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온 Mar 02. 2023

그 선배가 러블리즈 팬클럽이라고?

1화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인 2021년 1월. 나는 갑자기 아이돌 그룹 엔시티127의 팬이 되었다. 그 계기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자면 매우 길고 지루한 이야기가 될 것이므로, 그들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며 랩도 꽤 하고 대표곡들은 주로 강렬한 힙합 비트와 그와 상반된 미성 보컬의 조화가 특징인데, 그게 너무나 내 취향이었다는 정도로만 얘기하고 넘어가겠다.


 문제는 다른 팬들과는 달리 내가 그들을 오빠라고 부를 수 없다는 거였다. 멤버들 중 가장 연장자라고 해봐야 94년생으로,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렸다. 막내 멤버는 00년생(!)으로 나와 띠동갑이었다. 만약에(진짜 만약에) 그들을 실제로 만난다면, 나보고 누나라고 부르라고 해야 할지 이모라고 부르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 될 수준이었다.


 게다가 내 아이가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정답을 찾기 힘든 문제였다. 그래도 아이와 멤버들의 나이 차가 나와 멤버들의 나이 차보다 더 크니까 삼촌이 맞지 않을까 싶다가도, 아이돌한테 삼촌이라는 호칭은 영 어울리지 않는 것을 실감하고는, 그냥 누구누구 오빠로 부르라고 말해주었다.


 이건 나 자신조차도 예상치 못한 굉장히 의외의 면모였다. 사춘기 시절을 포함해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남자 연예인에게 열광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친구들의 이상형이 HOT → GOD → 동방신기로 변화하는 일련의 큰 흐름 속에서도 나는 SES 언니들과 보아 언니의 충직한 팬이었던 것이었다. 같은 여자로서 그들은 선망과 동경의 대상 그 자체였다. 그랬던 내가 엔시티에 입덕이란 걸 했으니, 정말 세상일 알 수 없었다.


 남편은 나의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를 굉장히 재미있어했다. 사실 내가 팬질을 시작하기 불과 몇 개월 전, 남편이 이런 얘기를 꺼냈었다.

“여보, 우리 회사 사람 중 나랑 친한 OO 선배 알지? 그 선배의 비밀이 하나 있어. 뭔 줄 알아?”

“응? 뭔데?”

“그 선배 사실은 러블리너스다?”

“러블리너스가 뭐야?”

“러블리즈 공식 팬클럽.”

“진짜?”

“응. 그 선배 심지어 콘서트 보러 서울까지 갔대. 그것도 혼자서.”

“와!”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OO 선배를 비웃은 것이 아니라 두 아이의 아빠이자 사십 세의 남성인 그의 이미지가 걸그룹의 열렬한 팬이라는 사실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정말 즐겁게 웃었는데, 지나고 보니 내가 그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적잖이 우스워했다. 그래서인지 다행히 그는 내 덕질을 일절 방해하지 않았고 심지어 도와주기까지 해서, 2022년의 엔시티 콘서트 티켓팅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때 나는 두 번째로 이 사람과 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첫 번째로 그렇게 생각한 건 SES의 재결합 콘서트 티켓을 구해주었을 때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