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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nnievo Feb 05. 2024

누구나 아프고 모두들 죽는다

잘난 이들을 부러워하다가도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부자든, 명문대생이든, 그 어떤 잘난 이들도 환자복을 입으면 모두 똑같아진다.
 
 
 
해외에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던 이가 요양병원에 흘러들어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그러했듯, 이제 막 죽음을 선고받은 그 이 역시 현실을 부정했다.
누구보다 앞선 삶을 살던 이를 한 순간에 삶의 문턱으로 밀어 넣는다면, 그 어떤 누가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유악한 보호자는 한순간에 까칠해진 제 자식을 차마 감당할 수 없었다.
홀로 열심히 콜록거려도 끓어오르는 골골거림에 괴로워했지만, 부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 한 번의 suction이면 당분간은 편안했을 테지만,
지속되는 불편함도, 한순간의 괴로움도, 제 손으로 결정하고 시행하기엔 너무나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내가 좀 더 성숙했더라면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사려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때의 나에게는 너무나 거슬렸다.
차라리 온전히 맡기기라도 하지, 왜 굳이 스스로 해보겠다며 자리해 놓고 아무것도 못한 채 발만 동동거리는지, 왜 뭔가 하려고만 하면 눈물을 보여서 나까지도 아무것도 못하게 만드는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녀는 참으로 고운 사람이었다.
살면서 더럽고 험한 것을 접해본 적이 없는 듯이 곱디고운 말씨와 외형을 가진 사람이었다.
 
거친 노동이라고는 한 번도 겪지 못했다는 듯 여리고 유약한 그녀에게 자랑과도 같던 자식의 병상행이 어찌나 큰 충격이었을지 모른다.
 
 
 
 
 
 
나의 부모가 한순간에 환자가 되어 말도 못 하고 때때로 컥컥 대며 숨도 못 쉰다고 상상하면, 나는 꽤나 오랜 기간을 하염없이 울며 아무것도 못했을 것 같다.
그러나 흔히 부모를 향한 사랑은 내리사랑에 견줄 바가 못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나는 차마 그 심정을 이해한다 말할 수 없다.
그저 그 상황에서 버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강인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모든 것엔 이유가 있다지만,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이 다 운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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