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건 나의 내부에서 해소되지 않은 감정을 배출하기 위함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가장 어려워했던 것이 글을 쓴다는 것이었는데, 무슨 용기에선지 약 1년 동안 작가님과 글쓰기 수업을 함께 했더랬다. 나의 아픔을 마주하는 것이 힘들어 어쩌면 나도 모르게 회피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그 감정들은 '쓴다'는 행위로 다시 마주할 때마다 응어리들이 조금씩 풀렸다. 내가 내 마음을 보듬어준 시간이었다.
한 시인과 커피를 마실 때 들은 말이다.
"에세이는 그냥 한 번 읽고 잊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한 사회학자의 수업을 들을 때 거기서 들은 말이다.
"어쩌면 에세이란 자기가 읽히고 난 뒤 잊히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말이 떠오르는 책이다.
아무 욕심도 교훈도 멋도 없이, 그냥 한 번 읽히고 잊히고 싶다는 듯이.
그냥 그렇게 있는 책.
<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 - 요조
마스다 미리 작가님의 <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라는 책에 대한 요조 작가님의 글이다.
한창 마음이 복잡할 때 열 권씩 쌓아두고 읽었던 작가님이다. 저 서평에 동의하는 것이, 마스다 미리 작가님이 책을 쓰실 때 잡는 주제는 정말 작고 사소한 것들이 많다. 문장을 곱씹거나 두 번 생각하지 않아도, 후루룩 피식거리며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
'잊어버려도 상관없어, 나는 그냥 앞으로도 쭉 책을 쓸 거야.'라는 가벼운 다짐 같은 게 느껴진달까.
책을 읽다 떠오르는 생각, 기억과 추억. 일상에서 발견하는 반짝이는 순간들.
이제는 감정을 토해내는 대신 이런 것들에 대한 글들을 적는다. 나의 사유가 내 글을 읽어주는 분들에게 조금은 친근히 가닿기를 바라며. 그리고 읽힌 다음에는 잊히기를 바라기도 한다. 개인으로서의 내가 글에 많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내면의 나와 밀당을 하게 되는 장르인 것 같다.
'너 어디까지 보여줄 거야?'
좋은 글귀나 문구를 보면, 예쁜 단어를 만나면, 웃긴 얘기를 들으면 휴대폰을 꺼내 메모한다.(아직도 이런 내가 가끔 낯설다. #나작가인가봐모먼트) 소중한 재료들을 잘 모아 열손가락으로 이렇게 저렇게 타이핑을 하면 오늘 내가 지어야 할 글을 만날 수 있다. 열심히 잊힐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