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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와 함께라면 Mar 02. 2023

한 반려견주의 튀르키예 여행 준비기

[사진 :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30여 년 전 배낭여행으로 인도 델리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를 생각하면 얼마나 세상이 편하고 과학이 발전했는가? 나는 집에 편하게 앉아서 인천-이스탄불의 항공권을 발권했다.


경기도 가평 하고도 운악리. 경기오악 중 하나이자 100대 명산에 속하는 운악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지도 벌써 만 3년째. 평생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는 전원에서 반려견과 살다 보니 내 마음의 평화는 이루었지만 보고 싶은 친구들을 자주 만날 수 없음은 몇 되지 않는 전원생활의 단점이라 하겠다. 


지난해 가을에는 꿈에도 그리던 직장동료들이 찾아와 꿈결 같은 시간을 보냈거니와 그럼에도 3년 동안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절친이 있었으니 그는 '수키'였다.      


‘수키’는 누구일까?     


‘수키’는 여성의 이름 ‘숙희’의 발음을 불리는 대로 옮긴 말이 아니라 그의 별명이다. 대학시절 절친 네 명은 새벽 네시 반부터 줄을 서서 중앙도서관에 자리를 잡아놓고 각자 고시 혹은 자기 분야의 취업준비를 했는데 하루 종일 도서관에만 앉아 있으니 좀이 쑤시고 찌뿌둥하여 잠깐씩 밖으로 나와 몸을 풀었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한 팔로 팔굽혀 펴기를 해보자.”는 제안을 하게 되었고 ‘수’와 나는 한 팔 팔굽혀 펴기에 성공하여 이름 앞자 ‘수’에 영화 <록키>의 주인공 록키의 ‘키’ 자를 붙여 ‘수키’가 되었고 나는 원래 별명 흑기사에 ‘키’를 붙여 ‘흑키’라는 별명 아닌 별명을 갖게 되었다.      


수키와는 대학시절 치악산, 대둔산을 포함하여 여러 번 등산을 함께 다녔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자주 전국의 명산들을 같이 올랐다. 뿐만 아니라 근래에는 일주일간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과 후지산 등반도 함께 다녀왔으니 이만하면 절친이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그랬던 친구와 자그마치 3년 가까이 얼굴을 볼 수 없었으니 자못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이야기를 하겠거니와 나의 반려견 ‘태리’와 함께 지내면서 운영하던 펜션사업을 잠시 접기로 결정하고 폐업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꿈에서도 그리던 ‘수키’가 동료이자 히말라야도 함께 다녀왔던 H와 함께 펜션을 찾아온 것이었다.   

 

왜 튀르키예로 가야 하는가?     

수키와는 대학시절 치악산, 대둔산을 포함하여 여러 번 등산을 함께 다녔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자주 전국의 명산들을 같이 올랐다.


오랜만에 만난 세 친구가 장어를 굽고 소주를 한입에 털어 넣으며 왜 그동안 찾아올 수 없었는지 사연을 듣고 또 옛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나는 코로나 때문에 방문하지 못했던 튀르키예 이야기를 꺼냈고 왜 내가 그 나라에 그렇게 가고 싶은 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튀르키예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장소는 이스탄불에 있는 데오도시우스 성벽(İstanbul Surları)이다. 물론 아야 소피아(Ayasofya Camii)이나 술탄아흐메트 모스크(Sultanahmet Camii)성당, 톱카프 궁전(Topkapı Sarayı Müzesi)과 지하궁전 예레바탄 사라이(Yerebatan Sarnıcı)도 필수 코스이겠으나 나의 원픽은 역시 콘스탄티노플 성벽이라고도 불리는 데오도시우스 성벽이다.    

 

나는 왜 천 년도 전에 유럽의 변방 동로마제국에 지어진 성벽을 보고 싶어 튀르키예에 가고자 하는 것인가?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기독교 제국과 이슬람 제국 두 세력이 부딪쳐 기독교 국가가 이슬람 국가가 되는 초유의 역사적인 사건에 몰입되었기 때문이다.     


아주 짧게 세 문장으로 그 사건을 되짚어 보자면 


1. 1453년, 오스만제국의 메흐메트 2세는 약 8만에서 15만 명에 이르는 대군을 이끌고 콘스탄티누스 11세가 지키고 있는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게 된다.


2. 길이가 8미터가 넘고 500킬로그램의 돌포탄을 날릴 수 있는 ‘우르반 대포’로 5천 발 이상을 발사하고 100척이 넘는 배를 산으로 넘겨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옮길 때까지 데오도시우스성벽은 함락되지 않았다. 


3. 메흐메트 2세의 마지막 공격도 거의 수포로 돌아갈 즈음 성벽 수비군의 실수로 작은 문을 잠그지 못했고 결국 그 문으로 오스만제국군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기독교 제국인 콘스탄티노플은 멸망하고 그 땅에 이슬람 제국이 들어서게 되었으니 1453년은 중세가 끝나고 근세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해이기도 하다.     


제국은 무너졌어도 데오도시우스 성벽은 끝끝내 기독교제국을 지켜냈다. 그것도 자그마치 천년이라는 세월 동안을.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 역사적인 장소를 찾지 않겠는가.   

    

튀르키예 탐사대 발족     


역시 진심은 통하는 것일까? 세 사람은 바로 그 자리에서 ‘튀르키예 탐사대’를 꾸리기로 하고 7박 9일간의 여행준비는 내가 맡기로 하였다.      


