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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호러와 존재론적 불안

Local58과 나폴리탄 괴담

by 새솔 Mar 03. 2025

최근 유튜브와 인터넷을 중심으로 아날로그 호러 장르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크리스 스트라우브(Kris Straub)가 제작한 Local58 시리즈를 들 수 있다. 이 시리즈는 VHS 테이프나 공영TV 방송과 같은 1990년대식 매체를 활용하여, 겉보기에는 일상적인 영상이 점차 섬뜩한 분위기로 변질되는 연출을 선보인다. 예를 들어, 늦은 밤의 편성표나 어린이 만화처럼 친숙한 콘텐츠로 시작되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화면이 점차 ‘어딘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며, 궁극적으로 불길한 메시지와 교란 요소를 포함하게 된다. 이러한 기법을 통해 Local58을 비롯한 아날로그 호러 작품들은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옛 영상미와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점진적으로 괴이한 대체 현실로 빠져들게 함으로써 현실과 악몽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한편, 나폴리탄 괴담은 2000년대 초반 인터넷 게시판을 중심으로 유행한 괴담 형식으로, 일본의 2ch 게시판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큰 화제를 모았다. 이 괴담은 짧은 이야기 속에 숨겨진 단서를 독자가 알아차렸을 때 비로소 공포를 체감하게 되는 일종의 ‘이해하면 무서운 이야기’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한 괴담에서는 한 숲속 식당에서 인기 메뉴인 ‘나폴리탄’을 주문하여 식사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겉보기에는 평범한 식사 경험을 묘사하는 듯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독자는 이야기의 결말에 이르러서야 ‘나폴리탄’이 단순한 스파게티 요리가 아니라 ‘나폴리 사람(인육)’을 의미하는 언어유희였음을 깨닫게 되고, 주인공이 인육을 섭취했다는 끔찍한 진실을 인식하게 된다.


이와 같이, 나폴리탄 괴담은 명확한 설명 없이 기이한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직접 의미를 유추하도록 유도하며, 해석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불안감을 조성한다. 이는 마치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에 의존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심리적 경험과 유사하다. 결국, 아날로그 호러 영상과 나폴리탄 괴담은 공포를 직접적으로 연출하지 않더라도, 미지의 단서와 분위기만으로 공포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인터넷상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새로운 공포 콘텐츠의 한 유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현대인이 공포에 끌리는 이유: 죽음이 아닌 ‘미지의 불안’


이러한 공포물에 현대인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한 잔혹함이나 갑작스러운 놀람 효과를 넘어, 보다 근원적인 불안을 자극하는 매력에 기인한다. 철학자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이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불안(Angst)은 일반적인 두려움과 구별된다. 두려움(Furcht)이 특정한 대상이나 구체적인 위험에 대한 공포라면, 불안은 “세계 내의 어떠한 대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전체가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독특한 공포 상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불안이란 뚜렷한 원인 없이도 엄습하는 긴장과 두려움을 지칭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대상 앞에서 느끼는 공포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불안을 존재론적 불안으로 정의하며, 이를 통해 인간 존재 주변에 자리한 ‘무(無)’의 존재가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즉, 불안이란 단순한 위험 회피 본능에서 비롯된 감정이 아니라, 미지의 존재와 맞닥뜨렸을 때 느껴지는 섬뜩한 낯설음(Unheimlichkeit)이며, 이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소한 두려움과는 결이 다른 근원적인 공포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은 과거와 달리 생명의 위협이나 육체적 위험보다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나 정체불명의 위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이는 하이데거가 언급한 존재론적 불안, 즉 “미지의 존재 앞에서 느끼는 근원적인 불안”과 연결된다. 인간은 이러한 근본적인 불안을 일상 속에서는 억누르거나 외면하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공포 콘텐츠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날로그 호러나 나폴리탄 괴담과 같은 장르는 뚜렷한 괴물이나 유령을 등장시키기보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분위기와 암시를 통해 상상력을 자극하고, 바로 그 모호함이 더욱 강렬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이는 단순히 신체적 위협에서 비롯된 두려움이 아니라, 형언하기 어려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에서 기인하는 불안이기에, 현대인의 심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당긴다. 결국, 현대인이 이러한 호러 콘텐츠에 매료되는 이유는 그 속에서 자신도 인식하지 못했던 막연한 불안을 발견하고, 이에 공감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 호러의 심리적・문화적 효과


아날로그 호러가 유발하는 공포는 주로 심리적 메커니즘을 통해 발현된다. 이는 시각적으로 명확한 괴물이나 잔혹한 장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위협이 주는 긴장감을 핵심적인 요소로 삼는다. 특히, 다음과 같은 연출 기법이 관객의 공포심을 효과적으로 자극하는 데 기여한다.


