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엄니랑 50나랑 차박캠핑 바다로

by 캠강맘
제목을-입력해주세요_ (8).gif

설연휴 내내 전화를 꺼 놓고, 연락 두절한 엄니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냥..'이란다.

그냥 우울했다고..

80세 엄니가 그냥 우울일리가.. 옆에서 귀찮게 하는 아버지 없으니 좋다 하셨지만 그래도 아버지 빈자리가 생각에 가슴 깊이 사무치신건 아닌지.. 싶다..


예전엔 괜찮다 괜찮다. 시원하고 편하다 하셨는데, 작년부터 추석이고 설 때면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시는 것 같다.


올해 80인 엄니는 여느 또래 어르신들에 비해 동안이시다.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노인네가 나한테 반말 찍찍하는데, 왜 저러나 싶다가도 내가 '동안'인 게 죄지.. " 하실 땐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엽다. 또 어느 날은 한참 어려 보이는 반말 동생에게 "내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라고 물었더니 한참 어리게 보셔서 반말했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기어코 듣고 오셨다한다. 너무나 기분 좋게 싱글벙글 웃으시며 가끔은 깔깔 소리 내어 웃어 보이는 엄니가 아직도 문학소녀 같아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 짓게 된다.


강의를 다니는 내게 신발은 고무신 크록스 2켤레, 운동화 2켤레 10년째 버티는 중이다. 운동화는 이미 낡아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지만 강의할 땐 검은 고무신 크록스를 신고 가니,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대학생인 딸은 한참 멋 부릴 때라 필요한 물건들은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돈으로 구입하는데, 우리 집에서 신발이며 옷이 제일 많다. 그런데, 신발 부자 2위가 엄마다. 엄마는 2달에 한 켤레씩 사는 것 같다. 내가 본 것만 해도 1년에 5켤레는 사는데, 살 때마다


"좋아, 너무 편해. 저번껀 발볼이 아팠어"


하신다. 하지만 얼마 있다가 또 "좋아, 저번껀 발볼이 아팠어"하신다.. 매번 신발을 사실 때마다 똑같은 말과 단어를 선택하시는데, '엄마, 저번에도 똑같이 말했잖아요?" 하면" 됐어!! 아무 말하지 마. 너 때문에 머리가 아파!!" 하신다. 연세가 많으셔도 내가 아닌 딸의 잔소리는 듣기 싫으신가 보다. 그렇게 사 모으신 신발은 우리 집 신발장과 엄마 집 신발장을 채우고도 넘치는데, 뒤처리는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말을 안 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 넌, 신발이 그게 뭐니? 창피해서 못 살겠다."라며 너나 잘하라는 말을 하신다. 허허


우리 엄니는 80이 되셔도 아직 소녀 같고, 귀여운 우리 엄니에게 설은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날이다. 며칠 동안 우울해하는 엄니가 갑자기 바다를 보러 가신다고 한다. 혼자서..


"차박 갈까? 바다로?" 했더니 " 어디로?" 하신다.

"저번에 불멍 하는 곳 알았냈어. 강화 괜찮아?" 하니

"지금?" 하신다

"아니.. 지금 당장은 어렵고.."

"..."

"내일 가요, 내일. 괜찮아?"

"내일? 권서방한테 미안해서 어째.."

하신다..

"괜찮아. 권서방도 오랜만에 딸, 아들이랑 오붓하게 있으면 좋지.

먹고 싶은 거 시켜 먹고"

새벽잠 없는 엄니는 아침 일찍 집에 오셔서 나를 도와 집안일을 해주셨다. 덕분에 가족들이 좋아하는 돈가스도 만들고, 김치찌개도 끓이고, 동태 전도 만들어 냉장고에 넣고, 음식을 둔 곳 사진 찍어 위치를 공유했다.


서울에서 강화까지 2시간 거리 연휴가 겹치다 보니 차들이 많고, 조금씩 밀린다. 얼마나 행복해하시는지 피곤하실 텐데도 올림픽도로 한강도 보고, 우리처럼 차 지붕에 이것저것 얹힌 suv 차들을 보면서

" 재들도 간다, 캠핑 간다. 그치?" 하신다


아이들 어릴 때 캠핑이나 여행을 떠날 때면 경비를 조금이라도 아낀다며 한 달 치 음식을 준비했던 엄니다. 하지만 로컬음식을 먹는 게 예의고, 엄마도 오랜만에 새로운 음식도 먹으면 좋지 않냐~라고 설득해서 음식 없이 떠난 지 몇 년째인데, 뭘 먹을지 항상 기대하고 궁금해하는 엄니를 보면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그렇게 떠난 강화 민머루해수욕장

얼마나 설레고 기대를 하는지 2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엄니는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주무시지도 않고, 한강도 보고, 지나가는 차들도 보셨다.



KakaoTalk_20260303_145002051_06.jpg


민머루해수욕장

이미 작년에 와 봤던 덕에 자신감 있게 주차를 하고, 텐트도 치고, 불멍을 준비했다. 이미 먼저 도착한 캠퍼들은 활활 타고 있는 장작에 저녁 준비로 한참이었다.


KakaoTalk_20260303_145002051_07.jpg


물이 빠진 갯벌을 보며, 소녀 감성의 80 엄니는 갯벌로 뛰어가려고 준비 중이셨다. 하지만 곧이어 방송으로 18시 이후로는 갯벌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소리가 들리자 다시 차분하게 캠핑 의자에 앉아 노을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난 어리바리하게 텐트도 치고, 새로 산 테이블도 세팅하고, 불멍을 위해 장작에 불도 피웠다.


그리고 내가 만든 불멍 asmr까지 들으며 엄니와 3시간 동안 불장난을 했는데, 엄닌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으셨다. 계속 이리저리 사진 찍고, 영상도 찍고..




내가 어렸을 땐 대장 같았고, 무서웠고, 엄격했던 엄니가 지금은 내 절친이 되었다.


소풍 가는 아이처럼 설레어하고 신기해하고 기대하는 엄니의 모습을 보며


"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엄마~ 사랑해"

이전 19화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사회 생활 계급도 만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