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내가 사용한, 지구의 자원과 식량은 얼마나 될까?’
‘그렇게 소모한 자원과 식량은 어떤 유의미한 결과물로 바뀌었을까…’
가을 개편이 얼마 남지 않았다.
쌈박하고 획기적이며 아방가르드하면서도 소구력 있는 새로운 방송 아이템을 생각하지 못하면
나는 또 한의원에 가야만 한다.
몇 년 전 부장의 압박을 견디다 못한 내 몸뚱이를 돌보기 위해 한의원에 간 적이 있었다.
머리 꼭대기, 정수리 부근에 손가락보다 긴 침을 맞은 적이 있는데, 한의사의 말이 지금까지 생생히 기억난다.
“화가 머리를 뚫고 나가지 못해 머리 꼭대기에서 머물러 있어서 머리가 뜨겁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지는 거예요. 요즘 스트레스받는 일 있으세요?”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났다‘ 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닌가 보다.
그때나 지금이나 성과에 눈이 먼 부장 때문에 매일 들들 볶였다.
아무튼 이번 개편에도 탈모의 쓴맛을 느끼지 않으려면 ’쌈박한‘ 아이템을 찾아야만 했다.
밥을 먹을 때도 지하철을 탈 때도 친구들을 만날 때도 여행을 갈 때도, 항상 무슨 아이템이 좋을까를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수십억 명 중의 하나로 태어난 내가 지금까지 한일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자연스럽게 개편 아이템으로 이어졌다.
지구의 개체로써 한 명의 인간이 갖는 의미를 방송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인간이라는 존재, 나라는 존재는 왜 태어났으며 살면서 어떤 에너지를 소모하고 발산하는 것일까…
원래 방송 아이템을 정리하거나 기획서를 쓸 때 내가 맨 처음 하는 일은 하나의 문장을 만드는 일이다.
그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며칠, 몇 주가 걸리기도 하는데 일단 한 문장을 완성하고 나면 나머지 일들은 술술 풀렸다.
이번 아이템의 한 문장은 ‘나’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지구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