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파일럿 경고메시지 원리
나는 가끔 아이폰 설정에 들어가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메뉴를 확인한다.
그런 업데이트에 무관심한 사람도 있지만 난 새로움을 즐기고 좋아하는 편이다.
사실 아이폰의 업데이트라는 게 대부분 사소한 오류 수정에 관한 내용이지만 가끔 기능이 추가되거나 새로워진 UX/UI를 제공할 때도 있다.
그런데 테슬라를 산 후로 아이폰만큼이나 테슬라의 업데이트를 가끔 체크한다.
스마트폰에 테슬라 앱을 설치하면 원격으로 차에 관한 컨트롤을 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시기가 되면 차에서 설치파일을 자동으로 다운로드한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실행하면 설치된다.
테슬라를 처음 샀을 때 버전은 24.10이었다.
며칠 전 도착한 소프트웨어 버전은 38.7이다.
테슬라는 업데이트될 때마다 차가 조금씩 달라진다.
유튜브 뮤직 앱이 기본으로 설치되더니 이제는 무료 스포티파이 앱을 사용할 수 있게 업데이트되었다.
무엇보다 자율주행에 관한 내용들이 달라진다.
자율주행 관련 된 업데이트 내용은 뭐라고 딱 공지되진 않지만 주행을 해보면 체감할 수 있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능은 ‘오토파일럿‘이라고 부른다. 줄여서 오파라고 하는데 차를 사면 기본 오파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기본 오파는 앞 차와의 간격을 조절하고 차선을 유지하면서 달리는 기능을 한다.
여기에 452만 원 하는 향상된 오토파일럿을 구매하면 내비게이션에 입력한 목적지로 자동으로 이동하는 기능이 추가된다. 여기에 자동 차선변경, 자동주차, 스마트 차량 호출 기능이 포함된다. 스마트 차량 호출은 주차장에 세워진 차를 내가 있는 곳까지 운전자 없이 오게 하는 기능이다.
900만 원에 달하는 풀셀프 드라이빙 옵션을 구매할 수도 있다. 향상된 오토파일럿에 추가로 교통신호를 인지하고 복잡한 도시 안에서도 차선을 유지하는 기능이 추가된다. 풀셀프 드라이빙은 현재 미국에서만 기능이 구현되고 한국 도로에서는 구현되지 않기 때문에 굳이 구매를 할 이유가 없다.
향상된 오토파일럿의 기능들도 구매 후 한 두 번 사용하거나 남들에게 자랑하는 용도로 활용하는 것 외에는 사용할 일이 별로 없다.
즉, 현재 한국에서 테슬라는 기본 오파로도 충분하다는 뜻이다.
오파는 보통 고속도로나 한적한 국도에서 주로 활성화시킨다.
핸들 오른쪽 뒤에 있는 기어 레버를 아래로 딸깍딸깍 두 번 내리면 오파가 작동한다. 다른 버튼은 건드릴 필요가 없다. 현대 산타페의 반자율주행을 사용해 본 적이 있는데 뭔가 복잡했다. 핸들 왼쪽에 달린 4개의 버튼을 조작해야 했다. 앞차와의 거리, 속도, 차선 유지 유무 등을 따로 설정해 줘야 하는 게 복잡하고 귀찮았다. 하지만 테슬라는 레버만 두 번 내리면 된다. 그러면 모니터에 내가 주행하는 도로가 무지개 도로로 바뀐다. 오파가 적용됐다는 뜻이다. (기본은 파란색 도로, 메뉴-토이박스-레인보우로드에서 설정)
처음에는 무서웠다. 시속 100km로 달리던 중 앞차가 정차를 할 때 과연 잘 설지 의심이 갔다.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보다는 거의 다 와서 급하게 속도를 줄였다. 내가 운전하는 스타일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스타일이 다를 뿐 사람이 하는 것 같은 느낌은 있다. 현대나 다른 외제차의 자율주행차는 핸들이 정해진 각도에서 툭툭 돌아가는 느낌이라면 테슬라는 사람이 돌리는 것처럼 부드럽다. 정차를 하거나 정차 후 출발할 때도 조금 성격 급한 운전자가 운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속도로에서는 오파를 실행시켜 놓으면 운전자는 할 게 없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운전자는 다른 짓을 해도 된다. 음식물을 먹거나 책을 보거나 잠을 자거나 뭘 해도 운전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차선의 가운데를 정속 주행하고 끼어드는 차에게 양보를 해서 사람이 할 때보다 매너 좋은 안전운전을 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운전자와 괜한 감정싸움으로 보복운전을 하거나 당하는 일이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핸들을 잡지 않고 있으면 거의 10초에 한번 꼴로 메시지가 뜬다. 핸들을 가볍게 좌우로 움직이라는 메시지인데 끝까지 핸들을 조종하지 않거나 전방주시를 안 하고 있으면 경고를 먹게 된다.
