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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Mar 02. 2023

매크로의 유혹

4화

11월이 되자 예상치 못한 기사가 떴다. 엔시티127이 2년 만에 무려 단독 콘서트를 개최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대면으로. 나는 몹시 흥분했다. 반드시 가고야 말리라. 마음속으로 단단히 다짐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걸.


 그즈음 우리 집에는 감기에 걸려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게 된 아이를 돌봐주기 위해 시아버님이 와 계셨다. 인터넷 예매 오픈일에도 퇴근 후 아버님을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비록 똥손인 나지만 오랜만에 가족끼리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한참 가족과 함께 즐겁게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중요한 걸 잊어버린 게 틀림없었다. 내가 또 뭔가를 까먹었네. 차키? 분명 거실 서랍장 첫 번째 칸에 넣어두었다. 폰? 티비 밑에서 충전 중이다. 그럼 지갑? 무사히 핸드백 안에 있다. 그럼 뭐지. 문득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8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으악! 여보! 콘서트! 예매!”

“헉!”

 나는 식탁을 박차고 일어나 얼른 방으로 달려갔다. 컴퓨터를 켜고 부리나케 예스24에 접속했지만, 이미 상황은 끝난 상태였다. 좌석이란 좌석은 모조리 회색 네모가 되어 있었다. 나는 허탈함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남편이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여보! 아까워서 어떡해. 알람을 맞춰놓지 그랬어.”

“그러게... 당연히 기억할 줄 알았는데.”

 옛날이었다면 기억했을 것이다. 워킹맘으로서의 일상이 너무 바쁘고 고단한 나머지 그 중요한 시간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물에 젖은 두루마리 휴지처럼 흐물흐물거리며 왠 소동인지 궁금해하고 계신 아버님께 돌아갔다.


 그 후로 며칠간 이건 운명이거니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래, 내 팔자에 무슨 콘서트냐. 애초에 애 엄마가 서울까지 그걸 보러 간다는 게 말이 되냐.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위안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미련을 버리지 못해 계속 예매처와 팬 커뮤니티를 뒤적거렸다. 한번은 퇴근 직전 들어갔는데 빈 자리가 몇 개나 보이는 게 아닌가. 취소표인가? 잽싸게 좌석 칸을 눌렀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분명히 보였던 좌석이 이미 예약된 것이라는 알림창이 떴다. 같은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 이건 소위 말하는 ‘매크로’의 짓이라는 걸 알았다.


 매크로는 나름 올곧게 살아온 나에게 커다란 유혹이었다.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하는 프로그램의 힘. 좌석을 수십 개씩 잡아놓고 비싼 값에 팔아 이익을 남긴다는 업자들. 그래도 불법적인 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다가도, 좌석의 시야를 두고 토론하며 신나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다른 팬들을 보니 마음이 쓰라렸다.


 그렇게 며칠을 꾹꾹 참던 나는 결국 그냥 어떤 것인지 알아나 보겠다는 생각으로 콘서트 매크로라는 검색어를 네이버 창에 쳐서 넣고 말았다. 몇 가지 블로그들이 떴다. 그중 하나를 골라 들어가 보니 성공 사례가 우후죽순으로 나열되어 있었는데, 대부분 구매자들과 나눈 카톡 대화를 캡처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중 엔시티 콘서트에 성공한 사람의 카톡도 있었다!


‘이거 아니었음 분명 이번에도 티켓팅 망했을 거에요. 덕분에 플로어석 성공했잖아요. 고척은 너무 커서 조금만 뒤로 가면 하나도 안 보이는데, 너무 감사해요.’

 이 캡처를 본 나는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바로 밑에 적혀 있는 업자의 카톡 아이디를 등록하고 있었다.

 과연 누군가가 진짜 답장을 할까? 제대로 된 아이디일까? 반신반의하며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혹시 티켓팅 문의 받으시나요.”

“넵~ 어느 공연 예매하시나요?”

 헉. 곧바로 답장이 왔다. 이거 진짜구나. 조금 겁이 나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어 대답했다.

“엔시티 콘서트요. 될까요?”

역시나 지체없이 답장이 왔다.

“엔시티는 취켓팅(취소표를 노리는 티켓팅) 매크로로만 판매 가능할 것 같아요ㅠ”

“네, 그거 구매되나요?”

“넵! 엊그제도 한 분 성공하셨어용. 이게 3층 쪽이 좀 풀리나 봐요.”

“네... 얼만가요?”

“5만원입니당. 플로어보다는 2~3층 쪽이 좀 풀리는 거 같아용.”

