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럽다니까

by 심바

러닝머신을 달리는 재미 중 하나는 재미있는 영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광고형 구독모델이어서 달리는 중간중간 건너뛰기를 한 번에 잘 눌러야 달리기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 35초짜리 광고는 보고 나서 몇 번을 다시 돌려봤는지 모르겠다. 처음 있는 일이다.


햇살 좋은 날, 아빠와 딸이 비슷한 옷을 입고 신나게 춤을 추며 거리를 활보한다. 아빠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힘껏 껴안은 후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며 헤어진다. 아마 등굣길일 테지. 부녀의 등뒤에 내린 산란한 햇살까지 완벽한 아침이다.


가령, 아침에 딸아이가 등교할 때 같이 손잡고 초등학교까지 걸어가는 그 십오 분이 하루 중 가장 순수하게 행복한 시간이다. 아침의 신선한 공기, 하루를 시작하는 설렘, 어린이들이 만들어내는 흥겨운 소음, 희망을 약속해 줄 것만 같은 환한 햇살 그리고 꼬옥 잡은 두 손...

< 자유로울 것 > / 임경선


책 속의 이 구절이 그대로 광고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https://youtu.be/SiuVR8oYZic?si=xk7n2RkDn9XrESiY






교대근무를 하기 전에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부서에서 근무했다. 점심시간의 꽃은 식사 후 마시는 커피 아니겠는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 남은 점심시간을 산책으로 채우며 회사 인근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초등학교 후문에 학부모들이 목을 빼며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2시 30분 즈음이었으니 아마 이제 갓 입학한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엄마였을 것이다. 해맑게 달려 나오는 아이와 엄마가 와락 껴안는 것을 보며 동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소원은 저렇게 학교 마칠 때 아이 데리러 가는 거야.

너무 부럽다!"




비가 오는 날에도 데리러 오는 일이 거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텅 빈 집에 혼자 들어갔던 하굣길이 많았던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나곤 했다. 지금처럼 이렇게 회사를 다니면 난 휴가를 쓰지 않는 이상 저 엄마들처럼 마중은 절대 갈 수 없을 텐데...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걱정을 사서 하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태어나고, 나도 우연한 기회로 교대근무를 하게 되면서 그토록 바랬던 등하굣길 마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내가 상상했던 것만큼 너무 행복하고 아름답기만 한건 아니었다.(혼자 씩씩하게 잘 간다는 친구의 아이가 부럽기다 했더랬다.) 하지만 이렇게 손을 잡고 도란도란 얘기하다 학교 앞에서 꼬옥 안아주는 그 순간은 참 행복했다. 소원이 이루어졌다.




몇 년 전,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로 와준 친구들을 만나 근처 맛집에서 모였다. 바삐 뛰어나가느라 사원증을 목에 그대로 걸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식당에 도착해 허겁지겁 식사를 했다. 그때 만난 친구들 세 명은 그 당시 모두 전업주부였다. 친구가 내 목에 걸린 사원증 목걸이를 빼서 자기 목에 걸며 말했다.

"난 이게 그렇게 매고 싶더라."

난 왠지 머쓱해져서 애들 데리러 갈 수 있는 네가 더 부럽다고 했더니 친구는 그게 왜 부럽냐고 했다. 나에게 사원증 목걸이가 어떤 의미도 부여되지 않은 그저 물건일 뿐인 것처럼, 친구에게는 등하굣길 마중도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한 조각인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막상 가지고 나면 아주 대단한 게 아니었을지라도.

친구도, 나도 서로의 부러움이 무엇인지 이젠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엄마보다 친구들과 등교하길 원하고, 친구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회사욕을 하느라 바쁘다.

부러워했던 서로의 순간을 이렇게 바꾸어 경험할 수도 있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그땐 우리 다 부러웠다니까, 그치?!

월, 수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