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가족이니까요

by 심바

울어버렸다. '이모에게'로 시작하는 편지 말미에 작은 버튼이 있었다. 음악이 나오는 건가 싶어 눌러보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테이블을 가득 메웠다.






둘째 아이를 키우기 위해 쓴 육아휴직이 거의 끝나갈 즈음이었다. 친정도, 시댁도 모두 지방에 있어 아이 키우는 것을 도와주실 수 있는 상황도 아닌 우리. 이제 돌을 갓 지난 둘째 아이와 막 5살이 된 첫째 아이의 육아에 힘을 보태주실 이모님을 찾아야 했다. 아파트 게시판에 구인 광고를 붙인 지 일주일 후 세분의 지원자를 면접했고 지금의 이모님을 만나게 되었다. 옆동 주민께서 본인의 자녀들을 잘 키워주셔서 추천해드리고 싶다고 하신 분도 계셨으나, 경력이 전혀 없으시다던 우리 이모님과 함께 한 이유는 둘째 아이 때문이다. 낯가림도 심하고 조심성이 많은 아이는 이모님을 만난 후 5분도 지나지 않아 조심스레 다가가 무릎에 앉더니 이모님에게 안겨버리는 게 아닌가. 그분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아이가 마음을 내어준 분이라면 다른 건 더 볼 것도 없었다. 그렇게 이모님과의 10년이 시작되었다.




아드님 둘을 키우신 이모님께 우리 두 딸들은 아기자기한 귀여움을 안겨드린 것 같다. 워낙에 손재주도 좋으시고 다재다능하신 분이셔서 우리가 부재한 시간 동안 아이들의 준미술선생님과도 같은 역할을 해주셨다. 그림 그리기, 만들기 같은걸 한창 좋아할 나이의 아이들은 이모님과 함께 원 없이 그리고 오리고 접고 색칠을 하는 시간을 만들어나갔다. 여동생이 없는 이모님의 아드님들은 마치 조카를 보듯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공원에 놀러 가 신나게 놀아주기도 했다. 이렇듯 이모님의 존재는 톱니바퀴 돌아가듯 빡빡한 직장인 엄마의 일상에 한 줌 단비 같은 분이었다.


몇 년 전에는 나와 남편이 갑자기 교대근무로 한꺼번에 발령이 나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엄마 없이 밤을 보내야 하는 어린아이들을 두고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도 바로 이모님 덕분이었다. 아침 이른 시간이나 밤늦은 시간, 주말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근무형태에 맞추어서 이모님께서 일정을 다 맞춰주신 덕에 속상하고 불편한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릴 수도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귀한 분을 다 만나게 되었을까. 매일매일이 감사함 투성이었다.




아이들은 시나브로 쑥쑥 자라 올해 중학교와 초등학교에서 가장 고참 학년이 된다. 늘 미루고 미루던 헤어짐의 시간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가 왔다.(물론 내가 이모님의 급여만큼을 더 벌 수만 있다면 이모님과 평생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아이들은 진작에 스스로 대부분의 것들을 해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별이 아쉬운 것은 결국 나였다. 종종 이모님께서 만들어주시는 반찬도, 남편과 내가 저녁 약속이 겹칠 때 편하게 마신 술 한잔도 이제는 안녕을 고할 때가 온 것. 그 몫은 다시 오롯이 내 차지가 될 것이 분명해 보였기에 최선을 다해서 미루었던 그 시간. 아이의 교정을 시작하며(꽤 큰 비용이 드는 일) 이모님과는 작별을 하기로 가족회의에서 결정을 내렸고, 지난 1월 말 이모님과의 10년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지난가을에 이모님의 둘째 아드님의 결혼식에 온 가족이 참석해 축하를 드렸는데, 그 아드님이 저녁식사를 했으면 한다고 이모님께서 말씀하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동네 맛집에서 이모님 가족과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만났다.





식사를 마칠 무렵, 둘째 아드님께서 이제 우리는 거의 가족이라며 이모님과 형,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선물이라며 카드를 건네셨다.

'ㅇㅇ이모에게.... 9월 15일에 만나요! 튼튼이 올림'

이모님도 처음 들으시는 아내의 임신 소식을 그 식사자리에서 전해주시는 게 아닌가. 카드에 예쁘게 붙은 초음파사진 아래 작은 버튼을 눌러보았다.


쿵쿵쿵쿵쿵


튼튼이의 심장소리.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그 소식을 전해준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 임신을 축하하는 마음까지 모두 겹치고 겹쳐 눈물이 터져버렸다. 이제 우리는 가족이니 나중에 튼튼이가 태어나면 나는 할머니가 되는 거라며 활짝 웃으시는 아드님을 보니 정말 가족이 늘어났다는 것이 실감 났다. 나도 주변에 늘 '우리 이모님은 나에게 제3의 엄마'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는데, 나의 마음과 이모님의 마음이 통한 것 같아 감사하기도 했다.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틀림없어. 갑자기 할머니가 되었지만 올라간 입꼬리는 쉬이 내려오지 않았다.






이모님은 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옆동네 남편의 동생네로 가셔서 조카들의 육아를 도와주시기로 했다. 너무 무겁지 않게 이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만 먹으면 이모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올여름 동서네가 이사를 하면 우리 집과 겨우 5분 거리. 5분만 가면 이모님을 만날 수 있다. 마음이 평안해진다.


9월에 만날 튼튼이, 이모가 많이 기다리고 있어 :)

미리 알려줄게, 너는 진짜 세상 최고의 할머니가 너를 손꼽아 기다리고 계셔. 이 할머니가 보장해!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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