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또래였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디뎠어야 했을 꽃다운 청춘이었다. 고작 나와 같은 세월만을 살았으면서 뭐가 그리 지겨워 벌써 입을 다물고 세상에 척을 저버렸을까. 50대의 환자도 젊다, 요양병원에 입원하기엔. 그러니 입원이란 단어조차 어울리지 않는 20대의 환자에겐 더더욱 이르다. 꾸미지 않아도 예쁠 나이라지만, 그렇다고 병원복뿐인 패션쇼에 갇혀 살기엔 너무 아까운 나이다.
근무하며 딱 두 번, 보호자가 상주하며 간병하는 경우를 보았다. 부모는 남의 손에 맡겨도 자식은 차마 남의 손에 맡기지 못하는 것인지, 부모 된 자들은 항상 생업을 때려치우고 자진해서 이 텁텁한 건물로 향하더라. 자식이 없는 나는 감히 상상조차 못 할 숭고한 마음이다. 도로 손 하나 깜짝 못 하는 아이로 돌아가버린 자식이 뭐가 그리 사랑스럽다고, 제 몸보다 큰 아이를 어찌나 골고루 뒤집었던지, 어찌나 정성을 다했던지, 손도 꼼짝 못하는 와상환자면서도 자그마한 욕창 하나도 없더라.
내가 사지 멀쩡히 온 병실을 쑤시고 다닌다는 사실이, 텁텁한 병원에서 기약 없이 누워있는 동갑내기의 비극을 극대화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엔, 어쩐지 내 젊음이 죄스러워졌다. 척 보기에도 제 자식과 또래일 어린 간호사들이 그 시선에 각인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나 그 이에게도 찾아왔을지 모를 일상적인 미래가 사무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