낯익음 속의 낯설음


아날로그 호러 영상은 어린이 프로그램, 1990년대 TV 광고, 공공 서비스 방송 등 대중에게 익숙한 매체의 형식을 차용하여 시작되지만, 점차 어딘가 어긋나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삽입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미묘한 이상 현상은 관객에게 일종의 데자뷔(déjà-vu)적 불안감을 유발하며, 익숙한 것이 낯설게 보이는 순간을 연출한다. 이는 프로이트가 언급한 ‘언캐니(uncanny)’, 즉 기묘한 낯설음을 불러일으켜 심리적 불안정성을 초래한다.

   

정보의 결핍과 암시


아날로그 호러는 모든 정보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으며, 서사를 완전하게 설명하는 대신 단편적인 단서와 암시적인 표현을 남긴다. 영상은 종종 중간에 끊기거나 화면이 일그러지는 방식으로 핵심적인 장면을 감추며, 특정 메시지만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긴급 경고 방송이 해킹당하여 의미심장한 문구만 남겨지거나, 등장인물이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표출하는 장면을 보여주되 정작 그 존재 자체는 드러나지 않는 방식이 이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연출 기법은 여백의 공포를 유도하여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명확하게 공포 요소를 제시하는 경우보다 오히려 더욱 강렬한 심리적 불안을 조성한다.


아날로그 특유의 분위기


VHS 테이프의 거친 화질, 화면의 노이즈와 음향 잡음, 그리고 옛 TV의 색감 등 아날로그 매체의 기술적 결함 자체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선명하고 정제된 디지털 화면과 달리, 아날로그 영상은 흐릿하고 왜곡된 시각적 특성을 지니며, 이를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린다. 특히, 영상 속에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글리치(glitch)나 잡음은 그것이 단순한 기계적 오류인지, 혹은 이야기 속 초자연적 존재의 개입인지 불분명하게 만들어 공포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공유된 추억과 향수


아날로그 호러는 20~30대 관객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10대 관객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문화적 향수를 활용한다. 이러한 영상은 과거에 익숙하게 접했던 프로그램이나 공익 광고 등을 배경으로 설정하여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이를 통해 초반부에는 오히려 친숙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나 서사가 전개됨에 따라 점진적으로 그 익숙한 영상이 일그러질 때, 관객은 예상치 못한 충격을 경험하게 되며, 일상의 안정감이 무너지는 불안을 체감하게 된다. 이러한 공포는 단순한 잔혹한 장면에서 유발되는 혐오감과는 차별되며, 심리 깊숙이 파고드는 불안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신체적 위협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심박수가 증가하고 식은땀이 흐르는 본능적 공포 반응이 유발된다.


예를 들어, Local58 시리즈의 「Show for Children」 에피소드는 1920년대 만화풍의 흑백 애니메이션으로 시작되며, 초반부에는 해골 캐릭터가 등장하는 무해한 만화로 보인다. 그러나 이야기 전개가 이루어질수록 해골 캐릭터는 밤늦은 묘지 사이를 불안한 모습으로 헤매게 되고, 하늘의 달이 점차 기괴한 웃음을 띠며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후 무덤에서는 불길한 형상의 존재가 등장하고, 달의 표정은 점점 더 사나워지면서 애니메이션은 악몽과 같은 분위기로 급변한다. 관객은 처음에는 전형적인 만화를 감상하겠거니 하고 방심하지만, 예상치 못한 전개로 인해 불편한 긴장과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이렇듯 아날로그 호러는 과거의 익숙한 영상 언어를 활용하여 관객의 심리적 경계를 허물고, 그 친숙함이 한순간 뒤틀리는 순간 강렬한 공포를 유발한다. 이는 단순한 점프 스케어나 신체적 위협이 아닌, 본능적이고 심리적인 불안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현대 공포 콘텐츠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불안과 공포 콘텐츠의 역할


