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락션 울릴 줄 알지만
방학 끝자락을 장식하는 연휴를 맞아 부모님께서 딸의 집에 방문하셨다. 동생네도 함께 모여 모처럼 대가족 느낌이 물씬 났다. 오랜만에 서울나들이를 한 가족들을 모시고 나들이를 가려고 했지만, 도심은 집회가 예정되어 있어 마땅치가 않았다. 대신 집에서 멀지 않은 남산타워에 가서 전망대를 가보기로 했다. 달리기를 하러 남산 북측순환로는 가봐도 전망대를 가보기는 나 또한 처음이었다. 남산 도서관에서부터 걸어 올라갔는데 최근 들어 조성한듯한 나무데크길도 있어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조금은 수월했다.
이동은 자가용 대신 택시를 이용했다. 카카오 T 앱으로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했는데, GPS로 잡으니 다산정약용 선생님의 동상 앞이라고 나온다. 택시는 이내 잡혔고, 집까지 20분이 조금 넘게 걸린다고 나온다. 하지만 비상비상. 휴대폰 배터리가 12%밖에 남질 않았다. 택시가 오고 나서 꺼져야 할 텐데... 번호판 숫자를 외우고 휴대폰을 다시 잠갔다. 올 시간이 다된 것 같은데 왜 안 오지 하는 찰나 내가 서있는 곳 맞은편에 호출한 택시가 서있다.
"기사님! 이쪽입니다!"
맞은편에서 택시를 부르니 남편이 그냥 건너가서 타고 돌아오라고 한다. 알겠다고 했는데 기사님께서 유턴을 해서 내가 있는 쪽으로 와주셨다. 내가 호출할 때 위치 지정을 잘못한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내 꺼져버린 전화기로는 확인을 할 수도 없었다. 부랴부랴 택시를 타서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기사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운전을 시작하셨다.
남산타워에서 우리 집으로 가려면 용리단길을 지나야 했다. 연휴를 맞은 그곳은 젊은이들과 관광객들과 나들이객들이 모두 모인듯한 느낌이었다. 힙한 맛집들 앞은 대기줄이 끝도 없이 늘어졌고, 2차선은 오가는 사람과 차들로 가득 찼다. 내가 운전을 하면 운전자 위주, 내가 걸으면 보행자 위주의 사고를 하게 된다. 택시에 타고 있는 나는 차가 오건 말건 돌아보지도 않고 걷는 사람들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속으로 '차가 오는데 위험하게 보지도 않고 다니네.' 하며 중얼거리는 찰나, 갑자기 기사님께서 허허허 하며 호탕하게 웃으시는 게 아닌가.
"다들 커플이네요. 남자친구가 여자친구 앞에서 멋지게 보이고 싶을 텐데, 내가 클락션을 빵 울려서 놀라면 모양 빠질 거 아니에요. 한창 좋을 땐데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이렇게 천천히 비켜가면 되지요, 허허허!"
뒤에서 차가 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느릿느릿 걷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서 운전하시던 기사님은 2차선의 좁은 도로를 너무나도 매너 있게 운전하시며 빠져나가셨다. 순간 내가 가야 할 길을 막고 있는 것처럼 밉게만 보이던 사람들이 다르게 보였다. 행복한 연휴에 연인,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러 나온 사람들이었다. 택시를 타기 전에 나 또한 그 사람들 중 하나였지. 기사님께서는 좁은 골목길이 끝날 때까지 너털웃음을 웃으시며 천천히 배려운전을 하셨다, 클락션을 절대 누르시지 않고.
급출발이나 급정차 없이 부드럽게 움직이던 택시. 조수석에 타고 있던 내 옆으로 자가용 한 대가 좌측 깜빡이를 켜고 달려온다. '어, 너무 빠른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빵빵!!' 하는 소리가 사정없이 울려 퍼진다.
그렇다. 이 기사님은 멋없음은 배려하시지만 위험 앞에선 생각의 속도보다 빠르게 클락션을 울리는 분이셨다. 어른의 멋짐이란 이런 거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따스해졌다, 낭만 기사님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