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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작가 Aug 11. 2024

가슴이 뻥 뚫린 듯한 풍경

feat. 마시면 100년 산다는 약수


 우리는 지금부터 호수를 보러 갑니다.


 에-? 호수요? 솔직히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왜 가나 했다. 서울의 석촌호수, 유후인의 긴린코 호수, 비에이의 청의 호수.. 솔직히 살면서 많은 호수를 봐 왔고, 지금까지 본 호수 중 가장 예쁜 건 청의 호수였다. 그런데 또 호수라니?! 진짜 북해도 여행은 대자연만 가는구나- 싶었다. 나는 일단 신입사원이기에 거절할 수 없었고 또 유명한 여행 코스라기에 '넹 좋아용!'하고 차를 몰았다. 어쩌겠어! 네가 선택한 신입사원의 길인걸! 그렇게 노보리베츠에서 차를 몰아 1시간 정도 열심히 달려 도야코 호수가 보이는 사이로 전망대에 도착을 했다.








 사이로 전망대에 도착을 하니 되게 익숙한 산이 보였다. 뭐지? 저 산이 내가 봤던 그 산인가? 그렇다. 저번에 여자친구랑 다녀온 니세코 여행에서 봤던 요테이산이었다. 니세코쪽으로 간다고는 생각했는데, 도야코 호수에서 이 산을 볼 수 있을지 몰랐다. 산을 보니 오래된 추억은 아니지만 여자친구와 다녀왔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산 주위를 돌면서 같이 드라이브를 하던 그때. 여자친구는 운전을 해본 적이 얼마 없지만 도로가 넓은 홋카이도에서는 제법 운전을 했었다. 물론 가끔씩 질주본능이 발동해서 문제지만.. 



추억에 젖은 것도 잠시. 회사 사람들이 나를 찾기 시작했다. 예 갑니다, 가요!





 사이로 전망대는 무료로 주차가 가능한 전망대로, 약간 국도 한구석의 휴게소 같은 느낌이다. 내부 1층에서는 홋카이도와 이 일대의 기념품을 팔고 있었고, 2층은 레스토랑이 있었다. 아직 점심을 못 먹은 우리는 이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려 했지만 단체 손님으로 인해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으아! 배고파 배고파! 굶주린 배를 뒤로하고 휴게소 밖을 나와 도야코 호수의 파노라마를 보러 갔다.






 휴게소 건물을 나오면 보이는 풍경. 우와. 보자마자 정말 감탄사를 뱉었다. 파노라마가 보인다는 설명에 걸맞게 탁 트인 하늘과 들어가서 헤엄치고 싶게 만드는 푸른 도야코 호수, 그리고 주변을 덮는 여름의 녹색은 정말이지 마음 깊숙한 곳까지 뻥 뚫린 기분이 들었다. 있던 어둠도 걷힐 것 같은 그런 풍경. 정말, 대자연하면 홋카이도구나.



 호수를 따라 보이는 몇몇 언덕들과 산들은 각각 유명한 자연경관 관광지이며 왼쪽에서부터 나카지마, 쇼와신잔, 우스산이다.




 나카지마는 호수 가운데 있기 때문에 가운데 중 한자를 써서 '중도'. 그러니깐 일본어로 나카지마가 되는 것이다. 사이로 전망대에서 본 나카지마는 약간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듯한 실루엣을 하고 있었다. 이 섬은 선착장을 통해 유람선을 타고 들어갈 수 있으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코스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혼자 색깔이 다른 쇼와신잔과 그 옆에는 우스산이 있다. 이 산들은 둘 다 정상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활화산으로,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 아니 이렇게 가까운 곳에 화산이 두 개나? 사진 찍을 때는 연기도 안 올라와서 그냥 '산과 언덕인 갑다-'했는데 말이다. 





 사진들을 정리하고 올리면서 느낀 건데, 이걸 파노라마로 찍지 못한 게 조금 아쉽다. 항상 가로 아니면 세로. 비슷한 구도로만 찍는 자신이 갑자기 싫어지네. 색다른 방법으로 찍어보고 싶은데, 버릇이란 게 참 무섭다.






 전망대에서 호수를 보며 사진을 찍고 있자니 어디선가 시끄러운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왔다. 범인은 바로 헬리콥터. 사이로 전망대에서는 헬기를 타고 도야코 호수와 주변 일대를 볼 수 있는 헬리콥터 관광상품이 있었다. 금액은 6분 정도에 1인당 만 엔 정도. 사계채의 언덕에서도 봤었는데 금액은 비슷했다. 



