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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Mar 02. 2023

만반의 준비를 하다

7화


앞에서도 말했듯이 제대로 콘서트를 즐기려면 준비물이 필요했다. 필수 품목은 다음과 같았다.     


울산 ↔ 서울  KTX 표
따뜻한 옷과 방한용품(10월 밤의 잠실은 상상 이상으로 춥다고 했다)
망원경
응원봉     


 그날 울산에서 서울로 가는 KTX는 많았지만, 문제는 내려오는 차였다. 10시 반 이후의 기차가 하나도 없었다. 공연이 기본적으로 3시간은 이어질 거고 앵콜까지 감안하면 10시 차는 너무 촉박했다.


 다음날 휴가를 냈으니 서울에서 숙박을 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역시 새벽에 이동하더라도 집에 와서 자는 게 훨씬 덜 피곤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11시를 조금 넘어 남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심야 시외버스를 타기로 했다. 원래 장거리 버스 여행을 싫어하는 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음을 정한 후엔 얼른 예매를 했다. 그 차를 놓치면 다음엔 마지막인 11시 35분 차밖에 없었다.


 어떤 옷을 입을지 정하는 일도 꽤 어려웠다. 10월의 낮은 선선할 테지만 밤이 되어 야외에 장시간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을 것을 고려하면 반드시 두꺼운 외투가 필요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로 두꺼워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코트? 패딩? 팬 커뮤니티에서는 목도리에 담요, 핫팩까지 챙긴다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나는 지방에서 올라가야 하므로 짐이 너무 많아지면 몹시 불편할 터였다.


고민 끝에 가장 안에 평범한 긴팔 티셔츠를 입고, 쌀쌀해지면 기모 맨투맨을 덧입고, 그래도 추우면 겨울 코트를 입기로 했다. 목에는 작은 넥워머를 두르기로 했다(콘서트 이후로 이 넥워머가 보이지 않는 걸 보아 서울에서 둘렀다 뺐다 하다가 잃어버린 듯하다). 겨울만 되면 없으면 못 사는 나의 최애템 히트텍도 챙겨야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10월에 그것까진 오버일 듯하여 그만두었다. 이제까지 챙긴 옷들만으로도 백팩의 배가 터질 듯 빵빵했다. 나는 그것을 왕가방이라고 불렀다.


 때마침 공식 트위터에 멤버들이 직접 그린 시즈니의 콘서트 드레스 코드가 올라왔다.                                

 

엔시티(NCT)는 Neo Culture Technology의 약자이다. 팀명에 맞춰 노래도 컨셉도 네오하다는 소리를 듣는 그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뼛속까지 네오함에 길들여진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옷차림을 추천할 수 없지 않을까.


 옷 말고도 왕가방에 넣어야 할 중요한 물건은 더 있었다. 나는 열심히 쇼핑몰을 검색해 뮤지컬 관람용 소형 망원경 중 가장 리뷰가 많은 제품을 골랐다(원래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콘서트 가는 데 정말 품이 많이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배송된 상자를 열어보니, 아주 작고 귀여운 검은색 망원경이 들어 있었다. 과연 이걸로 2층에서 멤버들의 얼굴까지 볼 수 있을까? 잠실에 가보지 못한 나는 망원경이 주는 도움이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새로운 놀잇감인 줄 알고 툭하면 그것을 가지고 달아나는 딸아이를 쫓아다니느라 바빴다.


 준비물 목록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응원봉이었다. 엔시티의 공식 응원봉은 공식 색깔인 형광 그린에 머리(?) 부분이 완전한 사각형이어서 주로 ‘믐뭔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팬이 된 지 얼마 안 된 나는 당연히 믐뭔봄이 없었고, 공연을 즐기기 위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챙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오히려 남편이 옆에서 부추기는 것이었다. 관람석에서 다른 팬들은 신나게 봉을 흔드는데 혼자 손에 아무것도 없으면 뻘쭘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그것도 그랬다.


 그러나 믐뭔봄은 내가 사고 싶다고 바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 녀석은 생각보다 비싼 몸이어서, SM 공식 스토어에서도 품절 상태였고 당근마켓을 찾아봐도 판매한다는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나 같은 처지의 팬들이 많았는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믐뭔봄을 어디서 살 수 있냐는 질문이 잔뜩 올라왔다. 대부분의 답글은 콘서트 당일에 공연장 앞의 팝업스토어에서 살 수 있지만, 금방 품절되기 때문에 되도록 빨리 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걸 보고 나는 서울행 KTX 티켓을 더 이른 시간에 출발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역시 이왕 가는 거 제대로 재미있게 즐겨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머지 자잘한 것들은 출발 직전에 챙기면 되고, 이제 굵직한 것들의 준비는 끝났다. 나는 남은 몇 주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엔시티127의 새로 나온 4집 앨범을 열심히 들음으로써 나름의 준비를 했다. 디데이를 기다리기 힘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맞벌이와 육아의 일상은 그조차 잊어버리게 할 만큼 바쁘고 고되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어느새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그날이 왔다.          


- 8화 <나를 당황시킨 집배원 아저씨의 말>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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