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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와 함께라면 Mar 04. 2023

부러운 듯 아닌 듯, 전원생활의 하루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하던 사업을 잠시 쉬며 온전히 쉬고 즐기는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 깊고 선선한 공기를 마시며 숙면을 취하고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나면 한 겨울에는 히말라야 같은 설산이, 봄에는 푸릇푸릇 생명력이 꿈틀거려 싱싱한 산능선을 바라보며 잠에서 깨어난다. 


태리는 밤새 잘 잤는지 아침인사를 하고 아직도 쌀쌀한 아침기온 탓에 벙거지를 뒤집어쓰고 태리와 산책을 나간다. 너른 공터에서 태리와 뛰어놀며 깊은 심호흡을 한다.       


진한 원두를 한 스푼 떠서 갈고 물을 끓여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린다. 커피 향은 거실 한가득 은은하게 퍼진다. 무선스피커로 에디트 피아프의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an)’를 틀어놓는다.(https://www.youtube.com/watch?v=See_SDAH0ig)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오,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니오,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사람들이 내게 준 것이 행복이건 불행이건 간에.

Tout Ca M'est Bien Egal

그건 모두 나완 상관없어요!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오,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니오,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C'est Paye, Balaye, Oublie, Je Me Fous Du Passe

그건 대가를 치뤘고, 쓸어 버렸고, 잊혀졌어요. 난 과거에 신경 쓰지 않아요!

Avec Mes Souvenirs J'ai Allume Le Feu

나의 추억들로 난 불을 밝혔죠.

Mes Shagrins, Mes Plaisirs,

나의 슬픔들, 나의 기쁨들

Je N'ai Plus Besoin D'eux

이젠 더 이상 그것들이 필요하지 않아요!

Balaye Les Amours Avec Leurs Tremolos

사랑들을 쓸어 버렸고 그 모든 전율도 쓸어 버렸어요.

Balaye Pour Toujours

영원히 쓸어 버렸어요.

Je Reparas A Zero

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거예요.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오,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니오,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사람들이 내게 준 것이 행복이건 불행이건 간에.

Tout Ca M'est Bien Egal

그건 모두 나완 상관없어요!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오,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니오,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Car Ma Vie, Car Me Joies

왜냐하면 나의 삶, 나의 기쁨이

Aujourd'hui Ca Commence Avec Toi

오늘, 그대와 함께 시작되거든요.     


서커스단원의 딸로 태어난 에디트 피아프는 거리에서 자라나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그러던 중 그녀 앞에 나타난 이탈리아 빈민가 출신의 조선소 노동자. 노래를 배우겠다며 찾아온 그를 그녀는 성심성의껏 가르쳤고 사랑했고 역시 최고의 가수로 키웠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녀를 떠났다. 남자의 이름은 이브 몽땅. 그녀는 자신의 옛 모습을 닮은 이브 몽땅의 처지가 끌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곁을 떠났다.      


콜레스테롤치가 높아 삼시세끼 잡곡밥을 먹는 것이 좋지만 가끔은 그따위 건강상식 무시하고 곡물식빵을 굽고 가운데에는 기름진 베이컨과 계란프라이 그리고 살짝 녹인 치즈와 양상추를 가득 넣어 볼이 터져라 아침을 먹는다. 아침에 빵을 먹게 되면 어떻게 알았는지 마당에서 뛰어놀던 태리가 달려와 옆에 앉는다. 태리는 고기보다 빵을 좋아한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이다.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튀르키예의 가장 유명한 작가 오르한 파묵은 문명 간의 충돌이나 이슬람과 세속화된 민족주의 간의 관계를 주제로 글을 써왔는데 이 책은 그의 자전적인 에세이로 누구나 남에게 숨기고 싶어 덮어두고 싶은 어두운 과거와 불행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튀르키예 최대의 도시이자 역시 급속하게 변모하는 이스탄불에 녹아있다. 오래되고 낡고 빛바랜 흑백사진들이지만 이 책에 실린 수십 장의 사진들은 묘하게 내가 살던 서울의 과거 모습과 오버랩되며 잊힌 추억을 되살린다. 오래전부터 역사적으로 관심이 있던 튀르키예와 이스탄불은 언제나 나의 관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느릿느릿 책을 읽다가 배가 고파지면 점심은 간단하게 해결한다. 잡곡밥이 남았으면 미역국이나 황탯국에 말아먹던가 다시팩을 끓이고 다진 마늘과 국간장, 참치액을 넣어 맛을 낸 육수에 만두를 삶아 만둣국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나면 보통 캡슐커피를 한잔 내려 마신다.      


오후에 몸이 찌뿌드 하다면 채를 들고 집에서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게이트볼장으로 행한다. 원래는 배드민턴을 치고 싶었지만 이 시골에는 안타깝게도 배드민턴장이 없다. 완전한 시니어스포츠로 인식되어 있는 게이트볼은 일견 별다른 운동이 되거나 재미가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운동도 많이 되고 두뇌회전이 필요한 것은 물론 무척 재미있는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보통 5:5로 열 명이 게임을 하게 되는데 2시간에 3~4게임을 하게 되며 지는 팀은 간식비로 1000원씩을 내야 한다. 단돈 1천 원에 희비가 엇갈린다.     


금요일 저녁은 나 홀로 만찬이다. 읍내 정육점에 가서 등심 한 덩어리를 사고 프라이팬을 뜨겁게 달구어 육즙을 가두며 고기를 굽는다. 가니쉬로 양파를 얹는다. 스테이크를 구운 날에는 와인을 한 잔 따른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다.      


‘작은 참새’ 에디트 피아프는 무엇을 후회하지 않았던 것일까? 배신하고 떠난 이브 몽땅과의 사랑을? 스무 살이나 어린 두 번째 남편 테오 사라포와의 결혼을? 아니면 누구보다 극적인 삶을 살았던 자신의 삶을?     


그래 나 역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사랑한다.     


아름답고 고요한 전원의 이 깊은 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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