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운악산 구조견 태리, 잘못된 습관 고치기
이제 만으로 딱 세 살이 된 ’ 태리‘는 나와 한 가족이다. 태리의 취미는 등산과 달리기이며 더러는 누나들과 춤을 추기도 한다. 태리는 항상 아빠의 얼굴을 살펴 지금 어떤 감정인지를 파악하는 능력을 지녔다. 신이 났다고 생각하면 덩달아 신나 하고 아픈가 싶으면 곁에서 위로해 주고 기분이 우울하다고 생각하면 저도 소심하게 앉아 있고 아빠가 낮잠이라도 자면 같이 잔다.
자랑할 것은 아닌데 태리는 앞집 웅이나 동네 반려견들에게 으스대는 성격을 갖기도 했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마당에서 조용히 놀고 있던 태리는 꼭 앞집 웅이에게 한 번씩 짖고는 한다. 아마 “나는 이제 아빠랑 재미있게 놀 거야. 너는 그러지도 못하지?”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태리는 처음 보는 외부인이나 택배아저씨들에게 그렇게 프렌드리 한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태리는 방문은 물론, 열고 잠그기가 다소 어려운 새시 문도 열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에 손님이 왔을 때 동거생활을 하고 있는 태리를 집안에 가두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태리는 왜 달리는 물체를 쫓아갈까?
태리는 매일 아침 산책을 한다. 인근에 너른 공터가 있어 태리는 이곳에서 달리기를 한다. 전원주택의 마당도 결코 좁은 편은 아니어서 정원 자기 소파에 앉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변의 움직이는 사물에 대해서 간섭을 하고 뛰어다닌다. 이를테면 이웃주민들이 지나가거나 반려견들이나 고양이가 돌아다니거나 심지어는 새들이 날아가도 일일이 간섭을 하고 참견을 한다. 아는 얼굴들은 무사통과지만 낯선 이들이 오가거나 대형차들이 지나가면 매섭게 짖거나 마당에서 쫓아가기도 한다.
웬만한 개인기는 이미 3개월 차에 마스터해서 혀를 내두르게 한 태리의 가장 큰 문제행동은 달리는 차를 보면 쫓아가거나 마구 짖어대는 것이다. 한 번은 산보 중에 목줄이 풀려 트럭을 쫓아가는 일이 생겼고 사고로 이어질 뻔해서 식겁했던 사건도 있었다.
양치기개 품종인 보더콜리 태리의 달리고 쫓는 습성은 야생동물을 만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산중에서 고라니를 쫓느라 멀리 사라져 자칫하면 잃어버릴 뻔한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한 번은 명지산에서였다. 산에서 목줄을 하고 산보를 하기에는 너무 버거워서 잠시 풀어주고는 하는데 고라니를 목격한 태리가 바로 뛰기 시작했다 놀란 고라니도 덩달아 뛰고 둘은 이내 앞 봉우리를 넘어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당시 명지산은 태리와 처음 찾아간 곳이므로 평소에 다니던 운악산의 눈에 익은 코스가 아니었다.
명지산에서 사라진 태리
나는 태리가 뛰어간 방향으로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뒤를 쫓았다. 행여나 길도 없는 산에서 태리를 놓친다면 결코 쉽게 다시 만나기는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날은 등산을 느지막이 시작한 동절기여서 잠시 후면 일몰 시간이 다가올 터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나는 계속 쫓기를 포기하고 태리와 헤어진 지점에서 기다려야겠다고 작정하고 출발했던 장소로 되돌아왔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동행을 한 사람은 벌써 추위를 느껴 덜덜 떨고 있는 상태였기에 출발지점 주차장 차에 가서 기다리기로 하고 나는 그 자리에 철퍽 주저앉아서 태리를 기다렸다. 한 자리에 앉아있자니 나도 벌써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가벼운 산책이라고 여겼기에 두꺼운 외투도 입지 않았고 아무런 야영장비도 챙겨 오지 않았다. 텐트는 고사하고 판초우의나 다운파카라도 입고 있었다면 이곳에서 비박이라도 할 터인데 그럴 수도 없는 상황.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한 순간이었다. 사위는 벌써 컴컴해지기 시작했다.
“산속에서 반려견을 잃어버렸을 때”
생전 처음 마주한 그 상황에서 불현듯 어떤 생각이 맴돌았고 그 자리에서 핸드폰의 인터넷을 켜 검색을 해봤다. 검색결과가 많지 않아 구글로도 검색을 해보았다.
-반려견을 분실하였을 때 되찾을 수 있는 골든타임은 24시간 이내이다. 만약 그 시간 내에 찾지 못한다면 다시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가능한 반려견을 분실한 장소에서 기다리되 멀리서도 보이도록 불빛을 켜놓거나 텐트를 쳐서 24시간 동안 기다려야 한다. -
태리는 물론 동물등록칩이 내장되어 있고 하네스에 보호자의 전화번호도 적혀있지만 정작 걱정되는 것은 덫과 부상이다. 깊은 산중에는 민간인들이 허락 없이 설치해 놓은 야생동물용 덫도 많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이런 덫에라도 걸리면 찾을 수 없을뿐더러 생명도 위험하다. 깊은 산에는 절벽이나 낭떠러지도 많은데 부상의 위험도 있다.
