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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검은 연기, 무너진 질서

진짜 전쟁의 시작

by 무어

역 밖으로 나서자마자, 눈앞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도로는 뒤엉켜 있었고, 불에 탄 차량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어느 방향에서 날아온 것인지 알 수 없는 포탄이 맞았는지, 건물 한 채는 반쯤 무너져 있었고, 유리 파편과 철골 구조물이 길바닥을 뒤덮고 있었다.

공기에는 화약 냄새가 짙게 섞여 있었고, 흙먼지와 연기가 시야를 뿌옇게 가렸다.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렸고, 어디선가 “살려주세요!” 하는 절규도 희미하게 섞여 흘러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무표정했다. 아니, 감정이 멈춘 얼굴이었다. 공포조차 굳어버린.


“이게 진짜… 전쟁이야?”


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친구 유종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꾹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이 근처가 아닌데도… 이렇게 심한 거 보면, 중심지는 아예 박살 났을 수도 있겠어.”


멀리서 군용 헬기로 보이는 물체가 날고 있었다. 순간, 강한 굉음과 함께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났다. 바로 20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였다. 폭풍 같은 바람이 몰아치고, 날아온 파편 조각이 내 옷깃을 스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땅에 엎드렸고, 등 뒤로는 콘크리트 가루와 깨진 유리 조각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괜찮아?”


옆에서 유종이가 소리쳤다.

고개를 들자 그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야, 너 피…”

“긁힌 거 같아. 괜찮아. 빨리 움직이자. 이대로 있으면 진짜 죽어.”


우리 둘은 허리를 낮춘 채 달리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그곳은 집이 있는 쪽이었다.

딸과 집사람. 그들이 있는 아파트 단지로 향하는 도로는 거의 통제불능이었다. 차들은 뒤엉켜 있었고, 사람들이 도로 위를 뛰어다니며 울부짖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 쓰러진 노인을 부축하는 젊은이, 군복을 입은 채 총을 든 사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야, 저거 군인 맞아?”

“모르겠어… 예비군복 같지 않냐? 설마 북한군이 벌써 내려오진 않았겠지.”


예비군복을 입은 남자가 차를 훔치려는 듯 차 주위를 서성거렸다. 최대한 멀쩡해 보이는 차에 가서 운전석 문을 열고 여성 운전자를 끄집어냈다. 여자가 저항하자 주먹으로 두세 번 여자의 얼굴을 내리쳤다. 운전석에 올라탄 남자는 차를 운전해 막힌 도로를 범퍼카 운전하듯 부딪히며 앞으로 나갔다.

아무도 다가가지 못했다.

이제 확실해졌다.

이제부터는 공권력이 닿지 않는 아비규환이다. 이성보다 힘이 먼저이고 돈보다 실물이 필요한 때가 됐다.

군복 남자를 보면서 지금 이 순간 믿을 수 있는 친구와 있다는 게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유종아, 우리 빼고 다 적으로 봐야 하는 거 아니냐"

"그래도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그래도 정신 똑바로 차리자, 믿을 건 너랑 나 둘 뿐인 거 같다"


총성은 더 가까워졌고, 불길은 사방에서 피어올랐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붉게 물든 연기 사이로, 무인기 같은 것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날카로운 기계음이 내 귀를 때렸다.


‘전쟁이 시작됐다’는 말이, 이제는 실감이 났다.


우리는 이제, 전쟁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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