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어 Oct 24. 2024

2. 어디 사세요? 지구요

’지구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장을 보여준 후 부장의 반응은 그야말로 똥 씹은 표정이었다.  

그가 한 첫 말은 ’그딴 걸 누가 보냐‘ 였다.  

  

“야! 니가 하고 싶은 걸 하지 말고 사람들이 보고 싶은걸 하라고!”  

얼굴은 앞을 향해 있고 눈만 치켜뜬 채로 짜증이 잔뜩 묻은 말로 대꾸를 하고는 기획안을 한 손으로 던졌다.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서 나 역시 능청스럽게 기획안을 받아서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저 정도 반응이면 반나절 후에 토씨하나 바꾸지 않은 기획안을 그대로 들고 가서 수정했다고 들이밀면 거의 통과됐다.  

  

“그래, 내가 말하던 게 바로 이런 거잖아. 왜 한 번에 이렇게 못해오냐. 잘 좀 하자”  

“네, 부장님이 지적하신 부분 보완했더니 훨씬 논리적으로 완성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도로 립서비스하면 부장도 자기 밥값 한 것 같아 기분 좋고 나도 한 번의 지랄로 통과됐으니 시간을 아낄 수 있어 윈윈이다.


하지만 진짜 일은 이때부터다. 자료조사부터 전문가 인터뷰를 위해 섭외도 해야 하고… 제작비도 뽑아봐야 한다.  

  

우선 노트북을 들고 회사 근처 카페에 갔다.  

“안녕하세요. 유자민트티 따듯한 거 톨사이즈요”  

  

평소에 장염도 자주 걸리고 소화력이 좋지 않았던 나는 1년쯤 전부터 커피를 완전히 끊었다. 한때는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집에서 프라이팬으로 로스팅을 해먹을 정도로 커피에 진심이었지만, 확실히 깨달은 건 커피는 건강에 좋지 않다. 적어도 내 건강에는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카페에서 주문하는 메뉴가 정해지기 시작했다. 스벅은 유자민트티, 투썸은 애플민트티…  

  

창가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펼쳤다.  

우선, 지구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었다.  

  

지구는 46억 년 전, 거대하고 지저분한 가스 구름 속 죽은 별의 잔해로부터 만들어졌다.  

처음 지구는 불덩어리였다. 운석이 쉴세 없이 떨어지고 큰 운석과 부딪혀 지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달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지구가 차가워지고 안쪽에 있던 물이 표면으로 나오고, 비가 되어 내렸다. 이렇게 물이 증발했다 비로 내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구름이 만들어지고 떨어지는 운석들을 통해 더 많은 물이 지구에 보충되었다.  

그래서 현재 지구의 표면은 71%가 물이고 21%가 땅으로 되어 있다. 전체 물의 97.5%는 소금물, 2.5%만이 민물이다. 이 민물은 또 69%는 얼음과 눈, 30%는 지하수로 되어 있다.  

  

그렇게 지구는 천천히 식었고, 표면은 얇은 지각으로 변했다.  

하지만 애초에 불덩어리였던 지구의 안쪽에는 뜨거운 바위가 계속 꿈틀거리면서 표면의 지각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 지각이 움직이다 충돌하면 높이 솟구치기도 하고 아래쪽으로 찌그러지기도 한다. 그래서 생긴 것이 산이나 산맥이다. 바닷속엔 해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서 있는 지각의 두께는 50km 정도라, 가장 높은 산이나 가장 깊은 해구도 지구 전체로 보면 피부의 여드름 정도에 지나지 않다.  

지각의 두께는 50km인데 반해 그 밑에 있는 맨틀은 2900km의 깊이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밑은 외핵과 내핵으로 되어 있는데, 외핵은 액체상태의 철과 니켈로 되어 있으며 두께는 2,266km에 온도는 4천 도에서 5천7백도 정도다.  

그리고 내핵은 대부분 고체상태의 철, 니켈 합금이며 지름이 약 1,200km로 달 크기의 70% 정도 되고 온도는 태양 표면 온도와 비슷하다.  

외핵과 내핵의 성분을 볼 때, 지구는 금속덩어리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지구 전체는 자기장을 띠고 있고 이 자기장에 의해 태양에서 오는 높은 에너지 입자들을 튕겨내 방사능에 의한 영향을 줄여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준다.  

지구는 대기에 둘러싸여 있는데 지표와 가까운 우리가 숨 쉬는 곳에는 공기가 있다.  

부피 기준으로 공기는 대부분이 질소, 그다음이 산소, 아르곤, 탄소, 그리고 수증기와 극히 적은 다른 기체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은 대기의 가장 아래층, 두께가 12km 정도에 기상현상이 나타나는 대류권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살아간다. 태양의 가장 공격적인 빛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오존층은 성층권 위에 있다. 그 위에는 지구에서 가장 추운 중간권이 있는데 평균기온은 대략 -85도 정도 된다.  

80km쯤 올라가면 열권으로, 우주와는 뚜렷한 경계 없이 완만하게 우주가 시작된다. 약 100km 정도 높이다.

서울에서 원주까지 가는 거리를 하늘로 향한다면 우주가 나오는 것이다.


이것저것 웹서핑을 통해 지구의 대략적인 정보를 확인했다.  

학창 시절 지구과학 시간에 다 배운 내용이었을 텐데, 그때는 왜 그렇게 지루하게 느꼈을까?  

이렇게 재밌는 내용을…   

회사를 때려치우고 공부를 다시 시작할까라는 아주 쓸데없는 생각을 1초간 하고 유자민트티를 한 모금 마셨다.


창밖을 봤다. 파란 하늘 사이사이 하얀 구름이 보이고 초록초록한 가로수들 사이로 사람들이 걷고 있다.   

대부분 아스팔트라 가로수 밑에만 흙을 볼 수 있었다.   

  

시간을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다. 서둘러 밥을 먹고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봐야 할 것 같다.   

프리랜서 작가들이야 PD가 정한 방향에 따라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진행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아이템을 이야기했을 때 표정을 보면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지 돈 때문에 마지못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번 아이템은 어떤 표정일까… 작가들의 표정이 궁금했다.   

빨리 만나봐야겠다.


이전 01화 1. 지구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