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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와 함께라면 Mar 02. 2024

복국을 마시면 청춘이 돌아온다

복국과 복어회에 얽힌 이야기

모처럼의 서울 나들이였다. 저녁약속이기 때문에 차를 경춘선 청평역에 세워두고 약속장소인 6호선 마곡나루역으로 향한다. 오래전 강서구 방화동에 살던 때에 마곡은 그야말로 논밭이었는데 역사를 빠져나와서 바라본 마곡일대는 그야말로 상전벽해였다. 우리의 약속장소는 복국집이었다. 거의 4년 만에 맛보는 복국인지라 자못 기대가 컸다.     

 

복어는 계절을 많이 타는 생선이다. 대부분의 복어는 겨울철에 맛이 좋고 영양 또한 풍부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까치복의 경우에는 1년 내내 먹어도 상관이 없다고도 한다. 하여간 이 복철이 다 가기 전에 복집을 만남의 장소로 선정한 친구의 센스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복국 같으면야 미식가들인 회사 동료들과 점심시간에도 여러 차례 복국집을 찾아 커다란 냄비에서 끓고 있는 복국에 미나리를 수북하게 올려놓고 소주잔을 기울여보기도 했었다. 술꾼 동료들은 복어도 복어지만 복국에 끓고 있는 미나리를 무척이나 즐겨 들었다. 술꾼들의 미나리 사랑은 워낙에 널리 알려진 바였지만 실제로 미나리는 향긋한 내음과 함께 아삭한 맛이 일품일뿐더러 숙취해소는 물론이요 간을 해독하고 피를 맑게까지 하는 효능이 있다고 하니 술꾼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종목으로 치면 나는 주당에 속하지도 않고 분식파였기 때문에 내가 모임의 주도적인 위치에 섰을 때는 주로 칼국수를 자주 베풀었다. 나의 최애 칼국수집은 ㄷ칼국수였다. 다진 마늘을 많이 풀고 버섯을 가득 집어넣어 얼큰한 국물에 얇은 샤부샤부용 고기를 살짝 익혀먹은 다음 쫀득한 칼국수면을 넣어 먹고 마지막으로 볶음밥을 볶아 김을 뿌리고 참기름을 살짝 둘러서 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시골사람이 번화한 서울에 와서 길을 헤매다가 겨우 식당을 찾았다. 모처럼 만난 벗들과 반가운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으니 새콤하게 버무린 복어껍질이 먼저 나왔다. 몇 달 만에 만나는 절친들인지라 복껍질을 안주삼아 소맥을 풀어 한 잔씩 들이켠다. 쫄깃하다 못해 이가 조금 아플 것 같은 식감의 복껍질과 폭탄주를 한잔 들이켜다 보니 마치 식도와 위장에서 폭탄이 터진 것처럼 맛과 향이 증폭된다.      


복껍질 한 접시를 다 비워갈 때쯤 콩나물과 팽이버섯 그리고 미나리를 잔뜩 올린 복어국이 서빙됐고 도톰한 복어를 바삭하게 튀긴 복어튀김도 한 접시가 등장했다. 애주가에게 복국만큼 맛있고 속이 시원한 안주가 또 있을까? 고기안주가 든든하다고는 하지만 식도를 넘어 위장으로 달려가는 알코올에게 시원하고 칼칼하면서도 풍미가 짙은 복국에는 비할 것이 아닐 것이다. 지나간 얘기들을 한 자락씩 펼치다 보니 폭탄주가 자꾸 말아지고 그야말로 술이 술술 목구멍을 잘도 넘어간다.     


그런데 젊은 청춘도 아닌 우리가 초반부터 이렇게 달려도 괜찮은 걸까? 나는 “아마도 복국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니 별문제 없으리라” 확신한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장어를 먹고 배탈이 난 적은 있어도 복국을 먹고 탈이 난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숙취해소나 간의 해독을 이야기하자면 사실은 복어만 한 것이 또 없다. 복어에는 타우린과 메티오닌성분이 풍부해서 알코올을 분해하며 간의 해독까지 도와주는 것이다.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로 양조장에서 술을 담그는 술독을 청소할 때는 복어 대가리를 끓인 물로 해야 깨끗이 닦인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거니와 복어는 그렇게 알코올해독은 물론 기력을 회복시켜 주고 나아가 암까지 예방하는 효능이 있다고 하니 대단한 슈퍼푸드가 아닐 수 없다.      


복어가 음식으로서 매력이 있는 이유는 미식가의 입맛을 홀리는 그 특유의 맛에도 있지만 치사량을 능가하는 독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알려진 바와 같이 복어에는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이라는 내열성 독소가 있다. 여기에서 내열성이란 열을 감내하는 성질이라는 뜻이니 뜨거워져도 독을 간직한다는 의미다. 


