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곡은 이제까지 소개한 ZARD의 모든 노래 중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한 곡일 것이다. 오리콘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유명 애니메이션(드래곤 볼)의 OST로 쓰였고,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노래다.
제목은 <Don’t You See>.
내게 이 노래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Don’t you see>에 대해 쓰고 싶어서 이 리뷰 시리즈를 시작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ZARD의 히트곡 중 가장 먼저 알게 되었고 그래서 가장 오래 들어왔지만, 결코 질리지 않는다.
#아련함
<Don’t you see>를 처음 들었을 때는 우리 나이로 열세 살,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무렵이었다. 그 시기의 나는 지금과 달리 감성이 풍부하다 못해 넘쳐흐르는 아이였다.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는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반대로 꽃잎 한 장이 떨어지는 광경에도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만화 드래곤 볼의 팬이었던 나는 애니메이션 엔딩곡으로 노래를 처음 접했다. 이 노래는 겉으로는 활기차지만 묘하게도 그 안에 잔잔한 슬픔이 숨겨져 있는데, 그런 면이 애니메이션과 잘 어울렸다. 나는 이내 만화의 스토리와 엔딩곡의 서사를 쉽게 연결시킬 수 있었고, 두 작품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감동을 느꼈다.
ZARD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말로 번역된 가사를 읽을 때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지곤 했다.
친구에게 편지를 쓸 때처럼
술술 말이 나온다면 좋겠어
조금 더 서로를 알기에는 시간이 필요해
배신하지 않는 게 가족뿐이라니
너무 외로워, love is asking to be loved
믿는 걸 그만둬버리면 편해진다는 걸 알지만
don’t you see!
원하고 빌어도 기적, 추억, 조금은 신경 쓰여서
don’t you see!
잠깐 깨어난 척하는 버릇은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서야
택시 승강장에서 기다릴 때의 침묵은
고작 5분이어도 매우 길게 느껴져
무리하다 지쳐 창백해진 사랑은
예기치 못한 사건
작은 다툼에도 지기 싫어하는 둘이기에 뜨거웠어
여러 사람을 보기보다
줄곧 한결같은 너를 보고 싶어
Don`t you see! I`ll never worry, tonight
I`ll lay me down, tonight
You know, I do it for you
Don`t you see!
새로 난 길의 내음
저물녘 가로수길을 둘이 걸으면
Don`t you see!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아무리 서두른다 해도
나를 붙잡고 있어줘
20년 전 옛집의 아담한 내 방에서 해질녘 책상 앞에 앉아 노래를 듣고 있으면, 창문 너머로 아스라이 번지는 주홍색 노을이 보였다. 두 손을 턱에 괴고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가슴속에 여러 가지 심상이 피어났고 머릿속엔 무수한 공상이 떠올랐다.
그때는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미래는 희망으로 가득 찬 세계였고 난 언제나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향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작은 마음에 마치 하나의 씨앗처럼 심어진 소망과 순수함과 부서질 듯 예민한 감수성은, 무럭무럭 성장해 언젠가 열매를 맺길 기다렸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아련한 추억에 잠긴다. 사랑이란 단 5분을 기다려도 몹시 길게 느껴지는 것, 다양한 사람보다 단 한 사람만을 보고 싶어하는 것, 세상 모두가 서두른다 해도 서로를 붙잡아 주는 것, 그런 것일까 궁금해했었지.
언젠가 찾아올 사랑을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소녀 시절의 내가 그리워진다. 기억 속의 어린 나를 안아주고 싶다.
음질이 깨끗하고 가창도 더 뛰어난 음원을 두고 굳이 라이브 영상을 링크한 이유는, ZARD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영상이기 때문이다.
점잖기로 소문난 일본의 관중이 하나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높이 올려 아주 크게 박수를 치고 있다. 비록 거대한 함성이나 흥분에 휩싸인 비명 소리는 없지만 가수에게 온 마음을 다해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노래를 부르는 ZARD의 모습이 유독 행복해 보인다. 저 때 그녀는 이미 자신의 병세를 알고 있었을까? 목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탁해진 것을 보면 이미 병마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던 걸까.
앞에서 언급했듯 노래에서 은은한 슬픔이 느껴지는 건 얼마지 않아 그녀에게 마지막 순간이 도래했음을 내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