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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Mar 02. 2023

감동의 티켓팅

5화


실패를 만회할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일 년 정도 지난 2022년 9월, 잠실 주경기장에서 엔시티127의 콘서트가 열린다는 공지가 뜬 것이었다. 이전 해의 공연에서 큰 틀은 바뀌지 않고 셋 리스트에 신곡만 추가된 플러스(+) 개념의 콘서트라고 했다.


 나는 두 번은 고배를 마시지 않으리라고 굳게 결심하고 티켓팅에 필요한 정보를 모았다. 그중 성공을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 있었으니, 바로 에이스(유료 팬서비스) 가입이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전년도에는 신규 팬들의 에이스 가입을 막았었는데, 2022년에는 수시로 새 회원을 받는다고 했다. 유료 회원이 되면 일반 팬들보다 하루 일찍 열리는 선예매에 참여할 수 있다. 시험에서 가산점을 받는 것만큼이나 유리한 입장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이만 오천 원의 가입비를 결제했다.


 공식 팬클럽 회원이 되니 이제 진정한 엔시티즌(공식 팬클럽 이름)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었다. 선예매 혜택을 받으려면 티켓 판매처인 예스24에서 전날 낮 12시까지 팬클럽 회원 인증을 해야 했다. 이걸 하지 않으면 가입비는 그냥 허공에 날린 것이 된다. 나는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회원 코드를 복사해서 붙여넣었다. 인증 절차는 무사히 완료되었다.


 이제 본선이라고 할 수 있는 티켓팅을 준비할 차례였다. 선예매 오픈 일시는 9월 30일 금요일 오후 8시. 가장 먼저 스마트폰에 알람을 오후 7시 40분으로 설정해두었다.


 또한 성공적인 예매를 위해서 최소 두 대의 기기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 나는 즉각 남편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내가 데스크톱, 그가 스마트폰을 맡기로 했으므로 같은 아이디로 동시 접속이 가능한지를 먼저 확인해야 했다. 테스트해보니 다행히 내 아이디로 동시에 로그인을 해도 튕기지 않고 이중 사용이 가능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한 후, 드디어 선예매 오픈일이 다가왔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8시가 되기를 기다리는 우리 부부의 모습에서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배어 나왔다. 나는 아이와 놀아주면서도 틈틈이 시계를 확인했다.


 드디어 7시 40분이 되었고, 우리는 부리나케 컴퓨터 방으로 달려갔다. 아이에게는 거실 티비를 틀어주며 잠시만 뽀로로 친구들과 놀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뽀로로 왕팬인 아이는 엄마 아빠가 왜 그리 분주한지 의아해하면서도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예스24에 로그인하니 내 정보에 에이스 인증을 완료한 회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제 8시만 기다리면 된다. 나는 일절 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숨죽이며 20분을 기다렸다.


 드디어 8시 정각. 잽싸게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다. 엣지 화면이 즉각 백지로 바뀌었다. 그러더니 다시 예매 대기 페이지가 떴다. 어? 왜 예매하기 버튼이 안 보이고 아까 화면 그대로지? 벌써 8시하고도 1분이 지났는데? 화면 이쪽저쪽을 쳐다보며 어리둥절해하던 중, 나의 시야에 알림창 하나가 들어왔다.    


           

 으아악! 나는 절망에 휩싸여 머리를 두 손으로 거머쥐고 비명을 질렀다. 예매 창을 띄우려면 미리 팝업 차단을 해제해 놔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었다. 남편이 달려와 모니터를 보더니 나보다 더 크게 고함을 질렀다.

“이거 뭐야! 팝업!”

“으악!”


 나는 계속 소리를 질러대며 황급히 마우스를 움직여 망할 놈의 팝업 차단을 해제했다. 그리고 얼른 다시 새로고침을 한 후 예매하기 버튼을 눌렀지만, 벌써 나의 대기 순번은 몇천 단위를 넘어가 있었다. 아. 이대로 또 실패하는 걸까. 나의 희망이 재차 부서지려 하고 있었다. 팝업 차단을 브라우저 기본 설정으로 만들어놓은 프로그래머는 대체 정신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그리고 남편은 그렇게 오랫동안 컴퓨터를 쓰면서 어떻게 팝업 차단 해제를 안 해놓을 수가 있는가.


 내면의 분노가 죄 없는 이들에게로 표출되려고 할 즈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남편이 말했다.

“여보, 이게 순번이 더 빠르네. 이쪽은 될 수도 있겠다.”

