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영적 사고.
원영적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에 대해 생각하고 궁리하여 행운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는 조롱의 대상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저에게 없는 것을 가졌다는 이유로 멋대로 부정하고 또 긍정한다.
그리고 그들이 적에서 -적이 되길 바라는 것만큼이나 세상만사의 모든 것들은 모순적일지도 모른다.
사고는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그러나 본디 생각이라는 말 자체에는 그 어떤 긍정이나 부정이 없고, 그렇다면 사고에는 부정만 남는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우리의 존재는 사고하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긍정된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를 악하다고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를 위해 억지로 만들어 낸 긍정의 요소는 때때로 악을 쓰고, 있는 힘을 다하여야만 달성 가능하다.
규범이랄까, 배려랄까 하는 것들.
악, 하고 누군가를 놀라게 했다면 아마 그것은 물리적인 형태를 가졌을 것이다.
거창하게는 문제로부터 세상을 구원하는 무언가이기도 하며 이는 문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행동의 영역이다.
그리고 모든 넘치는 생각은 행동으로 표출된다.
악을 쓴 모든 것들은 악 소리를 이끌어내나, 이때 강박이 붙으면 우린 또 치유라는 표현을 써서 이를 부정한다.
강박은 꽉 막힌 단단한 단어라서 이것은 결코 넘쳐흐르는 방식으로는 표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압력을 이기지 못한 것은 터진다.
즉, 이것은 사고로써 긍정된 존재가 사고로써 부정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는 조금씩 압력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
원점으로 돌아간다.
-적 사고.
부정을 긍정으로, 혹은 부정을 덜어내 긍정의 편에 서는 것.
우리는 지나간 어떤 때의 -적을 덜고, 목표하는 -적을 향해 사고하는 것을 사고, 혹은 뜻밖의 일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사고하는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은 뜻밖의 일일지도 모른다.
걱정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