“네, 상관없어요. 근데 저 프로그램을 제가 사서 돌리는 건가요?”

“맞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제가 할 수 있을런가요...”

“그럼요. 제가 설명서랑 사용 동영상까지 같이 보내드려요. 이거 보시고 그대로 따라 하시면 돼요.”

“넵... 근데 이거 불법 아닌가요?”

“다 저걸로 갑니다~ 요새 맨손으로 티켓팅 못해용. 특히 엔시티 같은 아이돌 콘은요.”

“네... 그럼 좀 고민해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넴~”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찾아보니 저 매크로라는 게 사용법이 상당히 어려워서 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잘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무리 대부분 팬들이 쓴다 해도 어둠의 경로인 건 부정할 수 없다. 5만원이라는 돈도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이십 분간 고민한 끝에 카톡을 보냈다.

“죄송해요. 없던 걸로 해야겠네요ㅠ”

 숫자 1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남편과 밥을 먹으며 낮의 일을 얘기했다. 포기하길 잘했다고 할 줄 알았던 그는 예상외의 반응을 보였다.

“왜, 여보. 한번 해보지그래. 아직 코로나가 종식된 것도 아닌데 콘서트를 또 언제 할 줄 알고.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수도 있잖아.”

듣고 보니 그랬다. 그래도 나는 우려를 담아 말했다.

“그래도 정당한 방법이 아니잖아. 돈도 너무 비싸고... 마음 편하게 쓰지는 못할 것 같아서.”

 남편은 감자채볶음을 숟가락에 한가득 퍼서 입에 넣고는 우물우물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걸로 한다면서. 그럼 어차피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못 가는 거잖아. 시도도 안 해봤다가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려고. 그냥 해봐.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그럼 만약 성공하면 내가 주말 하루 동안 꼬박 서울에 가도 괜찮아?”

 종일 혼자 육아를 하기란 꽤나 힘든 일이기에 걱정이 되었다.

“응.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잖아. 내가 수빈이 볼 테니 다녀와.”

 다행히 남편은 흔쾌히 대답했다. 역시 나는 결혼을 잘했다.

“정말 고마워, 여보. 대신 내가 다녀오고 나서 하루 동안 휴가 줄게.”

“오! 그러면 되겠네. 잘됐다. 그날은 내내 플스만 해야지.”


 그렇게 마음에 걸리던 부분을 어느 정도 해결하고 나서 다시 매크로 업자에게 카톡을 보냈다. 1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저기요, 님. 제가 사정이 해결되어서요. 입금할 수 있게 됐거든요.”

 단숨에 1이 사라지더니 또다시 빛의 속도로 답장이 왔다.

“아하~ 계좌 드리면 될까요?”

“네.”


  업자가 보내준 계좌로 오만 원을 입금한 후 확인 카톡을 보냈더니 압축 파일 하나가 왔다.

“우선 전체 파일을 바탕화면에 압축 풀어주세요. 그리고 설명서와 사용 동영상 정독 부탁드립니다.”

“네. 해보고 안 되면 문의드릴게요.”


 나는 시키는 대로 압축을 풀고 텍스트 파일로 된 설명서를 열어 더듬더듬 사용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20분 후, 이건 도저히 독학으로는 배울 수 없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 컴퓨터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워낙 폰맹이긴 해도 컴퓨터는 잘 다뤘는데. 이 매크로란 것은 너무나 생소한 존재였다.


 결국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을 업자에게 일일이 물어야 했고, 간신히 어느 정도 사용법을 익히고 나니 두 시간 가량이 지나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다음날 매크로를 돌려서 취소표를 잡아보기로 하고 연습을 마쳤다.

 다음 날은 남편이 휴가를 쓰고 가정보육을 하고 나는 정상대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나는 어젯밤 힘들게 익힌 매크로 사용법을 남편에게 설명해주며 단단히 일러두었다.


“여보, 이걸 종일 켜놓으면 지가 알아서 여러 구역을 돌아다니다가 포도알(보라색으로 표시되는 빈 좌석)을 발견하는 순간 삐 소리가 난대. 그러니까 거실에서도 소리가 들릴 수 있게 스피커 볼륨을 높여 두고, 혹시 삐 소리가 나면 바로 달려와서 다음 단계를 진행해줘야 해.”


 다행히 남편은 나보다 컴퓨터를 잘해서인지 매크로의 알고리즘을 훨씬 더 빨리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를 믿고 나는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평소처럼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고 있던 오후,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남편이었다.

“여보, 삐 소리가 나서 컴퓨터를 들여다봤는데,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뭐??”

