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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Mar 02. 2023

실장님과 총괄님

6화


다음 날 출근한 나는 10월 24일 연차를 신청했다. 23일에 콘서트는 최소 9시나 되어야 끝날 테고, 그러면 당일 밤이나 다음날이 되어서야 울산에 내려올 수 있을 것이므로 출근이 어려울 것이리라. 콘서트 다음날의 꿀 같은 휴식, 이 얼마나 달콤한 계획인가. 실장님은 본디 직원들이 자기 일만 제대로 처리한다면 휴가를 언제 얼마나 쓰든 상관하지 않는 관대한 분이므로 바로 결재를 해주셨다.


 몹시 마음이 들뜬 나는 사무실 사람들이 티 타임을 위해 모였을 때 불쑥 자랑을 했다.

“저 이번에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 보러 가요!”

 실장님과 동료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오, 정말이에요? 가수 누구요?”

“저... 엔시티라고 아이돌 그룹이요.”

“?”


물론 사무실 분들은 엔시티를 알 턱이 없었지만, 나와 동갑이자 바로 아래 직원인 최 계장은 이쪽에 약간의 지식이 있어 보였다.

“아~ 들어본 적 있어요. 차장님 걔네들 팬이에요?”

 나는 이름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다는 데 기뻐서 얼른 대답했다.

“네! 완전 팬이거든요. 이번에 티켓도 엄청 어렵게 구했어요.”

“그럼 혹시 연가도 그거 때문이에요?”

“네...”


 나는 약간 민망해하면서 대답했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나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실장님 역시 웃으며 말했다.

“이야, 차장님 대단한데. 연가까지 소비하면서 보러 가다니. 그나저나 콘서트가 어디서 하는데?”

“서울이요!”

 나는 이번엔 아주 신이 나서 대답했다. 실장님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서울? 콘서트 보러 서울까지 간다고?”

“그렇죠.”

“난 또 울산에서 한다는 줄 알았지. 저기 케비에스홀 같은 데서 말이야.”

 나는 실장님의 이 터무니없는 발상에 더 놀랐다.

“네에? 그럴 리가 있나요. 케이베이스홀은 너무 작아요."

“작거나 말거나, 나는 엔 뭐시기인가 하는 애들 알지도 못하는데.”

“그럼 실장님은 아는 아이돌이 누가 있는데요?”

“내가 아는 건 핑클이 마지막이야. 아니다, 소녀시대까지는 안다.”

“와... 둘 다 대단히 오래된 그룹들이네요.”

“요새 애들은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하긴 저도 엔시티를 알기 전까진 그랬어요.”


 최 계장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걔네가 왜 좋아요? 노래가 좋아요?”

“네! 노래 정말 좋아요. 그리고 너무 잘하기도 하고요.”


 최 계장은 여전히 신기한 표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MBTI로 말할 것 같으면 그녀는 단연 S로, 매우 현실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나 같이 골수까지 N인 종자들을 보고 놀라워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녀가 말을 꺼냈다.

“제 친구 중에서 미친 아미가 있거든요. 걔는 BTS 신곡이 나오면 가족 폰에다가 친구 폰, 공기계까지 동원해서 무한반복 재생을 해놔요.”

“그걸 전문 용어로 스밍(스트리밍의 준말. 팬들이 음원 순위를 높이기 위해서 음악을 듣지 않을 때에도 틀어놓는 것)이라고 하죠.”

“맞아요! 걔가 딱 그렇게 말했어요. 그리고 어떻게 티켓을 구했는지 콘서트도 다녀오더라고요.”


 방탄 콘서트 티켓은 엔시티의 그것보다 구하기가 열 배는 더 어려울 것이다. 그걸 성공했다니 그 친구라는 이는 대단한 능력과 팬심의 소유자가 틀림없었다.

“와... 그분 진짜 리스펙이에요. 본받고 싶어요.”

 나의 진지한 대답에 최 계장은 특유의 하이톤으로 까르륵 웃었다.

“그러게요. 차장님하고 만나면 말이 잘 통할 것 같아요.”

 

그날 티 타임은 서로 옛날에 공연을 관람했던 추억을 얘기하며 끝났다. 실장님은 이후로 뭐만 하면 엔시티를 들먹이면서 나를 놀렸는데, 결국엔 엔 뭐시기가 아닌 제대로 된 이름으로 언급하시는 걸 봐서 엔시티라는 세 글자를 똑똑히 기억하시게 된 듯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팬의 임무를 잘 수행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며칠 후 저녁, 갑자기 남편이 싱글벙글 웃는 표정으로 집 문에 들어섰다. 오늘따라 퇴근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더 좋았던 건가 하며 의아해하고 있는데, 그가 헐레벌떡 말을 꺼냈다.


“있잖아, 여보. 오늘 회사에서 총괄님이랑 점심을 먹었는데, 여보한테 꼭 전해줘야 할 얘기가 있어. 여보도 들으면 반가워할 거야.”

“왜? 무슨 얘긴데?”

“잠깐만, 나 옷만 갈아입고.”

 남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는 방에 들어갔다. 잠시 후 편한 차림이 되어 나온 그가 말했다.


“오늘 밥 먹는데 총괄님이 딸 얘기를 꺼내셨어. 그러면서 푸념을 막 하시더라고.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도 철이 안 든다면서.”

“딸이 어쨌는데?”

 남편이 전해준 얘기는 이랬다.


“아니, 우리 딸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연예인을 쫓아다니지 뭔가. 이번에도 뭐라더라, 엔... 뭐시긴가 하는 애들이 있는 모양인데 걔네 콘서트에 간다고 표를 구해야 한다느니, 무슨 행사가 있어서 서울에 간다느니 얼마나 난리를 치는지 말도 못해.”

“저... 총괄님. 혹시 그 아이돌 이름이 엔시티라고 하지 않던가요?”

“오! 그래, 맞네. 엔티시인지 엔시티인지 그거였어. 자네는 어떻게 아나?”

“사실은 제 와이프가 열성 팬입니다. 따님처럼 와이프도 티켓 구한다면서 난리였거든요. 거기에 저도 동원되었고요...”


 총괄님은 탄식했단다.

“아니, 시집가면 나아지겠거니 해서 그냥 내버려 뒀는데 결혼해서도 그 짓을 하고 다닌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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