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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자리에서 각각의 목소리로 더 멀리 닿길

에필로그_가지 못한 길, 가지 않은 길

by 인생정원사

1년 전 '자폐'를 가진 정원이를 키우며 브런치북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 하나의 일을 꺼내기가 매우 어려웠지요. 조금 길을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이 브런치북은 자폐를 가진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들을 위한 글이기도 하지만 어디선가 또다른 자폐 스펙트럼 아동을 만나는 세상의 모든 어른들을 위한 글입니다.

처음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하면서 제가 겪은 이야기를 털어놓기 정말 힘들었어요. '느린 시계의 정원' 매거진에 지난 이야기를 1편을 쓰는데 한달 여가 걸렸습니다. 브런치북 <자폐를 가진 정원이의 세계>는 일종의 가이드북으로 시작했고, 아이를 키우며 든 생각과 방향성을 담았습니다. 매거진 <느린 시계의 정원>에서 긴 에세이 한 편에 배경 설명을 모두 담을 수 없었어요. 모두가 이해할만 한 이야긴 용어부터 어려웠거든요.

현실을 살아가면서 지난 기억을 정리하고 또 새로운 사건들을 겪었지요. 리얼 타임으로 진행되는 우여곡절로 인하여 연재를 멈추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쓰면 분명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판단을 할 것 같았지요. 누구도 상처받게 쓰고 싶지 않아서 시작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감정은 조금 내려두고 정원이의 세계를 탐험하는 정원사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안내자가 되어서 지도처럼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면 조금이나마 넓게 멀리 이야길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가상의 독자를 자폐에 대해 모호하게 알지만 관심이 있고 접할 가능성도 있는 어른으로 정했습니다.

하지만, 전 현실 안에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결국 저의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출발점에 있는 제 경험의 폭은 완전한 가이드가 아니라 일종의 출사표가 되었지요.



정원이와 함께 하는 여정에서 만날 모든 분들께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정말 뜻밖에도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하나의 글에 응원도 해주시고, 메인에도 올랐지요. 당사자와 가족 안에서만 나누던 이야기들을 바깥으로 끄집어 냈고,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은 것을 선물 받은 것은 제 자신이었습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버렸고, 가지못한 길에 대한 원망을 잊었지요. 그리고 저만이 쓰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길을 이 브런치북을 쓰면서 찾게 되었습니다. 2부에서는 지난 화에서 말씀드린대로 기록만 했던 지난 9년과 그리고 제가 전생이라 묻어뒀던 전공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를 쓸 계획입니다.

많은 부모가 다양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수학교를 짓기 위해 투쟁을 하기도 하고, 유투브를 통해 자신의 아이모습을 공개하며 조금 더 널리 깊이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전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가 브런치를 통해서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스펙트럼의 빛과 결처럼 부모도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아이의 이야기를 전한다면 조금이나마 세상에서 아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입니다. 보다 멀리, 보다 깊이 더 많은 아이들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이 조금이나마 잘 전달 되었기를 바랍니다.


덧붙여 말씀드리면, 이 이야기는 끝이 아닙니다. 두 갈래 길로 갈라집니다. 1부에 이어, 2부는 본격적인 사례와 정책을 다룰 예정입니다. '안녕'이라 말씀드리지 못하고 '또 뵙겠습니다.'라 말씀드릴게요.

브런치북 <자폐를 가진 정원이의 세계> 1부는 변방의 언어로 머물던 ‘장애’가 아니라, 보통의 아이 정원이가 가진 자폐를 이야기합니다. 2부는 ‘서포트 리포토 for 정원이’로 직접 활용했던 리포트를 통한 구체적인 사례를 기록합니다. 이어서 행정학자인 엄마의 시선으로 정책의 틈을 이야기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asd-papers

또 다른 이야기는 다음주에 최종 합격하면 내년 초 책으로 나오게 될 <정원, 뜻밖의 여정>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정원(gardening)' 이야기로 첫 브런치북을 만들었습니다. 공모전에 서류가 붙었고 면접에서 '자폐'를 함께 다뤄달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식집사의 가드닝 에세이였던 브런치북, <정원, 뜻밖의 여정>은 긴 퇴고 끝에 '정원이'와 '정원'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책이 되었습니다. 운이 좋다면 다른 브런치북에서 이 책에 대한 해설을 소개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글을 쓰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쓰게 될 기회를 바로 얻게 될지 몰랐습니다. 저와 정원이 그리고 식물에 대한 이야기로 다른 시선과 문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아래의 두 브런치북, '자폐'와 '정원'의 주제를 합치면서 대부분 새로 쓰면서 퇴고했어요. 그 소식은 또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autism-blossom

https://brunch.co.kr/brunchbook/intp-gard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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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부끄럽지만 정원이와 저의 모습을 잠시나마 공개합니다. 매순간 작은 반짝거림을 갖고 저희는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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