벌써 30여 년 전 배낭여행으로 인도 델리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를 생각하면 얼마나 세상이 편하고 과학이 발전했는가? 나는 집에 편하게 앉아서 PC로 인천-이스탄불의 항공편을 검색하여 세 사람의 전자항공권을 발권하고 역시 마찬가지 방법으로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 네브세히르 공항(Nevsehir Kapadokya Airport)으로 가는 국내선을 끊었다.         


숙소예약사이트에서 이스탄불에서는 3 베드룸의 아파트먼트를 예약하고 카파도키아에서는 이름도 생소한 동굴호텔을 예약했다. 초행길에 숙소라도 잘못 찾으면 어떡하나 싶어 공항에서 숙소인 아파트까지는 픽업서비스도 예약을 마쳤다. 이제 출발 전에 여행자보험을 계약하고 여행경비를 환전해 가면 대부분의 여행준비는 마치게 되는 셈이었다.     


태리의 7박 9일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자 그렇게 순조롭게 여행준비가 끝났다면 이 글은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는 가장 큰 문제가 남아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반려견 태리에 관한 것이었다. 태리는 어떻게 7박 9일을 보내야 할 것인가?  

   

나의 가장 큰 버킷리스트는 자동차로 떠나는 ‘아메리카 대륙횡단’이거니와 이때에는 나의 반려견 태리도 함께 떠날 궁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튀르키예 여행은 절친 세 명의 역사탐방이다. 태리가 여행을 같이 가기도 어렵거니와 설사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여행의 성격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고민 끝에 두 가지 방법을 궁리해 냈다.       


첫 번째 방법은 7박 9일간 태리를 돌봐줄 아르바이트를 찾는 것이다. 태리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산보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최소 한 번은 산보를 시켜주고 아침과 저녁식사를 준비해 주면 임무는 끝이 난다. 그런데 문제는 근방에 그렇게 태리를 돌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태리와의 사전교감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두 번째로 생각한 방법은 7박 9일 동안 태리를 돌봐줄 기관(?)에 위탁하는 것이다. 쉽게 생각해서 애견호텔 같은 개념인데 물론 태리는 운동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넓은 운동장은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태리 면접을 보다     


주변을 샅샅이 살펴본 결과 차로 한 시간 거리에 대형견을 맡아서 케어해 주고 운동장도 보유하고 있는 업체를 찾게 되어 연락을 취했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그 업체에는 이미 열 마리에 가까운 대형견들이 장단기로 위탁되어 있는데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고 식사를 하며 같은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기 때문에 예방접종이나 중성화가 되어있지 않거나 사회성이 결여되거나 배변을 가리지 못하거나 ‘입질(쉽게 말해서 무는 일)’을 하는 반려견은 위탁자체가 불가능한 시스템이었다.      


태리는 중성화도 마쳤고 각종 예방접종은 물론이거니와 배변도 잘 가리고 어릴 적 트라우마가 있는 진돗개를 제외하고는 다른 반려견들과 아주 잘 노는 스타일이어서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반려견이 숙소에 적응할 수 있는지는 현장에 와서 다른 반려견들과 만나봐야만 알 수 있다”는 말에 우리는 태리의 면접을 보러 업체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세상에 반려견을 위탁하는 면접이라니.     


태리는 달리는 차만 보면 뛰어가려고 하거나 짖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거니와 태리를 어르고 달래며 한 시간을 달려 간신히 도착한 대형견 위탁업체. 드디어 태리는 다른 반려견들과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다.     


태리의 행동으로 보아 다른 반려견들과도 잘 노는 것 같아 별문제 없이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마지막에 등장한 커다란 대형견 한 마리. 왠지 태리는 그 반려견에 거부감을 보이며 이를 심하게 드러냈다. 평소에 명랑하고 온순한 편인 태리는 왜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일까? 


업체 얘기로는 두 마리가 서로 기가 세서 그렇다고 한다. 결국 현재 상태로는 위탁을 받기 어렵고 여러 번 방문하여 다른 반려견과 같이 잘 지내게 된 다음에야 위탁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결국은 ‘가족’이다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돌아온 우리는 고민 끝에 마지막 방법을 찾게 되었다. 직장 때문에 서울 근교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이 직장에 연차를 내거나 직접 출퇴근하는 방식으로 태리를 케어해 주기로 한 것이다.   

  

그래도 퇴근이 늦거나 하루 이틀은 태리가 혼자 지내는 날이 발생할 수도 있어 우리는 시간에 맞춰서 사료를 공급해 주는 자동급식기를 구입하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급식을 할 수 있도록 핸드폰과 급식기를 연결하고 애플리케이션을 깔아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D-4일. 끔찍했던 튀르키예 지진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한 달에 가까운 여행준비도 다 끝나 마지막으로 세 명이 만나 단합 겸 준비점검을 하기로 한 날. 나는 거실 창밖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한가하게 ‘터키사’를 펴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 ‘수키‘였다.      


“흑키! 이번에 중요한 비즈니스 때문에 튀르키예 여행을 못 가게 되었어. 미안하네. 다음에 같이 갈 수 있으면 같이 가자고.”     


그래 아무리 튀르키예가 나를 부르고 천년왕국 콘스탄티노플을 지켜낸 데오도시우스 성벽이 중요하다한들 어찌 반평생을 같이 해온 친구보다 소중하려고.      


그나저나 태리는 아빠와 난생처음 떨어져 지내는 9일이 즐거웠을까 아니면 누나들과 함께 지내는 9일이 재미있었을까?      


나는 졸린 눈으로 부랴부랴 PC를 켜고 예약을 하나씩 취소하기 시작했다.    

  

“취소수수료가 만만치 않은데 이를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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