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깔딱 고개를 넘어가는 직장맘입니다.
수요일마다 깔딱수 연재 중입니다.
오늘은 6화~
@ jacquiemunguia, 출처 Unsplash
우리 집에 구세주 어머니가 들어오시면서 우리 집은 사람 사는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어머니는 직장할매라 이른 출근, 조기퇴근으로 보직을 바꾸셨다. 임금피크제를 하고 계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55세에 일을 줄일 수 있게 된 것이 우리에겐 감사할 일이었다. 젊은 아들 며느리보다 시간이 좀 많다는 이유로 자진해서 오셨으니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어머니는 6시 출근을 하셨다. 우리는 아침에 애들 챙겨서 어린이집에 학교에 보내면 어머니가 4시 퇴근하시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오셨다. 직장이 일산이니 일부러 이른 출근을 하셨던 것이다. 조기 퇴근으로 아이들은 밤늦은 시간까지 남아있지 않아도 되니 점차 마음도 안정이 되는듯했다. 어머니는 애들 데리고 나오면서 놀이터에서 노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1시간 정도 실컷 뛰어놀고 들어오면 애들은 밥도 잘 먹는다고 했다. 워낙 잘 먹는 애들이기도 했지만 우리 애들은 할머니가 해주는 음식을 잘도 먹었다. 일부러 뜨신 밥 먹인다고 밥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손수 하셨다. 애들은 엄마 음식보다 할머니 음식이 입에 맞는지 할머니가 해준 반찬만 먹었다. 그 핑계로 난 점점 요리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지만.
어머니는 쌀국수 회사에 다니셨는데 주말에 전국에 있는 현장 지원을 가끔 나가셔야 했다. 그럼 우린 4가족이 여행도 다니고 소풍도 다니고 했다. 어머니가 애들은 엄마 아빠가 봐야 함을 위한 배려였던 거 같다.
덕분에 나는 일에 몰입할 수 있었고 늘어나는 회원을 다 받아서 수업하는 게 힘들지 않았다. 늦은 시간 수업하고 회식도 하고 조직도 맡아서 팀장으로도 일할 수 있었다. 아침 9시 나가서 밤에 11시까지 일하고 들어오면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그나마 집안일을 해주셔서 감사히 회사일만 할수 있었다. 나를 성장시키고 회사에서 자리를 더 잡을수 있었다. 독박 육아하는 주변에 많은 워킹맘들에 비해 힘든 직장생활을 잘 버틸수 있었던건 시작은 엄마였고 유지는 어머니덕분이었다.
그렇게 적응되다 보니 남편이 잘 다니는 회사를 접고 사업을 한다고 한 것이다. 마누라가 벌면 딴생각한다더니... 그 말이 맞았나? 3년 동안 남편은 생고생과 빚을 남기고 사업을 접었다. 그때도 어머니는 아들 고생을 당신이 잘못한 것인 양 생활비를 대주셨다. 어머니가 주신 50만 원이 아니면 우린 아마도 제대로 살기 어려웠으리라. 애들 키워주시는데 용돈은커녕 생활비를 받아쓰는 뻔뻔함은 지금 생각해도 참 나쁜 며느리였다. 그땐 남편이 미우니 어머니도 애들도 미웠었다. 내 얼굴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겠지... 그렇게 티를 내니 어머니가 중간에 힘이 많이 드셨을 것이다.
남편이 사업을 접고 우린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그때 어머니는 퇴직을 하시고 집 앞 복지관에서 실버 바리스타가 되셔서 주 1~2회 일을 하셨고 아이들도 손이 덜 가니 집은 안정기에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젠 어머니 용돈도 드릴수 있는 형편이 되니 감사했다. 죽어라 죽어라 하는 줄 알았는데 어머니가 오시면서 우리 집은 애들도 편안해지고 우리일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회사일이 힘들때면 어머니는 멘토 역할을 하셨다. 회사 선배보다 더 멘탈을 꽉 잡아주셨다. 역시 좋은 어른이구나~ 이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시어머니가 롤 모델이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품격 있는 말투와 예의 바른 행동, 불의를 보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 쌈닭 기질까지 있는 멋진 분이시다. 고상한 말투에서 쌈닭으로 모드를 바꿀 때는 애들과 관련된 일이 생겼을때다. 우리 애들을 모함하거나 몸쓸 어른을 봤을 때는 딴사람처럼 소리 지르고 호되게 꾸짖는다. 그럴때는 오금이 저릴 만큼 무섭다.
어머니에게 일하면서 살림도 배웠다. 어머니는 친정에서 배우지 못한 집안 살림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다. 하지만 진심 싫지 않았다. 애들이 그런다. 다른 집은 고부갈등으로 친구들이 힘들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왜 이래? 우린 고부가 아니라 모녀지간보다 친했다. 어머니는 친절했고 솔선수범하셨기에 더 배우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지혜로운 분이셨다. 며느리랑 잘 지내는 것이 힘드셨을텐데 나는 철없는 며느리처럼 어머니한테 앵겼다. 알뜰하게 냉장고 정리하는 법, 싱크대 정리 법, 재료 손질법... 옷장 정리, 화장실 청소, 빨래개기... 반찬도 양념도 김치도... 뭐든지 배웠다. 배움이 끝이 없었지만 어머니는 가르치는 것에 진심을 다하셨다. 잘 했을 때 과한 칭찬을 하셨고, 내가 맛없는 음식도 감사히 드셨다. 애들은 지금도 엄마는 할머니한테 아직 더 배워야 하는데... 이런다. 내가 복이 넘치게 많다. 선물 같은 어머니를 하나님이 보내주셔서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직장맘은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일하기 힘들다. 그래서 주변도움없이 일하면서 애들 키우는 모든 직장맘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 그러니 어른들이 도와주시면 진심 감사하다. 그들이 당연히 해주셔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해주신다면 감사하고 못해주실 상황이라도 원망도 못한다. 하지만 30대 40대를 힘겹지만 잘 버티고 일을 놓지 않으니 50대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중간에 그만둘 이유가 오만가지다. 그래도 끝까지 해낸 건 내 50대를 위해서였나 싶을 때가 있다. 각자 일터에서 자리 잡고 안정기에 들기 위해서 아이들도 나도 같이 버티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100세인생 내 이름으로 살기 위해 준비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50살에 난 새롭게 시작했다. 집안일도 손이 덜 가니 그래도 되잖아! 이문주로 50년 살았으니 이젠 문주리로 50년 준비하는 건 당연하다. 다행히 이문주가 성실히 살아서 문주리로 사는데 힘이 덜 든다. 그 변화를 하루에 하나씩 옮기는 중이다. 꾸준히 하루 5분씩 한 가지씩 진행한다면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난 60대 70대 내가 더 기대된다. 어떤 어른으로 자랐을지 흥분된다.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물들여서 온전한 나로 살고 싶다.
그러니 지금 새벽에 글 읽고 쓰는 일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