음식을 끓여도 독은 그대로 살아있다고 보면 된다. 복어의 독은 독성이 강해 성인의 경우 0.5mg만 먹어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는 청산가리로 알려진 청산 나트륨보다도 1200배 이상 독성이 강한 것이다. 복어에 있는 독은 주로 간과 생식기 부분에 있다. 특히 복어의 산란기 때인 5월부터 여름까지의 복어 난소에는 테트로도톡신이 고농도로 들어있어 산란기 복어를 먹는 것은 더욱 주의해야 한다. 만약 복어를 먹고 6시간 내에 복어 독으로 인한 증상이 보이면 병원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복어요리를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격증이 있어야만 한다. ‘복어조리기능사’ 자격증이라는 것이다. 자격증 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일명 ‘복고시’라 불리는 복어조리기능사 자격증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필기와 실기시험을 실시하는데 주어진 시간 안에 제독 처리를 하고 회를 뜨고 죽과 초회까지 만들어야 해서 손이 빠르고 정확해야 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실력으론 시간이 촉박해 불합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제독은 사람 목숨과 직결되기 때문에 엄격하게 평가하기로 악명 높아 복어 내장에 칼집이 나거나 복어 살에 피, 간즙이 한 방울이라도 묻으면 가차 없이 실격처리된다고 한다.      


지금도 자격증 없이 복어를 요리하다가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신문기사가 가끔 눈에 뜨이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흔히 양식복에는 독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 또한 사실이 아니다.      


중국시인 소동파가 “가히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맛”이라고 극찬한 복어요리. 이날 복어요리는 대성공이었다. 복국은 잡내 없이 시원하게 잘 끓여졌고 기대 이상의 맛과 요리솜씨를 보여준 복껍질과 복어튀김도 충분히 합격점 이상을 줄만한 맛이었다. 그런데 이날 복어요리를 먹으며 놀란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우리가 먹은 복어가 냉동복어라는 것이다. 나는 양식복어는 많이 들어봤어도 냉동복어는 처음 먹어봤기에 생소했지만 사실 복어의 맛이란 것이 종류별로 미세하기 때문에 자연산이나 양식이나 냉동이나 맛의 큰 차이는 느끼지는 못했다.      


복어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역시 회다. 복어회를 캐비어, 트러플, 푸아그라와 함께 세계 4대 진미로 손꼽기도 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이 말은 복어요리를 최고로 치는 일본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싶다. 일본에는 “복어를 먹지 않은 사람에게는 후지산을 보여주지 말라”는 속담도 있다고 한다.     


내가 복어회라는 진미를 처음 맛본 것은 서른 무렵이었다. 복어회와의 첫 만남은 의외로 예상치 못한 장소였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당시 근무하고 있던 회사의 A부서에서 B부서로 옮기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고 그 고민을 절친이었던 P와 상의를 하던 차였다. 그런데 P는 나의 부서이동을 극구 말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가까운 단골 일식당에서 조촐하게 한잔을 하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는데. 처음 주문한 안주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게 되었을 때 주방장의 마수(?)가 뻗쳐왔다. “손님 지금 자연산 황복이 들어왔는데 한번 드셔보실래요? 엄청 귀한 놈입니다.”      


얼떨떨하는 나를 본체만체하고 그 친구는 너무도 태연한 표정으로 당당하게 "그거 한 접시 가져오라"고 했다. 입이 귀에 걸릴 듯 환한 웃음을 지은 주방장이 조심스럽게 두손으로 받쳐들고 온 복어 한 접시.  그 접시를 본나는 대단한 실망이었다. 커다란 접시 바닥의 그림이 그대로 드러날 만큼 얇게 썰어낸 복어 회에 미나리 몇 점과 고추냉이 두 덩이.      


백지장같이 얇은 복어회 한 점을 들어 조심스럽게 씹어보니 분명 쫄깃하고 담백하며 은은한 단맛이 난다고 할까? 처음 복어회를 맛볼 때는 사실 흔히 먹던 광어나 돔같은 회맛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계산을 하지 않아 당시의 황복 한 접시가 얼마였는지는 모르지만 엄청난 고가였을 것이다. 지금도 자연산 황복 한 접시의 시세는 무려 일 백만 원을 호가한다. 비싼 복어회 한 접시를 얻어먹은 대가로 나는 다른 부서의 이동을 포기하고 그 동료와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친구와는 소식을 주고받으며 얼굴도 보는 사이가 되었으니 친구를 이어준 복어 한 접시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복어요리도 든든하게 먹었으니 이제 어디를 가오리까? 이른 시각에 집으로 발길을 향할 수는 없다. 가까운 이자까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사케 한 병과 꼬치구이, 고노와다 회를 시켜 못다 푼 회포를 풀어본다. 사케를 마시다 보니 이내 예전에 즐겨 먹던 히레사케가 생각났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철 옷깃을 여미며 충무로 거리를 걷다가 뜨거운 정종에 구운 복어 지느러미를 넣은 히레사케 한잔에 얼마나 가슴속이 훈훈해져 왔던가. 그렇게 가슴이 뜨거워진 채로 의기투합한 우리 셋은 자정까지 열심히 달렸고 취중약속으로 올여름에는 지리산 칠선계곡을 가기로 했으며 겨울에는 그동안 가지 못한 터키탐사를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만은 청춘이 돌아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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