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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승우 Nov 12. 2024

무너짐

인간은 이성과 지성을 쌓아가며 진보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 잘난 이성으로 우리는 사람을 죽인다.

나는 내 인생이 계속해서 경험을 축척해나가며 성숙하고 진보한다고 생각했었다. 당연한것 아닌가 24년 내내 그래왔는데.. 

무너짐, 내가 무너져있다는걸 깨닫는건 꽤 시간이 걸린다. 잘났던 내 겉모습이 더이상 안보인다.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는게 꽤 힘들어진다. 거울을 마주하기가 무섭다. 숨이 막히기 시작한다. 머릿속에서는 감정들과 생각들이 통제할수없이 질주한다. 

하지만 나는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았다. 내 발목을 잡은건 역시나 내 사랑의 결핍이었다. 

나는 사랑에 실패했다. 사랑을 거부당하는것에 나는 언제쯤 익숙해질려나. 내가 마음의 문을 연적은 딱 두번이었지만 모조리 실패했다. 

난 사랑에 실패했다. 아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의 숙명인가보다. 내 보잘것 없는 사랑을 어찌나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하는지.

난 무너지기 시작했다. 내가 쌓아올렸던 경험들이 손바닥 끝에서 서서히 빠져나간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나라는 인간이 마음에 안들기 시작한다. 

내 몸뚱아리, 내 보잘것없는 천박한 얼굴, 내 조그마한 삶의 이력서, 내 목소리까지도 마음에 안든다. 

무너짐은 조용하게 이루어진다. 자살을 한다면 순식간에 한강 물바닥에서 숨통이 끊어질것 같지는 않다. 아마 천천히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날것이고, 

차가운 물속에서 내 선택에 대해 후회가 몰려올것이다, 눈물이 나기 시작하지만 물속에서 그딴건 중요하지 않다. 

고통과 후회와 절망이 날 죽을때까지 괴롭힐것이다, 그 영원같은 순간에 난 비명을 지를수도 있겠고 몸을 이리저리 비틀수도 있곘으나 단 하나의 소리도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을것이다.

나는 무너지고 있다. 내 무너짐을 알아차리는것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문득문득 난 내일이 기대가 되고 얼굴에 생기가 돈다, 내일 아침 해를 보면 사라질 그런 의미없는 하루살이의 생명력.

내가 몇개의 계단을 거꾸로 걸었는지 알수가 없다. 내 무너짐은 은밀하고 확실하다. 어디까지 무너지는지 내가 정할 수 없다. 

확실한것은 나는 무너지고 있고 무너질것이고 상당히 많이 무너져있다는 것이다. 

내 무너짐을 더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만큼 무너지질지 별로 무섭지 않다, 내 무너짐에는 이유가 있다. 

적어도 내 슬픔의 이유가 없던 시절보다는 한결 나아진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중요한 인생의 경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무너져본 경험을 가져보는것도 흔치는 않으니 말이다. 

썩 좋은 경험은 아니다, 난 많이 무너졌다.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게 얼마나 행복한가, 나는 기쁘게 무너졌다. 

내가 무너지고 싶어져서 무너진것도 아니고 내가 무너짐을 예상했던것도 아니고 그저 난 어느날 문득 길바닥에 무너졌다 .



무너짐, 그것은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다. 내가 쌓아왔던 공든탑이 한순간에 무너진다는것, 그 탑이 얼마나 부실공사로 만들어진것인지 실감하게 된다. 

무너짐, 그것은 날 겸손하게 만든다. 내가 세상따위 내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던 그런 비대한 에고, 그런 에고를 산산조각을 내어 박살을 내준다. 

무너짐, 난 무너짐에 익숙하지 않다. 삶을 살아가면서 무너짐을 앞으로 겪을 생각을 하면 미리 겪는게 좀 나았으려나, 싶은 생각도 든다. 

어찌됬건 난 무너졌다. 조용히 신속하게 무너졌다. 단 한번의 바람으로 인간이 무너지다니.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나는 약한사람은 분명 아니다. 난 내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내가 무너진것도 자랑스럽다. 

난 한동안 지하실의 쥐들과 함께 살것이다. 내가 무너졌다는것이 내가 태어났을때부터 무너진 인간이라는것은 아니다. 난 흔히들 그렇듯 차였고 무너졌다. 

무너짐에 이유가 있다는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그건 아마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을것이다. 

내 무너짐, 언제쯤 다시 일어설수 있을지는 감은 잘 안잡힌다. 아마 다시 일어설 수는 있을것 같다. 무너질 수 있으면 일어날 수도 있는게 사람이니까.

하지만 무너짐이 굉장히 쉽다는걸 난 깨달았다. 내가 원한다고 안 무너질 수 없다는것도 알고있다. 

난 또 한번의 바람을 맞고 또 쓰러질지도 모른다. 내 인생에 몇번의 바람이 불지 난 모르겠다. 쉼없이 불것이다. 난 무너지고 또 몇 발자국 걷고 또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또 무너질것이다.

인생은 축척의 과정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인생은 살아가는것일지도 모르겠다. 강력한 바람이 쉬지않고 불어 내가 땅바닥에 기어가는채로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나한테만 혹독하게 불지도 모르겠다, 내가 신은 믿지 않으니. 하늘 아니면 신 둘 중 하나는 바람을 불것이고 난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 난 그저 걸을 수 있을뿐이다. 인생은 그저 걸어나가는것 아닐까. 성장? 공든탑은 무너지기 더 쉽다. 성장말고 다른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내 인생은… 살아가는것이다. 바람이 불어도 탑이 무너져도 다시 또 탑을 쌓고 바람이 그치면 몸을 일으켜 세우는, 그런 살아가는 것이다. 삶은 그런것일지도 모르겠다. 삶이라는건 걸어가는것이고 살아가는것이다. 삶이라는건 바람이 불어도 신이 날 버려도 살아가는것이다. 삶이라는건 거창한것이 아니다. 삶이라는것은 보잘것 없는 생명의 연속성이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난 내가 어제 밟은 개미처럼 네발로 앞으로 기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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