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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Jun 15. 2024

기분이 울렁울렁

떠남은..... 

남편이 작년부터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를 가고 싶다고 하였다.

올해 봄부터 다시 나온 원주 여행을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가 5월이 끝나갈 무렵 계획을 세웠고 짧은 1박 2일 일정을 앞두고 비소식이 들어있는 일기예보 때문에 또 며칠을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가자' 결론을 내렸다.

전날 저녁 간단하게 짐을 싸고  아침 6시에 출발하여 몇 개의 고속도로를 갈아타고 서원주 ic에 도착하니 약 10시 정도가 되었다.

충청도에서 비를 맞고 경기도에서 해를 만나고 들쑥날쑥한 날씨 탓인지 여행하는 묘미가 한층 더해졌다.

원주의 날씨가 약간 흐린 탓에 첫 번째 목적지인 간현 관광지에 위치한 소금산 탐방은 다음날로 미루고 흐린 날씨에 걷기 좋은 뮤지엄 san을 먼저 가기로 했다.

뮤지엄 san 은 많이들 알고 계실 것 같아 간단하게 소개하겠다.

해발 275m 높이, 2만 2천 평 넓이의 뮤지엄 san 은 2005년 이인희 이사장이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의뢰하고 8년여의 건축기간을 거쳐 2013년 개관하였다.

space, art, nature의 명칭에 알맞게 자연, 빛, 그림자, 물, 바람, 노출콘크리트를 주제로 박물관을 설계하였다고 한다.

안도 다다오의 가난하든 부자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자연과 바람, 빛을 느끼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여기저기 드러나 있는 박물관으로 탄생한 것이다.



우리는 10시 반에 도착하여 주변을 가볍게 둘러본 다음 11시와 1시 두 차례에 걸쳐 도슨트의 해설을 들으며 다시 한번 건축물이 지향하는 목적이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을 보게 된 우리들은 진짜 행운아라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해대는 도슨트 님에게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눈빛사인을 보냈지만 사실 나는 우고라는 작가를 그날 처음 알았다.

BTS의 멤버 RM의 방문으로 전 세계 아미들의 ‘성지’로 떠오른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세븐 매직 마운틴, 과 스위스 베른 출신의 동성애자 우고의 불우한 어린 시절이 작품에 배어있다는 설명이 작품보다 우선적으로 귀에 들어왔을 정도로 그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미술관 투어까지 끝난 2시 늦은 점심을 먹고 향한 곳은 '스톤크릭'이라는 카페였는데 빙벽을 앞에 두고 주변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뷰 덕분인지 실내에는 이미 빈자리가 없었다.

2층 테라스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빙벽과 강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마시니 불어오는 바람이 한층 더 마음을 살랑대게 만든다.

한 시간 정도 그렇게 사람구경 경치구경을 하다가 문막읍 반계리에 있는 은행나무를 보러 갔다.


이 나무는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대략 800년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시골마을에 위치한 때문인지 관광객은 나와 남편 둘 뿐인 것 같고 동네 어르신들로 추정되는 할머니 대여섯 분이 캐노피 그늘 아래서 수다를 떨고 계셨다.

거대하게 자리 잡은 은행나무를 고개를 한껏 젖히고 바라보니 내려다보는 나무 입장에서 나란 사람은 얼마나 하찮은 미물이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웅다웅 살아도 800백 년은커녕 100년도 못살인생을 위해 꼴불견스러운 나로 살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잠깐 했다.

그렇게 돌아보고 숙소에 짐을 풀고 30여분을 휴식한 다음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소금산에서 펼쳐질 '나오라 쇼'를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주말 저녁 8시 30분에 시작하는 쇼를 보기 위해 무대 앞 데크 벤치에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우리도 일치감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제법 차가운 밤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고 빛이 사라진 눈앞의 기암절별이 어둑시니처럼 거대한 형상으로 다가올 때쯤 축하공연이 먼저 시작되었다.

