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땐 손을 들어 글짓기 대회에 나가곤 했다. 교내대회도 많이 열렸고, 과학의 날 같은 때에는 외부 대회도 꽤나 많았다. 많이 참가했던 만큼 상도 종종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중,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점점 글짓기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그때는 지금처럼 이과를 가는 것이 취업에 유리했던 시기였다. 자연스럽게 공대에 진학했고 그때부터 내가 써야 하는 글은 감정이 담긴 글이 아닌, 실험결과 보고서나 논리적인 수식의 전개와 같은 것들이었다. 몇몇 교양수업들도 어마한 창작을 요구하진 않았다. 그렇게 시나브로 글과 멀어졌다. 글을 써야 한다는 자체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입사 초기 열정이 넘치던 시절, 처음 근무했던 부서에서 같이 일하던 후배는 사보에 실릴 글을 멋들어지게 써냈다. 모니터링 결과를 버벅대며 분석하던 나와 달리 감성이 담긴 글로 우리 팀의 과업을 돋보이게 해 주었던 후배를 내심 부러워했다. 질투도 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능력치가 비슷해야 질투라는 것도 할 수 있는 거였다.
몇 년 전 영어원서를 함께 읽는 어느 채팅방에 계시던 작가님께서 글을 써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온정의 손길을 내미셨다. 나는 무슨 용기에서였는지 작가님께 연락을 드렸다.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약간의 절박함도 느꼈던 것 같다. 잘 써보고 싶다는 욕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그저 글을 쓰는 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은 네 명. 우리는 작가님이 던져주시는 주제나 글감들에 대해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쓴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을 때엔 얼굴이 붉어졌다. 주어와 동사도 잘 맞지 않는 비문에, 식상한 표현들. 숙제랍시고 제출은 했지만 내 글을 내가 다시 읽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다. 내 글을 나조차도 아껴주지 않으면 누가 아껴주겠나. 그러나 그땐 마치 내 모든 치부가 드러나는 것 마냥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련한 작가님은 많은 당근과 아주 약간의 채찍을 번갈아 우리들을 잘 이끌어주셨고, 몇 주 혹은 한 달에 하나씩 주어지는 숙제를 꾸역꾸역 해나갔다.
그렇다. 그때 떨리는 마음으로 용기를 낸 덕분에 나는 이 브런치스토리의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 중 하나는 적당량의 비관주의라고 생각한다.
삶이 밝고 맑고 행복하기만 하다면 굳이 머리 싸매고 글을 쓸 이유가 없다.
현실은 궁상맞고 나는 더 한심하고 무언가 해소되지 않는 응어리가 있는 사람일수록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내가 그런 것처럼.
< 심심과 열심 > - 김신회 -
처음에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모녀관계 때문이었다. 전생에 악연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괴로운, 천륜으로 맺어져 버린 사이. 토해내듯 내 감정들을 서투르고 거칠게 써 내려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내면아이와 마주해야 했던, 내가 나를 어루만져주고 토닥여주는 시기였던 것 같다. 몇 개의 글을 쓰면서 시간은 흘러 원색의 감정들이 조금씩 옅어지는 것을 느꼈고, 그제야 나는 과거가 아닌 지금의 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
글이 가진 치유의 힘이다.
일주일에 두 번의 일상 이야기와 한 번의 운동이야기를 쓴다. 일상이 단조로울 수 있음에 고마움을 느낄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 일을 하다 '이거 글감인데?'하고 놓칠세라 메모장을 열어 적는다. 그리고 나면 남몰래 씨익 미소가 지어진다, 이런 내가 낯설지만 고마워서.
나는 쓰는 사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