이런저런 걱정 속에 기다림이 임계점을 서서히 벗어나려고 하는 시점 멀리서 부스럭 소리가 났고 나는 순간적으로 외쳤다.
“태리!” “태리야~~~!”
태리였다. 태리는 온몸에 검불을 묻힌 채로 돌아왔고. 그때까지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태리는 그 자리에 누워 한참을 그렇게 있었고 숨을 돌리자마자 우리는 어두운 산속에서 벗어나 동행인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때 태리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태리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가족들의 얼굴을 어떻게 마주하나?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 태리는 산책이나 등산을 할 때 꼭 하네스에 GPS를 장착하게 되었다. 혹시라도 그와 같은 일이 생겼을 때 위치확인을 위해서다.
태리의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해봤다. 좋아하는 간식을 간식통에 넣고 허리춤에 두른 다음 차가 지나갈 때 간식에만 관심을 갖게 해 보았고 물리적으로 제압을 해서 아예 달리는 차를 바라보지 못하도록도 해보았다.
차를 타고 달릴 때에는 마주 오는 차량들을 보고 짖어대는 통에 운전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이때도 간식으로 관심을 돌리려고 유도해 보고 창문은 온통 신문지로 덮어서 시야를 차단해보려고 했지만 그것도 그때뿐 달리는 차를 향한 태리의 집념은 도무지 꺾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 출연신청 하다
태리의 이런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 위해 얻은 결론은 전문가를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가족은 흔히 말하는 ’세나개‘. 교육방송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 출연신청을 하였고 머지않아 작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안 좋은 습관을 고칠 수 있는지 먼저 만나보고 솔루션이 찾아진다면 방송진행을 계속한다는 것이었다.
방송제작팀이 한번 찾아와 태리의 상태와 문제점을 촬영해 갔고 또 머지않아, 방송제작이 잡혔다는 답변을 듣게 되었다.
촬영은 이틀간 계속되었는데 첫째 날에는 태리의 일상을 그리고 둘째 날에는 우리들의 히어로인 설채현 수레이너(수의사 와 트레이너의 합성어)가 찾아와서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계획이었다.
날씨 좋은 날. 태리와 나는 이른 아침 기분도 상쾌하게 운악산 등산을 시작했다. 산에서 호흡이 잘 맞는 우리는 여늬때처럼 즐겁게 등산을 했는데 만만치 않은 속도 때문인지 카메라를 들고 오는 촬영팀은 중도에 거의 기권을 하고 두 명만 남아 끝까지 정상에 올랐다.
사실 운악산에는 여러 개의 등산코스가 있는데 일반 코스에는 등산객들이 많아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코스를 통해 올라간 것이어서 길이 많이 가파르고 힘든 코스이기는 했다. 등산을 마치고는 태리와의 일상을 담았다. 마당에서 원반놀이를 하고 식사를 하고 개인기를 선보였다.
수레이너 설채현 선생의 솔루션은?
그리고 둘째 날, 태리의 좋지 않은 습관을 고쳐줄 설채현 수의사가 펜션을 방문했다. 날씨가 맑아서인지 햇살이 밝아서인지 마치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설 선생은 우리 태리에 많은 칭찬을 해주었다. 그리고 태리가 왜 그렇게 뛰기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차를 보면 왜 그렇게 짖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었다.
다소 긴 설명이었지만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양치기개인 보더콜리는 워킹라인(Working line)과 쇼라인(Show line)으로 나뉘는데, 양을 잘 모는 개들을 교배시켜서 그 성향을 계속 유지시키는 것이 워킹라인의 개들이고 외모가 좋은 개들만 교배시키고 신경 써서 배출된 것이 쇼라인의 보더콜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태리는 딱 보기에도 워킹라인의 개에 속한다는 것. 유전적으로 태리는 하루종일 양들을, 그것도 아니라면 차라도 쫓아다니며 일을 해야 만족하는 종류의 반려견이라는 것.
우리는 실습에 들어갔다. 여러 가지 훈련을 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차가 다가올 때 신경을 쓰지 않도록 간식을 주고 계속 주의를 집중하게 하는 것이었고 차량에 탑승할 때 캐리어 안에 들어가서 얌전하게 목적지까지 참고 가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루종일 훈련을 거듭한 결과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을 수 있었고 앞으로 계속 훈련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여우면 괜찮아!"
촬영이 모두 끝나고 태리는 <나는 자연견이다>편 방송(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 나는 자연견이다_#001 - YouTube /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 나는 자연견이다_#002 - YouTube/https://www.youtube.com/watch?v=UEqLNuRZCJ0)을 타는 바람에 잠시나마 유명세도 누리고 나는 연락이 끊긴 친구나 동료로부터 갑작스런 연락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방송이 나간지 반년이 지난 지금 태리의 문제행동은 잘 고쳐졌을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태리는 마당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새들을 날리고 차를 쫓아 뛰어가며 여전히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숙명인양. 그렇다고 내가 하루 종일 태리를 붙잡고 그러지 말라고 씨름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느 훈련사의 말이 생각났다. “보더콜리의 꿈은 일하다가 죽는 것이다.”
태리야 조금 문제 있어도 괜찮아! 너는 너의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해내는 중이니까. 게다가 너는 잘생기고 착하기까지 하잖니.
"태리야! 귀여우면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