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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nnievo Feb 07. 2024

대학병원에서 모셔온 수재

나는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내내 주사를 잘 놓는 간호사는 아니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신규가 잘해봤자 뭘 얼마나 잘했겠는가.
 
문제는 종종 몇몇 환자들 사이에서, 혈관도 구경해보지 못하게 해 놓고 '너한테는 안 맞아'라는 소리가 나왔다는 점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주눅이 들어 다른 선생님들께 도움을 요청했지만,
'시도라도 하고 와라, ' '해야 는다, ' '환자한테 지면 안 된다(?)'라는 말과 함께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다.
유난히 통증을 잘 느끼는 암 환자에게 주사를 놓으러 갔을 때였다.
나는 마스크 위로도 어린것이 티가 나는 간호사여서 암 환자들에게 기피 대상이었는데,
그날도 역시나 그랬다.
그래도 도움을 청했을 때의 결과가 너무 뻔해서, 나는 억지로 환자를 달래서 바늘을 들었다.
 
한 번, 두 번.
바늘이 혈관을 찌르는 순간 환자는 소리를 지르며 팔을 휘저었고, 결국 나는 두 번째 시도도 실패했다.
 
 
 
 


너 간호사 맞아?
이렇게 주사 못 놓는 간호사가 어딨어!
간호사 데려와!


 
 
 
 
 
 
이어진문장에 나는 순간 몸이 굳었다.
'간호사 맞는데...'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소심한 대꾸를 하며 가만히 서있었다.
 
그때 차지 선생님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씩씩거리며 들어와 소리쳤다.
 
 
 
 
 

대학병원에서 모셔온 수재예요!


 
 
 
 
 
대학병원 웨이팅 중이었으니 영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 스스로도 한 번도 그리 여긴 적이 없었던 나의 가치를 나 대신 얘기해 주는 그 한 문장에 나는 뭉클해졌다.
 
 
 
스테이션 바로 앞에 있던 병실이어서 대화가 다 들렸던 것인지,
선생님은 내가 어제 놨다는 부위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환자에게 투덜댔다.
 



어제는 한 번에 놨다면서요, 그러면 잘 놓는 거지!


하나도 안 부었네! 잘 놓네!



 
 
 부러 들으라는 듯 과장하여 얘기하는 선생님 덕에 가슴 한켠이 든든해졌다.


실력에 비해 거창한 수식어였지만,
언젠가 나도 대학병원에서 모셔온 수재가 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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