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_해답은 바로 이 순간
이번 주 정원이와 대학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두번이나 미뤘던 진료라 10개월 만이었죠. 그리고 한 해 동안 찾던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보았습니다. 아이가 어느새 3학년이란게 실감이 났습니다. 만 9세, 정원이 나이가 되면 사춘기 진입 전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올라간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그간 발견되지 않았던 경기파도 올해 초 검사에서 발견되었지요. 그래서 신체의 내부지각 변동이 심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변화일지는 정원이 외에 아무도 모르겠죠. 아직 아기 같이 해맑은 아이도 몸은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 가설도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지만 저는 납득이 되었습니다. 올해 들어서 배가 조금만 아파도 곡기를 모조리 5일이나 10일 정도 끊어버리거나, 요의를 조절 못해 다시 소변실수가 잦아진 것도, 차만 타자고 하는 것도 다 그리 설명할 수 있었어요. 신체 안의 자각이 생경하게 느껴진 거였죠. 답이 없다는 것은 때로는 끝없는 '풀이과정'을 찾는 것을 요구하니, 조금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했어요. 정원이의 사춘기는 내부지각의 변동이 온오프 하듯 그렇게 오나 봅니다. 지난 시간 동안 검사도 약조절도 다 시도 했었으니까요. 병원 진료는 마치 선문답 하듯 지나갔습니다. 답이 없지만 힌트를 주는 것만으로도 이 시간은 충분히 의미 있었어요. 그리고 다시 깨달았습니다. 대기실에서 맨발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웃는 아이를 보며 내 꿈은 천천히 조금씩 준비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지요. 한 템포 더 늦춰서요. 잊지만 않으면 되겠지요? 듣는 사람은 없었지만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오랜만에 눈이 시려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미처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해답은 어디에 있을까요? 연재를 멈추기 전 19화에서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는 여전히 답은 없습니다. 저 역시 길을 잃고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랬던 글을 거짓말로 쓸 순 없었으니까요. 괴로웠거든요.
4개월 동안, 글은 멈췄지만 삶은 그래도 이어갔습니다. 그 사이에는 두 가지 큰 일이 있었습니다. 21화에서 밝혔듯 정원이는 여름방학이 지나고 2학기 부터 특수학교로 전학을 했습니다. 그 과정은 아이의 아픔과 저의 위기를 직면한 순간이었어요. 두번째 전학은 조용하게 이뤄졌지요. 돌아보지 않기 위해서 집부터 급하게 구했죠. 금전적으로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전학이 결정되고나니, '가드닝 에세이'로 제출했던 공모전 2차 합격 소식을 들었습니다. 삶은 무엇인가 기다리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의문이 들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마무리만 성실하게 하자 싶었어요. 저에게는 정원이가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면접과 멘토링 피드백에서 가드닝 이야기에 자폐 이야기를 더하자고 했을 때, 눈 앞에 온 기회는 제가 기다려온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준비되지 않았다 하여 이 기회를 흘려보낼 순 없었어요. 밤늦게 글을 쓰고 졸린 눈을 부비며 낯선 출근길을 30분 가량 운전해 전학 간 특수학교로 정원이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다시 또 글을 쓰고 1시쯤 정원이 하교해서 아이를 살폈죠. 그 과정과 함께 병행해서 퇴고도 했습니다. 원고는 멘토의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부서지고 깨어졌죠. 방향을 짚어주면 다시 목차부터 흐름을 점검했어요. 그리고 다시 조립되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한 겹, 한 겹 벗겨내듯 지난 시간을 마주했습니다.
정말 신기했어요. 글에 쓰여진 모든 조각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마음 속 깊이 묻어둔 기억들이 그 시간의 마음을 품고 생생히 살아 있었습니다. 지난 기억들은 그동안 돌아보지 않았기에 밀봉되어 있었습니다. 만 개의 피스로 나눠진 경험을 다시 나만의 퍼즐로 맞춰나갔지요. 고통스러웠지만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그 여정에서 저는 아이와 살아가면서 저의 세계를 찾는 법을 비로소 배운 것 같아요. 불가능하다 여겼던 꿈을 찾았습니다. 물론 물리적으로는 조금 벅찼지만 충만감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줬지요. 아마 말로만 듣던 달리면서 느끼는 그 기분일까요? 몰입의 순간 말이요. 조각조각 나눠진 시간이 이어지는 기쁨을 느꼈거든요.
10월 10일 원고 마감이 지난 뒤 다시 이 브런치북 <자폐를 가진 정원이의 세계>를 열었습니다. 남들을 위한 가이드였던 이 글들은 저 자신의 여정을 위한 이정표이기도 했어요. 1화를 다시 읽으면서 세상에 낯선, 혹은 숨겨진 존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고심했던 순간이 기억났어요. 처음에 ‘느린시계의 정원' 매거진의 글들을 썼을 때는 한 달이 되어도 제대로 '발행'을 누르지 못했어요. 연민의 마음조차 원하지 않았던 가시투성이 고슴도치 엄마, 그게 저였죠.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 계속 기대고 싶었어요. 무엇인가 목소리를 내고 싶었죠. 글에서는 아이에 대해 설명하기 조심스러운 마음, 혹은 세상에 겹겹이 두른 방패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랬어요. '장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으면서도 그간의 노력의 가치를 제대로 말하고 싶었죠.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던 브런치북을 잘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썼습니다. 20화를 쓰는 순간 놀랐습니다. 1화를 썼을 때와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더듬거리며 용기내어 쓴 서툴었던 '정원이의 세계'에 응원의 댓글을 달아준 분들이 제게 용기를 주셨다는 것을 알았어요. 매사 살아남기 위해 지나치게 애썼던 저를 더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이 브런치북은 저에게 용기의 원점입니다. 응원의 마음에 보답하고자 20화부터 24화까지 다섯 편을 썼습니다. 하나의 이야기가 매듭지어졌지요. 그리고 이 이야기가 끝이 아니고 계속될 것임을 비로소ㅡ감히 약속드릴 수도 있었어요.
저는 제가 가진 것을 무용하게 여겼습니다. 저란 사람은 없고, 남은 시간은 아이에 대한 책임을 다하자 싶었습니다. 아프고 늘 지쳐있었거든요. 지금도 아이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부족해도 아이 등하교, 병원, 돌봄의 시간만큼은 놓지 않았어요. 그러나 100일의 시간 뒤에 달라진 것은 글을 쓰면서 조금씩 삶의 의미가 더해지는 그 순간이었습니다. 찬찬히 그 과정을 글로 남기는 것이 행복했어요. 회색빛 삶이 조금 제 빛깔을 찾았어요. 지금도 여전히 흔들리고, 때때로 아프지만요. 저는 글을 쓰면서 저 자신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지우고 아픈 아이를 돌보는 수많은 양육자들은 그 한끗의 행복이 찰나의 빛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빛은 사람을 살게 합니다. 식물처럼요. 저 역시 마찬가지랍니다. 19화와 20화 사이의 시간은 글을 멈추었지만 삶은 끈질기게 이어졌습니다.
살아있음 그 자체로요.
2부에 앞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자 번외편을 기록했습니다.
정원이의 세계를 함께 탐험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브런치북 <자폐를 가진 정원이의 세계> 1부는 변방의 언어로 머물던 ‘장애’가 아니라, 보통의 아이 정원이가 가진 자폐를 이야기합니다. 2부는 ‘서포트 리포토 for 정원이’로 직접 활용했던 리포트를 통한 구체적인 사례를 기록합니다. 이어서 행정학자인 엄마의 시선으로 정책의 틈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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