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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엄마HD아들 Aug 18. 2023

왼쪽 얼굴이 마비된 소녀의 기도

웃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로 돌아간다.


한창 외모에 신경 쓸 나이 열여섯.

그때를 떠올리며 한 번 씨익 웃어본다.


힘겹게 올라가는 왼쪽 입꼬리는 ‘이제 한계야. 이 정도면 됐잖아. 그만 만족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뇌는 씁쓸하게 ‘그래, 이게 어디야’라고 대답한다.


나는 코도 찡긋해보고, 입도 오므려보고 요리조리 얼굴 근육을 움직여 본다.


이마를 들어 올려 주름을 만들면 오른쪽 이마가 이야기한다.

‘왼쪽 이마 너는 좋겠다. 아무리 힘줘도 주름이 안 생겨서’ 그러면 왼쪽 이마는 ‘이마를 움직이면 다른 근육도 함께 당겨져서 불편하거든,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반격을 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에게 ‘이제 적당히 하고 좀 물러가 이제 가을이야’라고 말하던 9월의 어느 날, 열여섯의 소녀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어, 왜 밥맛이 이상하지?

‘어, 왜 웃는데 얼굴이 뻣뻣하지?’


친구들과 점심을 먹다 생전 처음 느껴지는 감각이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친구들과 하는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본 소녀는 덜컥 겁이 났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일시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왼쪽 얼굴의 무뎌진 감각은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소녀는 급히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왼쪽 얼굴이 이상해, 눈도 잘 안 감기고, 웃을 때 입꼬리가 안 올라가, 밥 먹는데 맛도 이상해"


소녀는 무서웠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맞벌이를 하느라 늦게 들어오시는 부모님을 기다릴 뿐. 집에 돌아온 소녀의 엄마는 걱정되는 마음을 애써 누르 늦었으니 내일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소녀와 엄마는 날이 밝자마자 신경과에 찾아갔다.


"안면신경마비입니다. 면역이 떨어져 바이러스가 들어온 것 같은데, 치료 방법은 딱히 없고 항생제 먹으면서 자연적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의사의 말에 소녀는 절망했다. 평생 한쪽 얼굴이 마비된 채로 살아야 할까 봐.


그러나 소녀의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한의원.


희망을 가지고 갔지만,


 ‘왜 이제 오셨어요, 그날 바로 왔으면 후유증이 안 남을 수도 있는데’라는 한의사의 말에 소녀의 마음은 또 내려앉았다. 후유증이라니.


열심히 치료해 보겠다는 말도 들었지만 안심이 되지 않았다. 두려웠다. 못난 얼굴을 계속 친구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니.


소녀는 울 수 도 없었다.


엄마가 속상해하실까 봐 울지 못했다.


울고 싶어도 마음 편히 얼굴을 찡그리며 울 수도 없었다. 정확히 반이 나뉘어 움직이지 않는 얼굴 근육 때문에 우는 것마저 불편했다.


양치질을 할 때 턱밑으로 물이 흘렀다. 우글우글하며 입을 헹굴 수 없었다. 잠을 잘 때는 안대를 썼다. 감기지 않는 왼쪽 눈은 너무 시리고 아팠다. 


다 잘 될 거라고 일기를 써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소녀는 옥상에 올라가 별을 보며 기도했다. 다시 웃게 해 달라고, 다시 웃을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열심히 잘 살겠다고.


한쪽만 올라가는 입꼬리가, 한쪽만 휘어지는 눈꼬리가 너무 이상해서 마음 놓고 웃지도 못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마음껏 웃어보는게 소원이라고.





소녀는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피해 다녔다. 교실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았으며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점점 줄었고, 자연스레 입을 가렸다.


한약을 처방받았기에 먹으면 안 되는 것들이 많아 교실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었다. 선생님은 혼자 교실에서 밥을 먹는 소녀를 안쓰러워했지만, 소녀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잘 벌어지지 않는 입으로 불편하게 밥을 먹는 것을 친구들에게 보이는 것이 싫었기에, 물을 마실 때 입이 오므려지지 않아 턱밑으로 줄줄 흘리는 것이 너무나 창피했기에.


혼자가 편했다.





소녀는 외로워도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묵묵히 치료를 받고, 묵묵히 공부를 했다.


매일 얼굴에 수많은 침을 맞아야 했지, 참을 수 있었다. 다시 웃고 싶었기에. 안대를 하지 않고, 편하게 두 눈을 감고 자고 싶었기에.


1년.


길고 긴 치료 끝에 소녀는 미소를 되찾았다. 살리지 못한 신경들이 있어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다시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남들이 내 미소를 보고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자신의 기도를 들어준 별들에게, 잘 버텨준 자신에게.






그 소녀는 이제 엄마가 되었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밝게 웃어주는 엄마. 아이들이 오늘도 엄마의 미소를 보며 사랑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길 바라며 매일 거울을 보고 연습해 본다.


함박웃음



웃을 수 없었기에 웃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것을 안다.

할머니가 되어도 이 웃음을 지킬 수 있길 바라며 오늘도 마음껏 웃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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