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밤, 개도둑이 앗아간
세 반려견과의 추억
-반려견과의 일상 그 시작-
중고등학생 시절 내가 살던 집은 서울 외곽의 2층 단독주택이었다. 교복 세대인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왜 그렇게 학생들이 많았던 것일까? 20~30분은 기다려야 간신히 한 대씩 도착하는 만원 버스에 남녀 학생들이 마치 구겨진 도화지처럼 가득가득 들어차 숨 쉴 곳도 없을 것 같은 버스를 타지도 못할 때가 많았다. 갸녀린 버스차장이 간신히 열린 출입문에 매달려 떠날 때면 지각을 해서 선도부에 걸려 곤욕을 치르지는 않을까 지레 걱정이 되고는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도로포장이 되지 않아 여름 장마철이 되면 붉은 진흙탕 길이 되기 일쑤였고 이리저리 튀는 흙탕물은 깨끗이 다려 입은 교복 바지를 더럽혀 예민한 사춘기 소년을 짜증 나게 만들었다.
옆집 마당에는 거의 백 살은 된 것 같은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가을이 되면 우리 집 뒷마당 높은 곳에 긴 줄기를 들여놓고는 은행 열매를 마구 떨어뜨렸고 충격으로 터진 열매에서는 정말 고약한 냄새가 나기도 했다.
그 시절 행복했던 나의 집
그럼에도 그 시절 그 집에서 살던 때는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시기 중 하나였다. 그 집에 살게 되면서 나는 꿈처럼 여겨지던 나만의 작은 방을 차지하게 되었고 그 방에서는 소설책도 마음대로 읽고 음악도 마음대로 들을 수 있으며 밤을 새워 공상을 한다 한들 누구도 뭐라지 않는 나만의 작은 왕국이었다.
2층 작은 베란다에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나선형의 철제 계단이 있었는데 그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면 그야말로 내 세상이었다. 옥상에 서기만 해도 주변에 고층빌딩이 없어 사방으로 툭 터진 전망은 답답했던 그 시절 내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청량제와도 같았다.
뿐이랴. 옥상에는 작은 물탱크 건물이 있었는데 턱걸이하듯 건물 난간을 잡고 올라 채면 어렵지 않게 그 건물 위로 올라설 수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아스라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것은 물론 멀리 제2한강교를 지나는 차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모습과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둥그런 지붕이 바라다보이기도 했다. 더러는 비 오는 날 친구들과 그곳으로 올라가 한참을 웃고 떠들고 노래 부르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그 시절 정작 나를 더욱 행복하게 해 준 것은 그런 주변환경이 아니었으니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반려견 세 마리였다.
‘토니’, ‘루사’, ‘루라’ 셋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애교쟁이 치와와 '토니'
‘토니’는 멕시코가 원산인 치와와였다. 이미 성견이 되어 우리 집으로 오게 된 토니는 생김새가 말해주듯 아주 작고 귀엽고 영리한 데다가 애교가 많고 충성심까지 갖춰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한 가지 흠이라면 단모종에 털이 많이 빠져 항상 같이 자고 나면 이불과 잠옷에 털이 잔뜩 묻어 “제발 토니 좀 따로 재워라”라고 한 소리를 듣고는 했다.
토니를 가장 사랑했던 내가 학교를 갈 때면 토니는 현관문 앞에까지 따라와서 나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배웅하고 학교에서 돌아와 초인종만 눌러도 벌써 꼬리를 치며 준비하고 있다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치 오랜만에 처음 본다는 듯 열렬하게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더러는 내가 학교엘 가고 나면 현관문 앞에 그렇게 하루 종일 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일 년 365일 그런 환영식을 반복해 주었느니 토니는 그 어떤 친구보다도 가까운 나의 절친인 셈이었다.
