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다행이었던 거야

by 심바

가장 최근에 들었던 결혼식 축가는 겨울왕국장 최근에 들었던 축가는 영화 '겨울왕국'의 OST <사랑은 열린 문>이었다. 뮤지컬 무대와도 같은 고퀄리티의 노래와 움직임을 보니 배우들의 무대를 보는 것 같았다. 너무나 전문적이야... 가끔 그런 축가를 들으면 노래를 잘하는 지인을 둔 건지, 섭외를 한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해마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나오는 걸 보면 세상에 빼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은 정말 많다 싶지만, 내 주변에는 딱히 그럴만한 지인들이 없어서이다. 나나 남편도 마찬가지. 음주는 할 줄 알아도 가무에는 영 소질이 없는 뚝딱이들이다. 의미를 한가득 담은 노래로 가족이나 친구가 축가를 불러주는 것도 좋지만, 요즘은 보다 수준 높은 실력자들의 노래가 식장을 메우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듣기 좋은 노래는 주인공들에게도 내빈들에게도 좋은 법이니까.






15년 전 우리의 결혼식 준비는 일사천리였다. 부산에서 치러질 결혼식은 예식장과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가 모두 세트로 묶인 것이어서 준비를 위해선 서울과 부산을 넘나들어야 했다. 당시 같은 사무실 옆 부서에서 일하고 있던 나와 남편은 주말까지 출근해야 할 만큼 업무량이 많은 시기였다. 피부 관리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고 겨우 계약되어 있는 스튜디오 촬영을 하러 부산에 가면 간 김에 예식과 관련된 것들을 최단시간 내 최대한 많이 해치우고 오는 식이었다. 주례 없는 결혼식 같이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축가는 누군가 불러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한 남편은 가장 친한 친구에게 부탁했다고 했다. 당연히 자기가 불러야지 않겠냐며 단번에 승낙했다는 얘기에 엄지 척을 날렸다. 나라면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너무 부끄러웠을 것 같은데 그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결혼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당일은 누구 하나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 쉽지 않다. 몇십 년 만에 처음 뵙지만 사돈의 팔촌쯤 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틈만 나면 사진사가 웃으세요 할 때 타이밍 맞춰 웃으며 사진도 찍어야 한다. 드레스를 밟지 않도록 조심히 걸어야 하지만 시선은 땅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부모님과 눈이 마주칠 때는 울다가 콧물이 나 흉해지지 않도록 온몸에 힘을 꽉 주어야 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결혼식 컨베이어벨트는 이윽고 축가 앞에 다다랐다. 우리의 축가는 이적의 '다행이다'라고 했다.






슬 : 나는 눈물이 날 게 뻔한데도 단한테 축가를 불러주기로 했어.
왜냐하면 내가 창피한 게 대수인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야.

손은 계속 대답을 썼다 지웠다 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핵심을 찔렀다.

슬 : 넌 뭘 줄 거야? 내가 던지는 직구에 손은 속절없이 신음했다.

손 : 으.....

<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 이슬아 -


이슬아 작가님은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축가를 불러주겠다고 하고는 속절없는 부끄러움으로 마다한 친구에게 한방의 직구로 수락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그의 축가가 친구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그 친구는 노래를 참 잘하는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행이다'의 첫마디가 아슬아슬하게 시작되었다. 저음으로 시작하는 초입이었는데도 뭐랄까. 비포장도로를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왠지 모르게 불안해, 하려는 찰나 노래는 거친 바람 속으로 들어갔다. 그 노래는 저음과 고음 사이가 하늘과 땅이었다. 축가 직전에 엄마와 눈이 마주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상태로 이를 꽉 깨물고 참고 있었는데, 축가를 들으며 다시 한번 이를 꽉 깨물었다. 웃지 않으려고.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서 '다행이다'를 열창하는 그의 얼굴은 목소리와는 다르게 자신감이 어려있었다. '나 이 정도면 노래 꽤 잘하는 것 같은데.' 그의 얼굴 옆에 뜬 말풍선이 보였다.



다행하지 못했던 그의 노래는 이내 하객들을 웅성웅성거리게 만들었고, 그걸 보는 나는 또 한 번 이를 꽉 깨물고. '노래 연습 많이 했다고 하지 않았어?' 남편에게 웃으며 귓속말을 했다.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남편의 이마에 땀이 삐질 흐르는 걸 봤다. 노래가 끝나자 끝나서 다행이라는 뜻인 것만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말 다행이다. 고음 삑사리 좀 나도 뭐 괜찮아요. 끝나서 다행이에요.






어느 결혼식을 가도 내 결혼식의 축가와 같은 퀄리티의 노래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 이후로 '다행이다'를 일부러 찾아서 듣지 않는다. 어쩌다 라디오에서 들으면 혼자 피식거릴 뿐.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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