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마담

by 김인

오래 전 새벽이다. 정마담과 나는 을씨년스러운 밤바람을 피해 포장마차 안쪽에 앉아 있었다. 그녀와 그날이 초면이었다. 상무는 회식 마지막 자리에 좋은 데 데려간다더니 그녀가 업주로 있는 가게에 갔었다. 자리가 파하고 나는 그녀에게 술을 청했다. 하얀 김이 담배 연기처럼 올라오는 오뎅꼬치를 앞으로 밀어주었더니, 정마담은 이를 다 보여주며 웃는다. 내 쪽을 향해 기울어지는 어깨도 목소리도 예뻤다.


“언니는 어떻게 살아?”

“돈 벌어서요.”

“결혼했지?”
“애 하나 있어요.”

“남편은?”

“갔어요 먼저.”

“사고? 아파서?”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정마담을 따라 ‘언니’를 불렀다.

“언니는 있어요?”

“있다가 없다가. 나랑 술은 왜?”

“저도 혼자 있고 싶지 않고 언니도 그럴 것 같아서요. 왜 그런 날 있잖아요.”

“…….”

“여자면 이해할 수 있잖아요.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누가 어깨에 손만 얹어줘도 눈물이 확 날 것 같은.”


“왜 저런 사람이랑 일해?”

박상무는 욕을 하고 정마담 뺨을 때렸다. 나는 경찰에 신고했고-그래야 주정을 멈출 것 같아서- 그는 내 뺨도 때렸다. 회식은 바로 끝났다. 사람들이 흩어지고 나는 정마담을 찾았다.

“거의 저래요. 내일 출근하면 모른 척 하겠죠. 직원들이 나한테 신고는 과했다고 그러려나요.”

“말들 참.”

“그러니까요.”

포장마차 사장님이 검은 정장에 검은 스타킹을 입은 나와 빨간 레이스 원피스를 입은 그녀 앞으로 닭꼬치 두어개를 놓아주신다. 별 말 없어도 세 여자 사이에 호의가 흐른다. 어느새 빨간 난로가 우리 쪽으로 가까이 와 있다. 입구에 서서 그릇을 헹구는 사장 아주머니도 치마 밑으로 사정없이 들이치던 바람을 막아주고 있었구나.

“애는 아들?”

“네.”

“나도 아들.”

“네.”

“남편이 돈 좀 남겨줬어?”

“왜요.”

“언니 착해보여서.”

“안 착해요.”

“그래?”

“여자 때리는 남자들하고 낮에 일해야 하는데요.”

“그래…….”

“아까 고생이 많으셨죠.”

“웃기는 게 진상들은 꼭 자기 나쁘게 보지 말라고 그런다? 아까 그렇게 안 끝났으면, 그 인간은 나중에 와서 좀 비싼 술 팔아주면서 맘에 두지 말라고 느물댔을 거야. 생색냈겠지. 결국 바라는 게 무슨 지랄을 해도 받아달라, 들어달라…….”

“왜 그러나 모르겠어요. 임원들은 특히 내 사람, 자기 사람 그런 소리 하죠. 자기 좋아하라는 거죠. 저같은 여직원한테는 엄마, 아내, 딸 취급 어딘가를 오가다가 결국 여자는 불편하다는 식으로 끝나요.”

“하여간 웃겨. 많이 본다니까. 술집에선 자기 애인처럼 대해달라고 하고 애인한텐 술집에서처럼 해달라고……. 맘대로 해도 되는 속풀이 노예가 필요한 건지.”

정마담이 반대쪽으로 다리를 꼬았다. 아까 넘어질 때 그랬는 지 망사 스타킹에 달걀만한 구멍이 보인다.

“언니 옷 예뻐요. 레이스, 벨벳이죠?”

“난 자기 옷이 이쁜데. 검은 색인데 이쁘다."

“박상무 같은 남자들은 이런 옷도 좋아해요. 야근할 때 별 상상을 다한다니까. 일찍들 퇴근했으면 좋겠어요. 바쁘지 않을 때도 회사에 눌러붙어서 생활에서 기대할 걸 회사에서 기대해요. 저녁은 식구들하고 먹는 게 좋을텐데.”

“회사가 편하겠지. 우리 다 아는데, 남자들 표정 보면. 무슨 생각하는지.”

“알죠. 뭘로 대하는 지.”

“아들 잘 기르자, 응?”

“네.”


주황색 포장마차 비닐 사이로 희뿌윰한 새벽이 보였다. 저 멀리 보라색 어스름 위로 분홍색 달이 보였다. 코끝이 매캐하고 눈이 피로로 감길 즈음 우리는 헤어졌다. 우리는 서로 미안하다거나 고맙다거나 말을 바를 필요를 못 느꼈다. 술값을 그녀가 냈다. 자긴 돈 주는 남자가 있다면서 자잘한 흉터가 보이는 가는 손목을 올려 손사래를 쳤다. 연보라색 하늘을 배경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안개처럼 그러나 선명한 습기를 달고 깔렸다.


“이런 데 아예 안 오는 남자가 좋아. 점잖은 척 말리면서 구경하는 남자들이 제일 싫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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