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이 리뷰 시리즈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번이 아홉 번째니 단 한 개의 글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리고 이제, ZARD의 마지막 순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2006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중, ZARD는 자궁암 확진 판정을 받았다. 긴 시간에 걸쳐 적출 수술을 받은 그녀는 다행히 문제없이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완치에 다다랐나 싶었지만 2007년. 암이 폐에 전이되었다는 선고를 듣는다.
다시 병원에 입원해 계속 치료를 받던 ZARD는 2007년 5월 26일, 병원 비상계단에서 실족하여 머리를 크게 다쳤고,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
다음은 당시 우리나라 인터넷에 보도된 기사다.
(도쿄=연합뉴스) 이태문 통신원 = 일본의 인기 팝그룹 ZARD의 보컬 사카이 이즈미(본명 가마치 사치코)가 27일 4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카이 이즈미는 26일 오전 5시 40분경 도쿄 신주쿠의 게이오대학병원 비상계단(높이 3m)에서 떨어져 뇌진탕을 일으킨 뒤 다음날인 27일 오후 3시10분께 숨졌다.
소속사는 "최근 산보할 수 있을 만큼 몸이 많이 회복돼 이날도 산보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오는 도중, 전날 비로 젖은 계단에서 미끄러졌다"고 설명했다.
사카이 이즈미는 지난해 여름 몸이 좋지 않아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자궁암을 발견, 6월에 게이오대학병원에 긴급 입원해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경과가 좋아서 가을에 퇴원해 통원 치료를 받던 중 올 3월 검사에서 암세포가 폐로 전이된 것으로 드러나 4월 중순에 다시 입원했다.
병원 관계자는 "사카이 이즈미가 미끄러져 떨어졌다는 계단은 환자가 접근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라고 밝혔으며, 일본 경시청 요쓰야경찰서도 난간에 뛰어내린 자취가 있어 사고와 자살 두 가지 가능성을 놓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레이싱 모델 출신의 사카이 이즈미는 1991년 대형 음반기획사인 비잉(BEING) 레코드에서 기획하던 1인 프로젝트 밴드인 ZARD의 보컬로 발탁돼 '굿바이 마이 론리니스(Good-bye My Loneliness)'로 데뷔했다. 1993년 발표한 싱글 '마케나이데'가 이듬해 선발고교야구대회 입장곡으로 선택되면서 일약 유명세를 탔다.
이후 각종 인기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불렀으며, 1997년 발표한 '자드 블렌드(ZARD BLEND)'는 무려 250만 장이나 팔려 명실상부한 일본의 국민가수로 자리를 굳혔다.
그밖에도 '마이 프렌드' '흔들리는 구상' '돈트 유 시' 등 수 많은 밀리언 셀러를 속속 내며 90년대를 대표하는 톱스타로서 명성을 올렸다.
지난해 선보인 15주년 베스트앨범 '골든 베스트-15주년 기념(Golden Best~15th Anniversary)'이 오리콘 1위에 올라 식지 않은 인기를 다시 한번 입증한 사카이 이즈미는 올 가을 새 앨범을 발표하면서 3년 만에 라이브 투어를 개최하는 등 다시 본격적인 연예활동을 벌일 계획이었다.
이미 재킷 사진 촬영도 끝난 상태이며, 팬클럽 최신호에서 "최근 몸 상태가 좋지 않지만 노력하겠다"며 근황을 보고하기도.
그 동안 발표한 싱글앨범 43장으로 1천751만1천 장의 판매고를 올려 7위, 정규앨범 17장으로 1천870만6천 장을 팔아치워 8위, DVD까지 합치면 총 3천641만8천 장으로 일본 아티스트 가운데 역대 8위(여성 가수로는 4위)를 자랑하고 있다.
싱글 '마케나이데'는 164만5천 장, 앨범 '자드 베스트 싱글 컬렉션-궤적(ZARD BEST The Single Collection-軌跡)'은 300만8천 장이 팔려나갔다.
지난 2003년 발매된 가수 이수영의 베스트 앨범 타이틀곡 '굿바이(Good-bye)'와 '2005 스페셜' 앨범 중 '포에버 유'도 자드의 노래가 원곡. 그는 일찌감치 J-POP의 선두 주자로 한국에서도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기사에서 볼 수 있듯 처음에는 자살설도 꽤 유력했다. ZARD가 실족하여 추락한 난간에 손자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상 계단의 높이가 자살할 만한 장소로는 말도 안 될 정도로 낮은 데다가 공개된 편지나 대화의 내용을 통해 본인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했던 것이 밝혀져, 사고사로 마무리되었다.