'루사' '루라'와의 추억
수컷인 ‘루사’와 암컷인 ‘루라’는 독일산 셰퍼드 품종이었다. 아버지가 셰퍼드를 두 마리 분양받아 온다고 했을 때 우리는 정말 열렬히 환호했다. 군견과 경찰견으로 활약할 만큼 명석하고 든든한 셰퍼드가 우리 집에 오게 되면 얼마나 멋질까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며칠 후 우리 집으로 오게 된 한 배 태생의 루사와 루라는 아직 젖 냄새가 가시지 않은 꼬물이 강쥐들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데 그 당시로는 처음 보는 무슨 애견협회에서 발행한 그야말로 ‘개족보’를 신기하게 한참 동안 보았던 생각이 난다. 그 족보에는 부모견들의 이름과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들의 이름 같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자그마치 세 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생활을 하게 된 나는 마치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털북숭이였던 루사와 루라는 토니와 함께 실내생활을 하게 되었다. 두 꼬물이들은 토니의 텃세에도 불구하고 무럭무럭 자라났고 두 어 달이 못 되어서 벌써 토니보다 덩치가 훨씬 크게 자라 되려 토니에게 덤빌 정도였다. 루사와 루라는 짧은 실내생활을 마치고 뒷마당의 견사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나는 애견훈련책을 구입해서 열심히 루사와 루라를 가르쳤다. 앉아, 일어서, 기다려, 먹어, 먹지 마... 그런데 내가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고 철부지처럼 마냥 뛰어놀기만 좋아하는가 하면 신발들을 온통 물어뜯고 꽃과 나무를 파헤치기 일쑤였다. 집을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사람을 좋아해서 누가 와도 꼬리를 치고 반가워하는 통에 집을 지키기는 힘들어 보였다.
'루라'와의 이별
그러다가 대형견 두 마리를 키우는데 버거운 현실 탓에 결국 루라는 우리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른 집으로 분양을 가게 되었고 우리 형제는 그날 무척 우울한 하루를 보냈다.
말썽쟁이 루사는 결국 애견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었다. 한두 번 면회를 갈 때마다 루사는 점점 더 의젓해 보이기만 했다. 루사는 3개월씩 두 번이나 훈련소를 다녀왔고 이제는 외모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경찰견 못지않은 늠름한 성견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루사는 코가 길쭉하니 잘 빠지고 귀가 쫑긋 하게 서 잘 생긴 데다가 키가 크고 체격이 당당하여 누가 봐도 셰퍼드 순종의 혈통이 엿보였다. 나이를 한 살 먹자 말썽쟁이 시절이 언제였냐는듯 행동도 의젓하게 변해갔다. 멋지고 활기에 넘치는 루사를 나는 참 좋아했다. 루사와 함께 산보를 나가게 되면 사람들은 모두 품종과 이름을 물어봤고 “참 멋지게 잘 생겼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서는 당당하게 동네를 활보하고는 했다.
'토니'의 실종
평화롭고 행복한 내 일상에 지금도 잊히지 않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그것은 바로 토니가 사라진 일이었다. 여늬 날처럼 학교에서 돌아온 내가 현관문에 들어왔을 때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토니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물어보았다. “토니는 어디 있어?” 그런데 가족 중 그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는 것이었다. “토니 어디 갔어?” 재촉하는 내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낮에 대문을 잠깐 여는 순간 토니가 열린 문 사이로 빠져나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그 자리에서 가방을 내팽개치고 그대로 대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는 동네 골목골목을 다니며 ‘토니’를 불렀다.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밝았던 날은 저물어 사위는 이미 어두워졌고 동네 골목들을 샅샅이 훑고도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나는 시장기도 잊고 목이 쉰지도 모른 채 쓸쓸히 제2 한강대교를 걸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토니의 가출사건은 그로부터 거의 1년 여가 지난 후에야 진상이 밝혀진다.
양옥집이었던 우리 집은 기름보일러였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겨울철 난방비는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이었으므로 집안 공기는 항상 냉랭했고 화장실 변기라도 앉으면 입김이 날 정도였다.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게 되면 손과 발이 시려서 30분마다 손과 발을 호호 불며 추위와 싸워야 할 정도였다.
