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by 심바

10년의 시간을 함께 했던 베이비시터 이모님과 헤어지기 전 우리 가족과 이모님의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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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를 쓴 주인공인 이모님의 둘째 아드님은 작년 초 강원랜드에 정직원으로 입사를 하셨다. 카지노의 카드 딜러라는 멋있고 생소한 직업. TV에서 보던 마술사를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사람을 만나야만 하는 직업인지라 그간 궁금했던 것들을 가득 모아 질문했다.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만큼 벌어지는 일들 또한 참 다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아드님의 얼굴에서 반짝 빛이 났다.






살면서 딱 한번 강원랜드에 가 본 적이 있다. 20대 중반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노보드를 타러 하이원 리조트에 갔더랬다. 낙엽 떨어지듯이 내려가는 걸 배우다 S자로 내려가보기도 하며 겨울 스포츠의 재미를 조금씩 알아가던 참이었다.(일 년 내내 눈 한번 제대로 오지 않는 지역에 살다가 취업으로 서울에 오게 된 사람이다.) 안 쓰던 근육을 모조리 몰아 쓰며 눈밭에서 몇 번을 구르기까지 하고 나니 새벽보딩은 언감생심.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난 후 '여기까지 왔으니 강원랜드는 한 번 가봐야지'라는 일행들의 의견에 따라 첫 카지노방문을 하게 되었다.



내가 영화에서 보던 카지노는 대게 화려한 조명이 가득한 곳이었다. 모든 것이 반짝거리고 호화로운 분위기. 드레스나 정장을 근사하게 차려입은 손님들은 그곳과 더없이 잘 어울렸다. 물론 손님들이 가득한 공간 뒤의 분위기는 매우 험악했지만. 하지만 그날 내가 가본 카지노는 영화 속의 모습과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허리춤에 전대를 차고 있는 행색이 허름한 아주머니, 수염이 제멋대로 자라 며칠은 씻지도 못한 것 같은 얼굴의 아저씨, 한 손에 지폐를 한 아름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할머니. 마치 그들은 영혼이 빠져나가고 껍데기인 몸만 남아있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공허한 눈빛. 내게 그들은 마치 좀비와도 같았다.




갑자기 든 기시감. 맞아, 전에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지. 햇살이 따뜻했던 어느 봄날, 그때는 남자친구였던 남편과 놀러 갔던 과천 경마공원에서였다. 잔디가 푸릇푸릇한 공원에서 놀다가 호기심에 경마장에 한번 가보자하며 들렀던 기억. 그때도 똑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강원랜드와 배경만 다를 뿐 남루한 행색에 영혼이 빠져있는 듯한 좀비 같은 사람들이. 칩대신 마권종이를 들고 있었을 뿐.






저는 어느 카지노에 가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 <올인>에서 봤던 상류사회 느낌의 카지노 모습, 전혀 아닙니다. 슬롯머신에 눈이 퀭해진 채 꾸깃한 만 원짜리를 끝도 없이 쑤셔 넣고 레버를 당기고 있는 사람들은 초라한 행색의 노인들, 아줌마들, 아저씨들이었습니다. 화장실에서는 고리대금업자들이 이런 이들에게 백만 원 단위 돈 묶음을 빌려주고 있더군요. 카지노 주변에는 숱한 전당포가 그들이 전국에서 타고 온 허름한 차, 결혼반지를 담보로 잡으며 성업 중이었고요.

< 판사유감 > - 문유석


문유석 작가님의 책을 보다 그때의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떠올랐다. 너무 강렬했던 탓이다. 이모님의 아드님에게 지금도 먼지가 뽀얗게 쌓인 자동차들과 전당포가 그 앞을 빼곡히 채우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깨끗하게 정비되었다고. 주변이 정비가 되었다고 한들 재산을 맡기고 일확천금을 행운에 베팅하러 오는 사람들이 없어진 건 아닐 텐데. 아마 그것들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조금 옮겼을 뿐이겠지.

다시는 그 좀비들의 텅 빈 영혼과 마주치고 싶지 않다. 호기심으로라도 카지노나 경마장에 더 이상 내가 가지 않는 이유다.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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