 나는 그 자리에서 서류를 내려놓고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럴 리가. 여보가 제대로 본 거 맞아?”

“그런 거 같은데. 포도알이 잡히고 입금 단계로 넘어가야 되잖아. 근데 이상한 에러가 나.”

“....”

 그렇다면 남편 말대로 뭔가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설명서 대로라면 매크로가 빈 좌석을 발견하면 자동으로 다음 화면으로 넘어간다고 했었다.


 남편은 자기가 설명서를 보고 다시 한번 확인해보겠다며 컴퓨터 앞에 앉은 모양이었다. 스마트폰 너머로 딸아이가 아빠의 무릎에 올라오겠다며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몇 분 후 남편이 외쳤다.


“역시 여보가 잘못 설정한 게 맞네! 예매 창에서 좌클릭하고 우클릭한 후에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으로 드래그해서 좌표를 따고 또 우클릭하고 좌클릭한 후에 예매하기 버튼을 눌렀어야 하는데 여보가 우클릭을 한 번 빼먹었네!”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순서 하나를 내가 빠뜨린 게 틀림없었다. 소중한 포도알 하나를 그냥 날린 것이다. 안타까움에 땅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보, 나 대신 애써줬는데 미안. 그거 너무 어려워서 난 한다고 했는데도 실수를 했어. 너무 아쉽다.”

 나는 힘없이 남편에게 얘기한 후 다시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쩔 수 없지.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내가 한번 봐줄게. 설정을 고쳐서 다시 잡아보자. 취소표가 또 나오겠지.”

“고마워...”

 그러나 우리의 희망과는 달리 주말 내내 매크로를 돌렸음에도 삐 소리는 다시 울리지 않았다. 나는 며칠 더 프로그램을 켜놓았다가 꺼버리고 말았다. 아무 성과없이 돈 오만 원만 날린 것이다.


 나는 지나친 욕심을 부린 결과라고, 매크로를 사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하며 실의에 빠졌다. 사용법이 복잡하니 해본 사람이 아니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한 누군가의 말을 믿었어야 했는데. 조금만 더 연습해보고 설정할걸. 그때 그 자리만 잡았으면 다음 달엔 난 서울에 가 있었을 텐데. 마음속이 좌절감과 후회로 가득 찼다.


 시무룩하게 앉아있는 엄마의 마음도 모른 채 딸아이는 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주말이 되어 엄마 아빠가 모두 집에 자기와 같이 있으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뽀로로 친구들 인형을 데리고 역할극을 하며 신나게 노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나는 아이를 향해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이도 나를 보고 배시시 웃더니, 노래를 부르며 놀기 시작했다.

“뉴땡~ 뉴땡~ 뉴땡~”

 나는 그야말로 빵 터졌다. 그건 엔시티의 영웅이었다. 엄마가 하도 많이 틀어놓으니“new thangs, new thangs, new thangs”라고 반복되는 후렴 가사를 저도 모르게 외워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네 살배기가 요란하기 그지없는 케이팝을 부르는 걸 보니 너무 우습고 귀여웠다. 역시 기특한 우리 딸이었다.      


어두운 어제가 오늘을 삼켜 버리기 전에
내 목소린 더 커져야 해 소리치면 돼 내겐 no more trauma   

 

가사에서 알 수 있듯 이 노래의 주제는 트라우마의 극복이다. 그래, 나도 no more trauma다. 언젠가 영웅을 실제로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이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티켓팅 실력을 올려서 다음번엔 꼭 성공할 거야. 그러니 이번엔 온라인 생중계로 보는 것에 만족하자.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콘서트 당일, 남편의 양해를 얻어 만화카페를 찾았다. 집에 있으면 아무래도 온전히 공연에 집중하지 못할 테니, 만화카페의 칸막이를 하나 잡고 누워서 관람하기로 한 것이다.


 깨끗해 보이는 자리를 잡고 음료를 주문한 후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생중계 앱을 열었다. 이제 막 공연이 시작될 참이었다. 볼륨을 올렸다. 조용한 만화카페에 내 폰 스피커를 통해 나온 팬들의 함성이 우렁차게 퍼졌다. 황급히 볼륨을 도로 줄이면서 난 또다시 중요한 것을 잊고 왔음을 깨달았다.


 그날 나는 칸막이 안에서 세 시간 내내 최소 음량으로 설정해놓은 폰을 번갈아서 귀에 댔다가 눈앞에 들었다 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했다.

“여보! 나 이번엔 이어폰을 안 들고 왔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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