그 시절 보조난방은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유단포’라는 것이었다. 유단포는 일본어 ‘탕파(ゆたんぽ)’로 일본인들이 추운 다다미방에서 주로 사용하던 보조난방 기구다. 보통 아연으로 만들어진 등글 납작한 물통인데 여기에 뜨거운 물을 넣고 큰 수건을 둘둘 말아 이불속에 넣어두면 추운 겨울철 긴 밤을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그리고 2층에는 석유난로가 하나 있었는데 4형제가 그 석유난로 하나를 돌려가면서 잠깐씩 피워 냉기만 가시게 할 정도였다.
한 겨울밤에 사라진 '루사'
그러던 어느 해 무척 추운 겨울밤이었다. 초저녁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해 창밖은 그대로 하얀 세상이었고 방범대원들의 ‘딱’ ‘딱’ 소리 나는 순찰소리가 멀리 사라지고 자정 가까이 된 시각이었다. 뒷마당의 루사가 견사에서 짖는 소리가 2층에 있는 내 방까지 들려왔다.
자정이 되면 술 취한 동네 아저씨들이 술주정을 하며 걸어가거나 통행금지에 걸릴까 봐 뛰어가는 사람들 보고도 자주 짖었기에 으레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루사의 짖는 소리는 평소와 달리 계속 이어졌다.
날이 추워 꼼짝을 하기 싫었던 나는 느릿느릿 외투를 걸치고 방문을 나섰다. 그와 거의 동시에 형도 방문을 열고 나와 스웨터를 걸치며 나와 마주쳤다. “루사가 왜 이렇게 짖니?” 둘이 같이 2층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루사의 짖는 소리가 멈추었다. “괜찮은가 보다. 들어가자” 형의 말을 듣고는 나도 안도하는 마음으로 방에 다시 들어와 책을 들여다보다가는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온 나는 뒷마당에서 들리는 소란을 듣고야 말았다. “루사가 없어졌다.” 나는 놀라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마땅히 견사에 있어야 할 루사가 보이지 않았다. 루사뿐 아니라 루사와 나를 연결해 주던 루사의 가죽 리드줄조차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우리는 경찰에 신고했고 이윽고 경찰이 와서 조사를 했다.
전후사정을 파악한 바로 범인은 전문적인 개도둑이었다. 개 도둑은 정문을 넘어 들어와 거실 창 앞에 서서 실내의 동태를 살핀 다음 살금살금 뒷마당으로 걸어 들어가 맹렬하게 짖는 루사에게 오징어 다리를 계속 던져주었다. 개 도둑은 견사 가까이 와서 루사를 어르고 달래며 오징어를 계속 던져주다가 대담하게 루사의 리드줄까지 챙겨 루사의 목에 걸고 유유히 사라진 것이었다. 이 대담하고 약삭빠른 개 도둑의 흔적은 지난밤에 내린 눈 위에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우리 가족은 개도둑을 꼭 좀 잡아서 루사를 찾게 해 달라고 신신부탁을 했고 경찰관 아저씨는 최대한 노력해서 범인을 잡아보겠노라 답했지만 그날 이후에 루사를 만날 수는 없었다.
짧은 시기에 세 마리의 사랑하는 반려견을 모두 잃은 나의 마음에는 큰 상실감이 자리하게 되었다. 그 사건 이후로 가족 누구도 반려견을 키우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그런 큰 슬픔을 감내하기에 나의 마음이 성숙되지 못한 탓이었다. 청소년기가 다 끝나고 성인이 되고 가족을 꾸릴 때까지 반려견과 함께하는 생활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토니와 루사와 루라. 지금은 하늘나라 어디쯤에서 행복하게 지내겠지? 그 시절 사랑하는 세 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했던 행복했던 추억은 그러나 오늘까지 이어져 지금은 가족과도 같은 태리와 함께 하는 즐거운 삶이 새롭게 시작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