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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 후의 서재 Nov 23. 2023

또 한 권의 올해 베스트, 하지만 함정엔 주의할 것

'지리의 힘' - 팀 마샬

* 이 서평은 <지리의 힘 1>을 토대로 작성되었으며, 2의 내용은 반영되지 않았다.      


 <총, 균, 쇠>는 인간 문명의 발달과 확산이 그 지역의 환경에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 책이다. 우리는 국경과 바다를 뛰어넘는 항공기와 그곳에 가지 않더라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 덕에 지리적 한계를 극복한 세계에 살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최근 벌어졌던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사례에서 보듯, 21세기에도 우리는 여전히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있고,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리의 힘>이라고 지은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팀 마샬이라는 기자 출신의 저자는 전 세계를 지정학적 구도에서 설명하려 한다. 각 지역은 어떤 환경 속에서 영향을 받고 있고, 그로 인해 어떤 입장을 갖게 되었는가? ‘Prisoners of Geography’라는 원제에서 보듯 이 책은 인간이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지리의 힘' 책 표지

 책은 크게 10개의 파트로 나뉘어있다. 1장에 흥미롭게도 중국이 등장한다. 2장 미국, 3장 서유럽, 4장 러시아로 예상 가능한 목록이나, 5장에서 한국과 일본이 등장하는 것은 의외였다. (정확히는 중국을 제외한 동아시아라고 해야겠다.) 6장은 라틴 아메리카, 7장은 아프리카, 8장은 중동, 9장은 인도와 파키스탄이고, 마지막 10장은 놀랍게도 북극이다.      


 1장의 중국 파트를 살펴보면, 언론에 자주 언급되고 있는 티베트 문제를 인권의 시각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거대 국가의 안보라는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중국이 왜 이 지역을 포기할 수 없는지 저자가 그려낸 큰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이해가 된다. 흔히 중동의 문제를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안 된다고 하는 것처럼, 티베트 문제 또한 인권이 아닌 안보와 국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새로운 시각이 트인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이 신장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그리고 현재 중국이 서쪽 지역에서 겪고 있는 일들을 참 쉽게 풀이해 냈다. 또 다른 화약고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남중국해에 대해서도 중국이 물러설 수 없는 이유를 지리를 통해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제1열도선’이니, ‘9 단선’이니 하는 용어들도 접할 수 있고, 현재 한국도 얽혀있는 ‘7광구’에 대한 언급도 들을 수 있다. 단순히 한 국가를 국경선을 따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접국과 바다까지 포괄하여 그 생태계로 인해 취하게 된 정치적 판단들을 해설해 주는 것이 흥미롭다. 단순히 강대국, 깡패국가처럼 인식하던 중국의 처지를 알고 보면, 왜 그런 행보를 보이는지도 이해가 된다.      


 4장에서는 러시아의 숙원인 부동항(얼지 않는 바다)을 언급하며 왜 러시아가 동서로 분쟁을 일으키면서까지 확장을 시도하는지를 설명한다. 책이 출간된 때는 2016년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이 엿보이던 시절이다. 친서방 정부가 들어선 우크라이나에 대해 저자는 나토 가입을 무리해서 시도한다면 러시아로서는 가만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는 사실 새로운 내용이라고 할 수 없다. 전문가들도 이미 숱하게 지적했던 내용이다. 하지만 그것을 무시한 우크라이나의 행보가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2023년에 목격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곱씹어볼 만한 문장이 많다.      


 그 외에도 저자는 서유럽으로 통칭한 유럽 강대국들의 사정과 미국이 축복받은 땅인 이유, 그리고 그에 비해 라틴 아메리카 대륙이 겪고 있는 문제들, 서구 강대국들이 저지른 만행으로 아프리카와 중동이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를 쉽게 풀어낸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북극 파트였다. 우리가 흔하게 펼쳐보는 세계지도로는 북극이 외면받기 쉽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에 새로운 항로가 개척되었고, 그로 인해 드러난 자원과 새로운 가능성이 세계 각국을 경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북유럽과 러시아, 미국, 캐나다 등이 참여한 이 각축전은 최근에 더 심해지는 모양새인데, 저자는 이미 그 점을 내다보고 책에서 언급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일타강사처럼 짚어주는 내용들을 따라가다 보면 외교 파트에 오래도록 근무했던 기자답게 풍성한 국제 정세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된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단편적으로 접하던 국제 뉴스들의 의미를 조금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정세, 국제 뉴스에 대한 이해를 키우고 싶다면 <지리의 힘> 한 권으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커다란 함정도 존재한다. 그것은 저자가 어디까지나 서구권 시각을 가진 영국 출신 기자라는 사실이다. 그 치명적인 약점은 5장인 한국 파트에서 정확히 드러난다. 저자는 한반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으로 소개한다. 이는 미국을 위시한 영미 세력이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그들은 일본을 앞세워 중국을 견제하고 싶어 한다. 그게 효율적이고 싸게 먹힌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일본에게 유리한 시각을 오랫동안 학습했다. 독도가 영토 분쟁 지역으로 소개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책에서 ‘동해’라고 번역되었지만, 원문에는 다르게 표기되진 않았을지 의심스럽다.) 한반도를 설명한 저자의 시각을 보면 그가 보여주는 세상이 편향되거나 왜곡되어 있을 위험성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미국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한국 언론이 미국 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차용하는 과정에서 생긴 나쁜 습관이다. 이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은 피해자고 하마스는 민간 테러를 일으키는 악덕한 단체라는 시각은 일방의 주장만 담아낸 편향된 정보다. 국제사회에서 정의로운 것은 없고,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이익에 유리한 주장만을 한다. 이는 책이 주야장천 이야기하고 있는 바이기도 한데, 그 편향된 입장을 비판 없이 따라가다 보면 국제사회에서 피를 보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해 봤다. 그 교훈을 되살려 이 책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는 사실은 인지하자. 하지만 <지리의 힘>이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니 책을 통해 밑그림을 그린 뒤 세부 내용을 수정해 가는 식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 한반도 파트를 읽는 동안에 분통이 터지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 책을 접하고 나면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던 국제 뉴스가 색다르게 와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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