 정말로 화면에 표시된 대기 순번은 일천몇백 정도였다. 게다가 그 숫자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폭발 직전의 분노가 거짓말처럼 사그라드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새 나는 희망의 불씨를 다시 피우고 다시 예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대기 순번이 0에 수렴하며 폰 화면에 예매창이 떴다. 토, 일 중 그나마 경쟁이 덜 치열할 듯한 일요일을 선택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니, 마침내 좌석선택창이 등장했다. 아, 포도알들이여. 내가 너희들을 보기를 얼마나 고대했던지!


 그러나 그것들은 쉽게 내 손에 포획되지 않았다. 분명 보라색을 띤 싱싱한 알이기에 클릭을 해보면 다른 사람이 구매 진행 중인 좌석이라는 안내창이 떴다. 수십 개의 보라색 칸이 이미 다른 이들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그 와중에 데스크톱에서도 대기가 끝나 좌석표가 떴지만, 잡히는 자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포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 과일이 더 싫어졌다.


 1층은 진작에 포기하고 2층과 3층을 노리며 미친 듯이 보라색을 찾아 클릭해대던 중, 스마트폰에 새로운 창이 하나 떴다. 입금 창이었다. 존버는 승리한다고 했던가. 나에게도 광명이 찾아들었다. 드디어 다른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좌석을 잡은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마침내 해냈다.


 행여나 뺏길세라 얼른 티켓값을 이체했고, 입금이 확인된 후 마이페이지에는 ‘NCT127 The Link+ Concert 2022 in Seoul 예매완료’라는 문구가 떴다. 나는 그것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내가 엔시티 콘서트에 가다니. 멤버들을 실제로 보고 라이브도 듣는다니. 꿈만 같은 일이었다.


 심지어 좌석 위치도 꽤 괜찮았다. 2층에서는 좀 뒤쪽 열이고 통로랑 가까운 데다 타워 스피커로 인한 약간의 시야 제한도 있다고 안내되어 있었지만, 3층에 비해서는 특석이나 다름없는 자리였다. 우리의 손이 그렇게 빠르지 못했음에도 그 정도 자리를 구할 수 있었던 건 역시나 선예매의 위력이었다. 티켓값이 원래의 가격에다 에이스 가입비가 더해져 사실상 더 비싸진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나는 팝업 차단으로 망할 뻔한 내 티켓팅을 살려준 남편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여보, 정말 고마워, 너무 고마워. 혼자서 했다면 이번에도 실패했을 거야. 여보가 폰으로 같이 해줘서 이렇게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어. 이 신세는 내가 꼭 갚을게.”

남편은 본인이 결정적인 도움을 제공했다는 사실에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우쭐거리며 말했다.

“역시 내가 금손이로구만. 저번 SES 공연 때도 내가 취소표를 구해다 줬었잖아. 어쩌면 난 이쪽에 재능이 있는지도. 에헴에헴.”

“그러니까. 내가 이번에 서울 갈 수 있는 건 팔십 프로는 여보 덕분이야. 내가 여보도 비슷한 일이 있으면 도와줄게. 아, 혹시 롤 챔피언십 이런 거 우리나라에서 열리지 않아? 그때 내가 같이 해줄게!”

“오, 그거 좋지! 그런 국제대회도 티켓 경쟁이 정말 치열하거든. 벡스코에서도 종종 경기가 열리던데, 그럴 때 얘기할게.”

“그래, 얼마든지!”


 그렇게 한동안 성공의 여운에 젖어있던 나는 몇 시간이 지난 후 팬 커뮤니티에 접속해보았다. 예매의 성공과 실패를 두고 여전히 게시판이 요란했다. 나는 눈에 띄는 몇 가지 글을 보고 마음속으로 댓글을 달았다.


‘에이스 가입을 해도 3층이네요...’

‘난 2층 잡았지롱.’

‘이번에도 플로어는 실패했어요. 1층이긴 해도 양쪽 사이드라서 잘 안 보이겠죠?ㅠㅠ’

‘지금 3층도 간신히 잡은 사람들이 넘치는데 당신 그런 말 하면 무지 욕먹을 듯.’

‘지방에서 같이 올라가실 시즈니(엔시티즌의 별칭) 구해요!’

‘낯선 사람이랑 내내 같이 있으면 불편할 텐데. 중요한 공연일수록 혼자 보러가는 게 최고지.’


 나는 나보다 안 좋은 자리를 잡은 시즈니들에게 유치한 승리감을 느끼며 성공을 자축하고는, 내일부터는 콘서트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실질적인 준비에 돌입하기로 했다. 한 달의 기한이 있었지만, 절대 방심은 금물이었다. 10월 23일 일요일 오후 6시가 되기 전까지는, 거대한 잠실 주경기장에 127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걸 두 귀로 직접 듣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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