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던 "진짜"의 얼굴

닫힌 마음을 열고 성장하는 시간

by 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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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시절, 나는 스스로가 사회경험도 많고 제법 똑똑하다고 여겼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 각종 매체와 콘텐츠를 통해 습득한 정보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정리한 나름의 사고 체계는 내게 확신을 주었고, 그것이야말로 시대를 주도하는 똑똑함이라 믿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당시의 나는 ‘스마트함’이라는 이름 아래 오히려 폐쇄된 사고의 틀 안에 갇혀 있었던 듯하다.


그 시절 나는, 나보다 먼저 삶을 살아온 부모님이나 선배, 나이가 많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대체로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들의 조언은 대개 ‘낡은 이야기’로 느껴졌고, 나는 그것을 시대착오적이며 비효율적인 충고로 치부하였다. “요즘 세상을 모르는 소리”라며 단정 짓고, 내 안의 기준에 어긋나는 말은 그때 당시엔 없었던 말이지만 ‘꼰대’라는 단어로 무력화시키곤 하였다.


그러던 중 최근 성해나 작가의 소설집 『혼모노』를 접하며, 나에게 이런 경험이나 내가 믿고 있는 "진짜"라는 탈을 쓴 가짜는 없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자기 중심적이었던 시기라 자부할 수 있는 20대의 나의 모습을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되돌아 보게되었다.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는 총 일곱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작품집으로, 인물들이 ‘진짜’라 믿는 무언가를 끝까지 고수하거나, 그 믿음이 무너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자신이 옳다’는 확신 속에서 타인의 생각을 배척하거나 외면하고, 때로는 상대의 진심을 왜곡하여 ‘가짜’로 몰아세운다. 그들의 모습은 낯설기보다는 오히려 익숙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 안에서 20대의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특히 표제작 「혼모노」 속 무당 문수는 자신이 ‘진짜 무당’임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인물이다. 신이 떠났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새로운 무당을 ‘가짜’라 부정함으로써 자신이 지켜온 정체성과 신념을 방어하려 한다. 이러한 설정은 매우 상징적이며, 스스로의 믿음에만 갇혀 타인을 배척하려 했던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진짜’는 과연 누구의 시선에서 정의되는 것인가? 나는 지금까지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자주 나 아닌 타인을 ‘틀렸다’고 판단해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부모님의 충고, 선배들의 조언, 때로는 지나가는 어른이 건넨 짧은 한마디까지. 그 모든 말들이 당시에는 나의 기준에 맞지 않거나, 낡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졌기에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이야기들 속에는 분명 내가 훗날 겪게 될 삶의 장면들이 예고처럼 담겨 있었고, 그것을 미리 듣고도 흘려보낸 것은 오롯이 나의 좁은 시야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어른의 말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들 또한 자신만의 경험과 세계관 안에서 판단하고 말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현재의 시점에서는 부적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 속에는 여전히 시간의 무게가 존재한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궤적, 수많은 시행착오와 선택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무시하기보다는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진정 필요한 것은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안목과, 나와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는 유연함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유연함은, 무엇보다도 ‘내가 옳다’는 신념을 잠시 내려놓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도.


20대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세상의 진짜는 결코 하나가 아니며, 너의 진짜가 누군가의 가짜가 될 수도 있고, 그 반대 역시 가능하단다. 그러니 모든 조언을 ‘틀렸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기 전에, 그 안에 담긴 진심과 경험의 가치를 생각하며, 한 번쯤은 조용히 귀 기울여 보는게 어떨까." 그 한 번의 경청이, 너를 덜 다치게 하고, 조금 더 단단한 어른으로 이끌어 줄지 모른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나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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