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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주리 Jun 21. 2023

( 깔딱수 8화 )- 목표지향 경주마처럼


매수 수요일 워킹맘의 고군분투 이야기 깔딸수 연재 중입니다.



결혼 전 일을 할 때와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다시 일을 할 때의 마음가짐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결혼 전에는 목표도 없었다. 그저 일보다는 사람이 좋았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선배들이 좋았다. 늦은 밤 각자 수업이 끝나면 모였다. 핸드폰이 없어도 삐삐로도 우리는 장소와 시간을 정확하게 알릴 수 있었다. 생각만 해도 어찌 살았나 싶다. 하지만 그땐 오히려 시간 약속을 더 잘 지켰었던 거 같다. 우린 모이면 그때부터 저녁을 먹는다. 저녁이라고 하기엔 야식에 가까웠다. 늦게 시작하니 언제나 퇴근은 새벽 1~2시였다. 밥과 술과 수다로 그날을 풀고 집에 들어갔다.



남자친구는 늦은 귀가를 맘에 들지 않아 했다. 자기랑 평일에 놀아주지 않는다고 얼마나 칭얼거렸는지 모른다. 연락되질 않는 여자친구 집에서 밤마다 귀신처럼 서서 기다리곤 했다. 반가운 얼굴을 보면서 왜 이제 오냐고 싸운다. 살면서 그때 평생 싸울 걸 다 싸운 거 같다. 얼굴 보면 싸우고 안 보여줘도 싸우고 어쩌란 말인지. 직장 다니는 여자친구가 불안하단다. 이 얼굴이 불안하다니 감사한 사람이다. 학생이라 어쩌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더 불안하다고 했다. 그러니 맨날 싸우고 또 보고. 지금 생각하면 버틴 게 용하다.



그러다 결혼해서는 집으로 직장동료들을 불렀다. 신혼집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맨날 놀러 오는 손님들 때문에 좁은 우리 집은 항상 꽉 차있었다. 2002년 월드컵 때도 우리 집은 응원 장소였고, 생일때는 파티룸이었다. 다들 편하게 놀다 갔고, 사람좋아하는 남편도 나도 그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면서 그 모든게 정지가 되었다. 평생 둘만 살아도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재미있으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계획에도 없던 아이가 생기니 갑자기 어른 준비를 해야 했다.








© antoine1003, 출처 Unsplash






음주 가무가 사라진 우리 집은 드디어 조용한 태교를 위한 장소로 바뀌게 되었다. 생전 듣지 않던 클래식을 들었다. 술과 커피를 끊으니 좋은 차를 마셔야 했다. 수업을 다니면서 똑똑한 아이들 어머니에게 태교 비법을 들었다. 다들 배속에 있는 아이를 위해 공부를 했단다. 지금 아이들 가르치고 있는데 뭔또 공부를 한단 말인가? 유아나 초등 회원만 있으니 다른 공부를 해야 했다. 한동안 들고팠던 '수학의 정석'을 다시 펼쳤다. 거의 10년 만이다. 집에 굴러다니던 수학문제집을 풀기 시작했다. 내가 이걸 어떻게 풀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하지만 태어날 아기를 위해 태교하는 심정으로 수업 다녀와서 정석을 한두 장씩 풀었다. 주말에도 여행 가서 좋은 거 보고 집에 와서는 또 풀었다. 하도 까먹어서 처음에 있는 '집합'부분은 까맣다.


그래서 그런지 첫째는 수학을 잘한다. 대학도 수학으로 갔을 정도다. 학원도 안 다니고 EBS 인터넷 강의만 듣고 혼자 공부했는데 점수가 잘 나왔다. 수학 공부로 태교한 게 효과가 있었나? 싶다.



아이 두 명을 낳아서 키우면서 집이 아닌 곳이 그리워지는 건 당연하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아이들은 이쁜데 키우는 게 보람인데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어렵게 시작한 직장 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때는 나를 주저앉히고 싶었나 보다. 아님 회사일이 힘들 나를 위해 미리 걱정해 준 건가? 내가 일하는 게 몹시도 싫어했던 1인이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그래서 목표가 있어야 했다. 남편은 신입 딱지를 떼고 겨우 대리였으니 당시 월급으로는 우리 4식구 먹고살기엔 빠듯했다. 그래서 엄마 용돈 50만 원에 100만 원을 더 버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 소박했다. 할줄 아는게 별로 없는 경력단절한 여자가 아이 키우면서 150만 원을 벌겠다고 나서다니. 남편은 코웃음을 쳤다. 그냥 살살하라고 했다. " 이 남자야! 어디 두고 보라구."



목표가 확실해졌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150만 원을 버는 건 3개월 만에 훌쩍 뛰어넘는 일이었다. 이거 뭐지 목표가 낮았나? 그럼 남편 월급을 뛰어넘어 보자! 새로운 목표가 생기니 일이 힘들지 않았다. 엄마 일도 시어머니와 같이 사는 일도 문제가 되질 않았다. 집에서 나오면 집안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일만 했다. 회사에서 집안일 생각, 집에서 회사일 생각이 섞이면 이도 저도 되질 않는다. 확실한 분리가 필요했다. 그래야 내가 살수 있었다. 남들은 독하다고 했다. 독한 게 뭔지 모르겠지만 그게 좋은 거면 그냥 독하고 싶었다.









말이 경주를 할 때 눈가리개를 씌운다. 말의 눈은 옆에 달려 있어서 시야가 넓다. 말의 장점이다. 하지만 경마할 때 목표만을 보고 달리라고 눈가리개를 해야 한다. 그 당시 나는 눈가리개를 하고 앞만 보고 달렸다. 상담도 수업도 잘하고 싶었다. 공부해서 남주고 싶었다. 더 좋은 정보를 학생과 어머니들에게 드리기 위해 회사에서 하는 교육은 한 번도 빠진 적 없었다. 하다 보니 선생님들 교육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나서서 하기도 했다. 교육을 준비하는 과정은 힘들어도 이거야말로 배워서 남주고 내가 씹어 먹는 공부였다. 그러니 회사에서 하는 신입교육에서 수학은 도맡아 강의했고, 사고력 교재 전문강사로도 일을 하게 되었다. 신입교육이 특별히 더 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닌데 내 몸값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어느새 남편보다 월급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때는 회사 다니면서 내 차를 사고, 남편 차도 바꿔줬다. 마냥 그럴줄 알았다. (그때 아껴둘걸. )남편한테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눈치 빠른 남편은 회사를 때려치운 것이다. 아내가 많은 돈 버는 줄 알고 사업한다고 할 때 아차 했다. 못 버는 척 했어야 하나 땅을 쳐봐도 소용없었다. 그래도 남편 사업하는 3년, 다음직장 들어가기전 6개월 돈 한푼 벌어오지 못했을때 버티게 해준 내 일터가 고맙고 그사이 나와 아이들은 많이 자라있었다. 감사한일이 너무 많다.



한단계 오르기 위한 또 다른 목표가 필요했다.









© ronnieovergoor, 출처 Unsplash






다음주 수요일 이어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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