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예전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부모님의 사랑스러운 자녀였다.
20대의 내 삶에서 부모님은 늘 ‘주변인’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연애를 하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시간의 중심에는 언제나 나 자신만이 있었다. 학교 근처 선후배의 자취방을 전전하며 살았고, 집에 가는 일은 드물었다. 간혹 집에 가더라도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말 한마디 없이 잠만 자는 하숙생 같은 생활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나는 부모님에 대한 애정도, 생각도, 배려도 많이 부족했다. 부모님은 늘 그 자리에 계셨지만, 나는 그 존재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하루를 설계하는 데 있어 부모님은 영향을 주는 사람도, 함께 나누는 사람도 아니었다. 또한 부모님의 하루를 궁금해하지 않았었다.
총알과 같은 속도로 시간이 흘러 지금 나는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 이 두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자꾸만 울컥해진다.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주고, 하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 작은 순간들이 내겐 너무도 소중하다. 무엇을 해줘도 부족하다는 마음, 그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매일같이 샘솟는다. 그러다 문뜩 깨달았다.
'아, 나도 이렇게 사랑받았을 텐데.'
그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을 텐데. 왜 나는 그때 그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던 걸까. 20년 전의 부모님은 지금의 나처럼 한창 에너지가 넘치고 젊음을 누렸을 시기였을 것이다. 하루하루 바쁜 와중에도 나를 걱정하고, 챙기고, 기다렸을 그 시간을 나는 한 번도 돌아보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이 모든 관심과 사랑이 당연한 것처럼 누렸던 것이다.
언제나 건강하실 거라고만 믿었고, 시간이 넘쳐날 줄만 알았다. 함께 저녁을 먹고,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했지만, 나는 그 모든 시간을 나를 위해서만 사용했다. 그때 부모님이 건넨 작은 말들과 행동들,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랑이 담겨 있었는지를 지금에서야 조금이라도 생각해 내고야 만 것이다.
사랑을 주고 나니, 받았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다행히도 부모님은 아직 내 곁에 계신다. 너무 늦지 않아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리며 매일 안부 전화를 드리고, 자녀의 하루를 궁금해하듯 부모님의 하루를 궁금해하며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예전보다 힘이 많이 빠지시고, 기억도 더뎌지고, 기운도 없어 보이지만, 그 빈자리를 내가 조금이라도 채워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허전함과 미안함이 남아 있다. 그 시절, 나는 너무도 나만을 생각하며 살았다는 사실이, 부모님의 따뜻한 눈빛과 손길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에 남는다.
이 글을 읽는 지금의 20대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것을.
부모님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값비싼 선물이 아니라, 자녀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눈빛, 함께하는 저녁 한 끼라는 것을. 지금 바로 옆에 계신 부모님을 한 번 더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그 눈빛 하나가 부모님께는 세상 가장 큰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나처럼 너무 늦기 전에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