조명과 잘 어울리는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잠깐동안의 마이크 테스트를 거친 후 연주를 시작했다.

여름밤의 바이올린 선율로 느낀 김건모 의 '서울의 달'과 아스트로 피아졸라가 작곡한 '리베르탱고(Libertango)'의 바이올린 연주는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것처럼 감동이었다.

두 번째로 올라온 트로트 가수는 마지막 노래로 혜은이 의 '열정'을 무대로 요청한 관객들과 함께 열창하였고 무질서하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신나는 공연으로 무대의 피날레를 장식하였다.

잠시 후 무료공연으로 시작된 '나오라 쇼'를 감상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밤 열 시 가까이 되었다.

우리 방이 있는 층으로 올라가려다 다이닝 룸에서 퍼져 나오는 라면냄새가 어찌나 코를 벌름거리게 하는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간단한 샌드위치와 단백질 음료 한잔을 마신 후 이번 여행의 마지막 장소가 될 소금산으로 향했다.

햇빛은 찬란하고 바람은 선선한 최고의 날씨가 오늘 소금산 트레킹을 한층 더 기대하게 할 듯했다.

사실 소금산은 5-6년 전 처음 출렁다리가 개통되었을 때 다녀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버스를 타고 원주 터미널에 도착하여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소금산으로 이동하였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던 외국인이 내려야 할 곳을 몰라 우리에게 말을 건넨 것이 인연이 되어 그날 하루를 우리 부부와 동행하였다.

에콰도르에서 온 크리스티안이라는 젊은이였는데 순박하게 웃는 표정에 정이 들었는지 함께 다니며 사진 찍고 즐거워서 정이 들었는지 원주 터미널에서 버스 시간 때문에 급하게 손을 흔들고 헤어지는데 생각보다 많이 서운했다.

그렇게 몇 년 만에 다시 이곳을 찾으니 크리스티안 생각도 나고 추운 날씨에 그때 산 위에서 마셨던 믹스커피도 생각이 났다.

원래 있던 출렁다리 외에 잔도, 스카이타워, 울렁 다리가 더 개설되었고 약 2시간 정도의 코스이기 때문에 처음 오르기 시작하고 나무데크 구간만 잠깐 헐떡이면 그다음부터는 식은 죽 먹기이다.

여러 조건의 할인혜택 중에 특이한 건 원주의 '주' 자 와 같은 '주' 자가 지역명의 끝자리에 들어간 지역사람들에게는 입장료가 50% 할인된다는 것이었다.

청주, 여주, 공주, 전주 등 단, 제주와 남양주는 제외되었던 것 같다.

위와 같은 지역분들은 꼭 신분증을 챙겨서 할인혜택을 받으면 좋을 것이다.

일찍 매표를 하고 9시부터 입장하기 위해 한참을 기다렸는데 우리처럼 멀리서 온 사람들에게는 돌아갈 시간 때문에 마음이 좀 조급하기도 하였다.

짧은 코스지만 지루하지 않고 출렁다리는 제법 흔들거려 약간의 스릴도 누릴 수가 있다.

어린애 같은 남편들 몇은(내 남편 포함)  출렁다리에서 양 사이드로 발을 구르며 출렁거림의 속도를 가속화시키다가 옆에 있는 아내들에게 핀잔을 들었다. 


산 은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나 나를 반긴다.

나의 옆에서 일관되게 존재하는 편안한 사람들처럼 산 도 그런 모습으로 나를 따듯하게 품어주는 듯하다.

다시 오길 참 잘했다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고, 짧은 여행이었지만 긴 여운으로 남은 알찬 여행이었다.

'여행'은 나를 숨 쉬게 하는 산소 같은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매 순간 호흡해야 하는 산소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처럼,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평범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와 내게 주어진 현재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떠나야만 하는 필수불가결 한 삶의 요소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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