아날로그 호러와 인터넷 괴담의 유행은 현대 사회의 불안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늘날 우리는 뉴스 속보, 재난 경보, 각종 알림음을 통해 일상적으로 위협적인 정보를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의 경고음이나 TV의 “삐-” 소리와 함께 전달되는 재난문자는 순간적으로 강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Local58과 같은 공포 영상은 이러한 공식 방송의 형식을 차용함으로써 공포를 극대화한다. 실제로 Local58의 여러 에피소드에서는 한밤중 긴급 속보가 방송되며, “시청자 여러분, 지금 즉시 대피하십시오”와 같은 권위적인 안내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곧 알 수 없는 제3자의 개입으로 인해 방송 신호가 이상 징후를 보이기 시작하고, 시청자는 불길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음을 암시받지만, 그 정체를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이러한 연출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상황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 우리는 종종 정부나 기관으로부터 “안심하십시오”라는 메시지를 접하지만, 정작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모호한 경우가 많으며, 오히려 그러한 안내가 불안을 가중시키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아날로그 호러는 이처럼 현대인의 심리 속에 자리한 “항상 무언가 끔찍한 일이 막 일어날 것만 같은” 막연한 불안을 정조준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공포 연출을 넘어 오늘날 사회가 지닌 불확실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결국, 공포 영상 속 기괴한 방송은 현실 세계에서 경험하는 불확실한 위험과 공포를 상징하며, 관객은 이를 통해 자신이 실제로 느끼는 불안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공포 콘텐츠는 사회적 메시지를 내포하는 경우가 많다. 아날로그 호러에서 등장하는 기이한 현상들은 종종 현대 문명에 대한 은유로 해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Local58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달의 존재는 작품 내에서 불길한 음모와 우주적 공포의 근원으로 그려지며, 이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나 자연에 대한 공포를 상징한다. 한편, 나폴리탄 괴담에서 주인공이 아무런 의심 없이 끔찍한 행위를 저지르는 설정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도 실은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잠재해 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즉, 겉보기에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회가 사실은 비정상적인 것에 기반하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는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아날로그 호러와 괴담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외면했던 감각을 환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현대인은 바쁜 삶과 미디어의 끊임없는 정보 속에서 존재론적 불안감이나 섬뜩한 낯설음을 억누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공포 콘텐츠는 안전한 환경에서 그러한 감정을 일시적으로 해방시키는 역할을 한다. 미지의 공포를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현실에서 잊고 지냈던 감각—예를 들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경각심이나 삶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을 되찾게 된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불안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실존을 직시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현대의 공포 콘텐츠 역시 관객으로 하여금 익숙한 일상의 이면을 성찰하도록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결국, Local58과 나폴리탄 괴담이 유발하는 공포는 단순한 자극적인 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이 내면 깊숙이 묻어둔 존재론적 불안을 건드리며 이를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하는 데 의의가 있다. 즉, 현대 사회에서 개개인이 느끼는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은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으며,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호러 콘텐츠는 그 집단적 정서를 드러내고 공유하며 해소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공포를 통해 오히려 자기 자신과 사회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것, 이것이 아날로그 호러와 괴담이 전달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라 할 수 있다.


공포를 마주함으로써 얻는 통찰


Local58을 비롯한 아날로그 호러와 나폴리탄 괴담의 인기는 현대인이 단순한 죽음의 공포를 넘어, 보다 근원적인 불안에 공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화면 너머로 전달되는 기묘한 신호와 해독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불안을 자극하며, 우리가 잊고 지내던 ‘낯설게 보기’의 감각을 일깨운다. 이러한 요소들은 단순한 스릴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일상 속에 감춰진 불안의 구조를 드러내는 하나의 문화적 장치로 기능한다.


하이데거의 통찰에 따르면, 인간은 미지의 존재 앞에서 본질적인 불안을 느끼는 존재이다. 아날로그 호러는 그러한 불안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으며, 이를 통해 현대인은 자신의 불안과 다시 마주하고, 나아가 자기 존재와 사회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되는지도 모른다. 만일 공포를 체험하는 행위 자체가 우리가 외면해온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하나의 철학적 실천이라면, 아날로그 호러와 괴담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현대 사회의 불안을 드러내고 이를 성찰하게 만드는 예술적 매개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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