(실내 카메라가 운전자를 지켜보고 있다) 1주일에 경고 5번 받으면 오토파일럿 기능 사용이 제한된다. (1주일간 쓸 수 없고 1주일 후에 리셋된다)
사람은 간사하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고 자면 꿈꾸고 싶다...
오토파일럿이 편한데 손을 대고 있는 것이 거슬렸다. 손까지 안 대고 있으면 얼마나 더 편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테슬라의 핸들 감지 원리는 핸들의 한쪽에 무게가 가해지는 걸 인식한다. 그래서 양손은 10시와 2시 방향으로 정직하게 잡고 있으면 오히려 핸들을 잡으라는 경고메시지가 자주 뜬다. 처음에는 원리를 잘 몰랐다. 또 경고창의 메시지도 이상했다. 핸들을 잡고 흔들어 보라는 메시지가 뜨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양손을 잡고 있다가 메시지가 뜨면 핸들을 좌우로 흔들었다. 고속에서 차가 양쪽으로 크게 흔들렸다. 이게 맞나? 오히려 더 위험한 것 아닌가 싶었다. 이상해서 테슬라 카페 등을 통해 테슬라가 핸들을 인지하는 원리를 알게 됐다.
양손으로 잡고 있으면 힘이 정확히 분산돼서 핸들에 가해지는 힘이 0이 된다 그러면 핸들을 잡고 있지 않은 것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한 손만 핸들에 걸쳐놓아야 경고창이 뜨지 않는다.
이런 원리라면 핸들의 한쪽에 뭔가를 걸어 놓으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중 마침 차 안에서 먹던 귤봉지가 눈에 띄었다. 귤이 처음에는 15개 정도 있었는데 까서 먹고 남은 건 6~7개와 껍질들이었는데 무게감이 상당했다. 비닐봉지의 손잡이 부분을 조심스럽게 핸들 한쪽에 묶었다. 그리고 손과 발을 뗐다.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도 경고창이 뜨지 않았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 안에서 양손을 놓고 운전석에 앉아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편했다. 핸들에 손을 올리는 것도 큰 에너지가 필요한 일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차선 변경을 하기 위해서는 깜빡이를 넣고 핸들을 내가 직접 조작해야 한다.
귤 비닐봉지가 핸들의 한쪽을 누르고 있는 셈이라 핸들 조작이 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비닐을 묶고 풀 때 핸들에 힘이 가해질 수도 있어서 위험할 것 같았다. 경고창이 안 뜨는 것만 확인하고 풀었다.
그날 밤 집으로 와서 헬스 할 때 손목에 무게감을 더해줄 수 있는 손목 아대형 아령을 주문했다.
가격은 만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굵고 긴 가래떡 형태라 팔목에 감을 수 있는 아령이었다. 무게는 500g.
유연하게 어떤 형태로든 구부러져서 마음에 들었다. 색상도 블랙으로 딱이었다.
주문한 아령을 받고 손목에 감아 봤다. 잘 감기고 무게감도 있다. 운동도 잘되고 테슬라에도 딱 맞을 것 같다.
집에서 두물머리까지 가는 포천-양평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고 아령을 핸들 한쪽에 구부려서 걸어봤다.
비닐봉지보다 간단하게 얹을 수 있고 안전했다. 문제는 경고창이 뜨느냐인데 오파를 걸고 1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도 경고창은 뜨지 않았다. 무게를 확실히 인지하는 것 같다.
그렇게 10분을 주행했을 때 경고창이 떴다. 정확히 문구가 기억나진 않는데 핸들을 흔들라는 게 아니라 고정장치가 인식되었다는 메시지였다. 이걸 어떻게 알았지? 신통하기도 하면서 그러면 한쪽 손가락을 꼭 올려놓고 있어야 하는 건가 싶어서 귀찮아졌다. 그래도 안전을 위해 이상함을 감지하고 메시지로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했다.
메시지를 보자마자 아령을 떼고 원래대로 한 손을 올려놓았다. 아마도 사람의 손은 몇 분 동안 일정한 압력으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아령을 인지한 게 아닌가 싶다.
문제는 이제 테슬라의 오토파일럿 기능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를 알아야 했다.
오토파일럿 기능의 수준과 원리, 개발 방향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정리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