마침 우리가 도야코 호수를 보고 있을 때, 헬기가 이륙을 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눈앞에 있던 것 같은 헬기는 점점 작아지더니 곧바로 호수 건너로 가면서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비행기는 많이 타봤어도 헬기는 타본 적이 없기에, 조금 궁금한데.. 언젠가 부자 손님이 한 번 태워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ㅋㅋ





 도야코 호수를 보고 난 다음에는 드디어 밥을 먹으러 갈 줄 알았지만, 우리의 출장 일정은 빡빡하다. 어쩌다 보니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다음 목적지인 후키다시 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후키다시 공원은 아까 봤던 요테이산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요테이산의 만년설이 녹아서 지하로 흘러들고, 그게 다시 솟아 올라서 지하수가 뿜어져 나오는 자연 수로공원이라고 한다. 그 지하수는 일본 100대 명수로 이 물을 마시면 100년은 건강히 산다고. 쉽게 말하면 약수가 나오는 공원. 내 기억 속 약수터는 중학교 때 이후로 없는데.. 괜스레 정감이 간다.






 차를 타고 40분 정도 달려서 도착한 후키다시 공원. 이미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는 오후 다섯시에 공원의 매점들은 문을 닫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물통을 들고 후키다시 공원을 찾았다. 이 공원에서 나오는 물로 만든 약수 커피가 그렇게 맛있다는데.. 이미 문을 닫아버린 매점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물통 행렬의 뒤를 따라갔다.






 행렬을 따라 내려가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물통에 물을 받고 있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후키다시 공원의 약수! 물통을 미처 챙겨오지 못했지만 마침 나에겐 먹다 남은 물의 페트병이 있었기에 담아서 마셔봤다. 100년을 살게 해줄 것 같은 약수는 내가 마셔 본 그 어떤 약수보다 차가웠고 시원했다. 몸 이곳저곳까지 전해지는 찬 기운은 정신을 바짝 들게 만들었고 오히려 맑아진 기분까지! 글이 약장수스러운 느낌이라 하나 더하자면.. 건강이 좋아진다는 느낌은 역시 한 두 번 마셔보고는 모른다.






 그리고 사실 약수를 마셔보는 것보다 풍경이 멋졌다. 녹색 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위 곳곳에 낀 이끼들은 이 작은 계곡에 사람의 손길이 얼마나 닿지 않았는지 보여주는 지표가 되었고, 계곡 이곳저곳에 부딪히는 약수는 파랑과 흰색으로 빈 곳을 채워줬다. 마치 정말 그림 같은 풍경. 이 작은 계곡만 봐도 이끼나 녹색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데, 모노노케 히메의 배경지인 가고시마의 야쿠시마는 더욱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진다.







 계곡 앞에는 또 약수가 뿜어져 나오는 돌탑 같은 게 있는데 여기서 이끼나 작은 풀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찍어 볼 수 있었다. 요즘 테라리움에 흥미가 생겨서인가? 이런 작은 생태계를 주의 깊게 보게 된다. 개구리라도 한 마리 있었으면 좋은 사진 찍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세상이 쉽지는 않겠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작은 풀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아보고 셔터를 눌렀다.




 늦은 오후의 공원은 약수터를 벗어나니 적막함이 맴돌았고, 새소리와 벌레 소리만 들렸다. 흐르는 물들이 지나가다가 잠깐 고이는 작은 호수는 물이 얼마나 투명한지, 호수 바닥이 다 보였다. 주차장으로 나 홀로 돌아가면서 느낀 거지만 집 근처에 이런 공원이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이른 아침이나 밤에 러닝을 즐긴 후, 땀방울을 닦으며 마시면 100년 젊어진다는 차디찬 약수를 에코 병에 담아 바로 드링킹. 키야-! 생각만 해도 운동할 맛 난다! 



 


 그렇게 우리는 7월 13일, 모든 출장 일정을 마치고 다시 삿포로로 돌아왔다. 저번에 니세코 다녀왔을 때도 그렇지만, 진짜 일본은 넓고 아직 안 가본 곳이 너무 많다! 비록 나중에 버스투어 코스가 돼서 자주 가게 되면 또 질릴 수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 멋진 풍경들을 보니 조금 더 돌아다녀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시점. 미야자키 쪽에서 지진이 크게 나는 걸 보면 조만간 큰 지진이 온다는데.. 나 둘러볼 수 있을까? 더군다나 아직 내 버킷리스트인 돗토리 사구도 못 가봤는데.. 괜스레 아쉬운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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