사망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때 공개 추도식이 열렸고 몇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가수를 추모했다. 그 뒤 다섯 번에 걸쳐 추모 콘서트가 열렸는데, ZARD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라이브 투어의 이름 <What A Beautiful Moment>에서 착안한 <What A Beautiful Memory>라는 제목이었다.
이 추모 공연은 밴드 라이브가 ZARD의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보컬은 음원의 목소리로 대체하고, 그녀가 노래 부르는 영상을 틀어두는 필름 라이브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유튜브에도 꽤 많은 녹화 영상이 올라와 있어, 생생한 밴드 라이브로 ZARD의 명곡들을 들을 수 있다.
#뭉클함
ZARD의 사후, 그동안 녹음해두었던 미발표 싱글이 하나둘씩 공개되었다. 그중 오늘 소개할 노래는 <날개를 펼쳐서翼を広げて>로, 유명 애니메이션 명탐정코난의 OST로 쓰인 곡이다.
사후 발매되었기 때문인지, 이 곡을 들으면 하늘의 별이 된 ZARD 본인이 떠오른다. 더 이상 살아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그녀의 숨결이 느껴진다.
입원 생활 내내 틈틈이 가사를 쓰고 어서 완치되어 녹음하기만을 기다렸다던 변치 않는 음악을 향한 애정도 전해지는 듯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맑고 선명한 목소리는 그렇게 아팠던 사람의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청아하기만 해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날개를 펼쳐 여행을 떠나는 그대에게
살며시 응원을 보내자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오직 그대를 위해
사랑했어
이 노래만 들으면 왜 이렇게 마음이 벅찬지 모르겠다. 잔잔한 도입부, 근사한 기타 리프와 드럼의 반주, 후렴의 빼어난 선율미까지, 노래의 모든 것이 나에겐 뭉클함이다.
꽤 오래전, 유난히 힘들었던 때 이 노래를 들으며 잔잔한 위로를 받았다. 노래의 어떤 것이 나를 그렇게 감싸 안아주고 토닥여준 걸까. ZARD의 가장 큰 히트곡인 <지지 마> 같이 대놓고 응원하는 노래도 아닌데, 좋은 음악이 가진 치유의 힘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음악이 특별해지는 게 아닐까. 오직 나와 그 음악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고리가 있기에, 많은 사람이 아는 노래일지라도 나에게는 각별한 어떤 것이 된다.
Friday night 그대의 방을 향해 서둘러
언제나의 나는 이제 없어
허둥대는 그림자 갑갑한 길
거리는 블루스야
락 발라드의 향기가 진하게 풍기는 위의 구절을 특히 좋아한다. Friday night, 할 때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두둥, 하며 등장하는 웅장한 비트가 마음을 울린다.
ZARD가 만약 살아있었다면 분명 우리나라에서도 콘서트를 열었을 것이다. 한국에도 팬이 많다는 걸 본인도, 소속사도 알고 있었으니까. 위 기사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수영이 ZARD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도 꽤 잘 알려진 사실이고, 배우 박신양 역시 그녀와의 듀엣이 예정되어 있었다. 영화 <약속>의 일본 개봉을 앞두고 박신양 측에서 요청했다고 한다. 또 드라마 <겨울연가>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고도 했다. 살아있었다면 우리나라와의 인연도 더 깊어졌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흘 전이 5월 27일, ZARD의 기일이었다. 날개를 활짝 펼친 그녀가 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지도 벌써 16년이 되었다. 뒤에 남은 팬들은 여전히 가수를 그리워하고 그리며 아직도 그녀의 음악을 듣는다. 인터넷에 ZARD를 검색하면 최근까지도 관련 게시물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비록 그녀의 콘서트를 보러 가는 꿈은 이루지 못하게 되었지만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언제나 편안하고 위로가 되는 음악을 남기고 간 ZARD. 저 먼 곳에서 영원히 행복하기를 바란다.
*친애하는 작가님이신 배대웅님께서 ZARD를 알게 된 곡이라며 댓글을 남겨주셨어요. <Forever You> 라는 노래입니다. 이 제목에서 착안한 ‘Forever Zard’라는 팬클럽 이름도 있지요.
영원히 그녀를 기억한다는 뜻에서, 이번 글의 마지막을 이 곡으로 장식하고자 합니다. 앞서 언급한 추모 라이브 버전입니다. 호불호 없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아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발라드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