 담겨있기 때문에 호기심에서 먹을 수 있다.     


넷째는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이다. 변을 먹게 되면 견주가 놀라서 평소보다 큰 관심을 갖기 때문에 주인의 관심을 끌고자 변을 먹는다는 것이다.     


그밖에 불안하거나 스트레스 때문에, 당뇨병이나 쿠싱병 등 질병으로 인해서 변을 먹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이럴 때에는 병원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왜 식분증은 특히 보더콜리에게 많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 원인에 대해서 밝힌 글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나는 보더콜리의 생존과 관련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더콜리의 원산지는 영국으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국경(border) 지방에서 양치기 개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보더콜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그 이전인 8~11세기에 바이킹들이 콜리를 스코틀랜드로 데리고 와서 보더콜리가 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시기 보더콜리의 삶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 종일 양을 몰아야 했으므로 운동량은 지나치게 많았고 식사는 하루에 한 끼 정도 척박한 음식을 먹어야 했으므로 수명 또한 짧았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에너지원을 얻기 위해서 식분을 하지 않았을까? 마치 썰매개들이 극한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식분을 하듯이.      


태리의 식분증은 태리가 자라나면서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태리에게 충분히 사료를 주고 맛있는 간식도 주고 변은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차례 가르쳐 준 결과였다.


태리는 역시 그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아이였다.                           

이전 01화 “으스대기 좋아하는 태리” 반려견의 과시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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