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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정원사 Dec 13. 2024

멜로디 로드를 달리는 드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명상하다

“우리 사회에는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발달장애인이 있습니다. (중략) 슬로우 스타터를 응원합니다. 공익광고협의회.“


아침 8시 59분. 요즘 클래식 FM에서 가정음악을 시작할 때 발달장애 관련 사회 공익 광고를 한다. 아이가 등교하는 때 늦으면 차에 태워 갈 때마다 종종 듣고 있다. 그래, 우리가 슬로우스타터지. 학교생활도 컨디션 따라 조금 늦게 가는 날도 있어야 하루의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걸 선생님과 일 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달았다. <지각할 때만> 들을 수 있는 이 광고가 아이의 삶을, 발달장애인이란 이름표를 단 채 생애의 출발점에 있는 지금을 은유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 인생이 영화라면 지금 이 장면은 무슨 의미일까?


아이 언어재활 때문에 지난 5년간 주로 20분 내외의 시내운전을 많이 했다. 일정이 많은 날은 20분짜리 운전 조각시간이 합쳐져서 80킬로의 시내 운전을 하는 날도 있다. 최근 1년은 아이의 사회활동을 지원해 주는 바우처를 받고 있다. 아이는 방과 후에 선생님 차를 타고 이동해서, 나는 혼자 운전하는 일도 제법 늘었고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오늘도 클래식 FM 라디오를 들으며 운전을 했다. 5년간 운전을 주 5일 하면서, 초보를 4년이나 붙이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두려움과 불안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 센터 시간에 늦을까 봐 운전하느라 내내 초조했다. 하지 못한 일들의 목록을 생각하며 이렇게 운전하는 시간이 낭비처럼 느껴졌다. 늦지 않아야 할 텐데, 아이가 도착해서 잠들면 어쩌지. 카시트 위에 모셔진 <책임감>은 그만큼 무겁고 진지하던 나날이었다. 그래서 운전하는 내내 아이에게 말을 걷고 이야기를 했다. 불편했고, 다른 일도 함께 하는 느낌이라 운전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었다.

 그래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전면유리의 흐르는 화면에 집중하면서 아나운서의 말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와 음악을 듣는다. 가로수도 나란히 흐르고 앞차도 시원하게 흐른다. 멜로디를 타고 구름도 흐른다. 비 오는 날은 빗방울 소리가 음악과 섞인다. 밤에 하는 운전은  흐르는 불꽃놀이 같은 가로수의 잔상 사이로 헤엄치듯 음악을 들으며 달린다. 오롯이 멜로디를 듣는 귀와 화면의 흐름을 눈으로 보며 마음을 비우고 머리의 잡념을 씻어낸다.

요즘은 맘에 드는 노래를 들으면 - 주로, 가곡 - 5개쯤을 한 가수의 곡으로 플레이리스트로 여러 개 만들어둔다.  ”오늘은 길병민 님 목소리“를 듣고 싶으면 [꽃피는 날-잔향-마중-첫사랑] 정도를 틀어두면 도착하는 거리다. 어떤 날은 이미조 님의 [어른]만 종일 무한반복하면서 이동한 적이 있다. 마음이 가벼운 날은 노래를 정하지 않고 라디오를 틀고 좀 더 가볍게 바이올린과 피아노 소리로 차 안을 채운다.

힘겹게 쏟아내던 <말>과 제시간에 닿아야 한다는 초조함 대신 멜로디가 채운 차 안은 조금 여유로워졌다. 아이는 멜로디에 맞춰 말이 아닌 소리를 흥얼거린다. 챗바퀴처럼 도는 이동의 시간이 숨을 조금 내쉴 수 있는 여백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함께 음악을 들으며 언어재활 수업을 가는 동안, 아이와 나는 <언어>가 아닌 <멜로디>로 채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어쩌면 그 순간으로도 우린 충분하지 않을까. 삶은 우리가 생을 다할 때까지 계속 지속된다. 영화처럼 결말이 있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순간순간의 장면에서 충실한 삶을 살아낸다면, 이 또한 의미 있으리라 생각한다.




음악은
세상의 언어이며,
시간의 흐름을
가장 아름답게 채우는
예술이다.





힘들었던 조각조각의 운전시간을 마음을 채우는 음악명상의 시간으로 바꾸니 하루의 일과가 조금은 숨 쉴 순간이 생겼어요. 아이에게 서두르며 재촉하지 않고 즐겁게 늦게 가는 마음을 얻은 것은 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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