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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녀 K Apr 12. 2023

2. 누가 제일 잘 고치나

엄마만 마음 편하다면 다 괜찮아


장녀  K는 동생 효주와 외국계 제약회사를 다니는 제부 왕서방에게 엄마의 병을 가장 먼저 이야기했다. 언뜻 제부가 어디 병원에 누구누구 의사가 어떤 진료를 잘하는지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제약회사에서 대형 병원에 소속된 스타 의사들을 관리하는 용도인 것 같았다.


“잘 고치는 사람이 스타 의사인가요?”


좋은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장녀 K는 오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마음은 조급한데 대형 병원은 요구하는 서류가 너무너무 많았다. 엄마의 조직세포 슬라이드를 1차 병원에서 가지고 오라는 접수처 직원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비염색으로 제출할 건지, 염색한 것을 가지고 가야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어디에 물어야 하는지 그리고 또 뭘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게다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대학병원 접수 용어들을 어디에 어떻게 물어야 할지 난감했다. 장녀 K와 동생은 최대한 모든 것을 빨리 알아봐야 했다. 세포 슬라이드는 초등학교 현미경 실습 때, 양파 내피를 벗겨 얇은 유리판에 끼워 물들였던 도구와 비슷하게 생겼다. 이번엔 양파 대신 엄마의 살이었다.  당황스러운 마음, 엄마의 불안이 고스란히 자매에게 전해져 심장이 쪼그라드는 듯했다.


탑 5라고 알려진 병원 중 적어도 세 군데는 가보고 정해야 한다고 왕서방은 말했다. S대학교병원, Y대학교병원, 이도 저도 아니면 C병원. 병원 안에 들러야 할 부서들, 챙겨야 할 서류 속 내용들을 한자씩 확인하며 메모했다. 받아 적으면서도 한국말인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내심 놀랐다. 순간, 가족 중에 의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휴가 내기 어려운 효주대신 프리랜서인 장녀  K는 엄마의 슬라이드 샘플과 접수에 필요한 서류들을 각 병원의 여기저기 창구에 전달하고 확인했다. 접수처에 쌓인 수많은 서류, 샘플을 보면서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아? 엄마 것과 섞이면 어쩌지?’하고 신경이 곤두섰다. 티끌보다 작은 엄마의 살점이지만, 서류 더미에 섞여 순서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같아 서글펐다. 감상에 빠지는 것도 잠시, 접수가 끝나야만 의사와 진료 약속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에만 집중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접수 뺑뺑이가 거의 끝날 무렵, 마지막 병원의 접수 대기석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제야 장녀 K는 보호자 없이 접수를 하러 온 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내가 아플 때 지금 나처럼 대신 뛰어다녀 줄 사람이 있을까? 동생?’하고 생각했다. 잡생각이 들 때쯤 엄마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지화자 님!”


장녀 K는 주말을 넘기지  않고 병원에 서류를 접수하는 데 성공했다. 엄마가 암 선고를 받은 금요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쉬지 않고 달린 덕분이었다.




3,4일 간격으로 다른 병원의 의사들과 진료 약속을 잡았다. S대학교병원에 동생 회사 사장님의 동창이 암센터 원장으로 있다는 말에 지화자 여사는 안도했다. 장녀 K가 보기에는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었다.



암 선고 이후, 엄마는 잠을 설쳤다. 하지만 S대학교병원에서 첫 상담을 받던 날, 지 여사의 기분은 한결 좋아 보였다. 엄마를 옆에 태우고 운전하며 집으로 가는 길에, 여섯 명의 이모들이 돌아가며 장녀 K에게 전화를 해왔다.


“효정아, S대 병원으로 정했어?”


“이모, 스피커 폰이야. 잘 모르겠어. 다른 병원도 가보고 결정하라고 제부가 그러네?”


통화를 듣던 엄마가 불쑥 끼여 들어,


“S대로 할 것 같아. 효주 회사 사장님이 암센터 원장님과 동창이라잖아. 아예 모르는데 가는 것보다 낫지 않겠어?”


말이 되건 안되건 그냥 듣고만 있었다. 엄마 마음이 편하다면 다 괜찮을 것 같았다.


“이모, 그래도 한 군데 더 상담을 받을 거야. 제부가 꼭 그렇게 하라고 했어.”


엄마는 결국 Y대학병원을 택했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고 했다. 장녀 K는 엄마만 마음 편하다면, 뭐든 다 괜찮기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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