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타게 부르는 이름을 들었었나 보다. 어젯밤부터 봄비가 내렸다. 늦게 와서 미안했는지 밤잠도 잊고 차분히 차분히 오후까지 내렸다.
지구라는 정수기를 거쳐 내린 비는 3월의 들판에 먹어도 먹어도 취하지 않는 약이 되었다. ‘봄비’라는 약은 공중에 떠도는 질소를 안고 내린다. 질소는 영양생장을 촉진하고 작물과 잎을 무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므로 3월 들판의 종합 비타민이다. 이런 봄비가 내렸으니 산과 들도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또 언제 올지 모를 봄비를 한 방울도 허투루 흘러 보내기 싫었을 것이다. 이런 날은 농부도 마음이 바쁘다.
도식은 포도밭 문안을 봉자에게 부탁했다. 아침 일찍 사모님 두 분을 모시고 상주, 봉화, 영덕으로 출장을 떠났다. 밤에나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도식이 하던 일을 봉자가 해야 하지만 이런 날은 두 손 번쩍 들고 만세를 부른다. 우선은 하루 세끼 밥상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식사 시간에 보는 tv채널도 자유로웠다. 무엇보다도 멀건 대낮에 책을 읽어도 자유로웠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먹을 것도 안 나오는 글 쓴다고 눈치 볼 일 없어서 좋았다.
도식은 베이비 붐 새대 막차를 탄 64년생이다. 가부장적이고 고리차분해서 봉자와 자주 대립각을 세운다. 결혼 전에 잠깐 사회생활 한 것을 빼면 농촌을 떠나 본 적이 없다. 직장을 다닐 때에도 농사짓는 부모님 집에서 다녔기 때문에 농촌을 떠났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봉자 역시도 농부의 딸로 태어나 농부의 아내가 되어 농사를 짓지만 유교사상이 몸에 베인 도식과는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도식은 매우 정적이어서 봉자를 여간 피곤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결혼해서 10년을 살다 보니 이런 도식의 성격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넷이나 두고 헤어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여 봉자가 내린 처방은 농업단체 활동에 가입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단체의 운영진이 되도록 부추겼다. 봉자의 계획은 맞아 들어갔다. 도식은 농업단체 생활에 재미를 붙였다. 임산물 농사가 있었기에 임업단체에까지 활동범위를 넓혔다. 결국에는 시의 단체를 대표하는 장까지 맡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20년이 더 걸린 셈이다. 요즘은 도식이 봉자의 의중을 의도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오늘 있을 임업인 전국대회 개최지 결정을 위해 두 사모님과의 동행은 편안해 보였다. 아니 조금 즐긴다고 해도 봉자는 모른 척해 줄 요량이다.
결혼생활 30년을 훌쩍 넘겨 보니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동지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이라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동지인 것이다. 서로 안쓰러운 마음으로 한 발자국만 물러나서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이 서운하면 도식도 서운 하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도 한 번씩 치켜드는 감정 때문에 서로 맞부딪혀서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러면 상처가 회복될 수 있도록 각자 충분한 시간을 갖는다. 회복이 되면 다시 평생동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봉자가 30년이 넘도록 이어온 결혼생활에서 얻은 철칙이 되었다.
도식이 새벽에 이불속을 살며시 빠져나가고 봉자는 한 참을 더 누웠다가 아침이 시작되었다. 어제 꺼내 놓은 청계란 하나를 프라이해서 사과 한 조각을 담아 아침으로 내놓았다. 딸 넷을 낳고 44세에 얻은 늦둥이 아들 민우의 아침이다. 어김없이 민우와 먹네 안 먹네로 실랑이를 벌인 후 민우를 학교에 태워 주었다.
민우를 내려 주는 학교옆 농협에는 벌써부터 마을 사람들로 북적였다. 농협건물 처마밑에 있는 사람 비를 맞고 있는 사람. 이들은 농협 직원이 출근을 하기도 전에 먼저 출근 도장을 찍은 농부 들이다.
밤새워 내리는 봄비에 마음이 설레어 새벽잠을 설쳤을 것이다. 아마도 아침 일찍 포도밭 한 바퀴 두르고 농협 앞에 모여들었을 것이다. 농협 직원이 출근을 하고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가 커피 한 잔씩 뽑아 들고 나왔을 것이다. 봉자는 이곳을 농협 앞 그 다방이라고 부른다.
민우를 내려주기 위해 차가 농협 앞을 지날 때부터 수많은 눈들이 지켜본다. 민우가 내리고 차가 빠져나올 때까지의 수많은 눈들이 따라 움직인다. 봉자는 그 눈들을 견디기가 버겁다. 시간이 넉넉할 때엔 농협 앞 주차장을 빙 둘러 그들의 시야를 벗어나 민우를 내려 주고 오기도 한다. 도식이 오늘 출장을 가지 않았으면 민우를 데려다주고 농협 앞 그 다방에 합류했을 것이다.
집으로 오는 길, 마을길을 따라 길게 흐르는 냇가에 줄지어 선 벚나무는 간 밤 단비에 바빴는 모양이다. 손톱 끝 만하던 꽃눈이 올록볼록 부풀 대로 부풀어 하루 이틀을 참기에도 숨 가빠 보였다.
어제 심어 놓은 나무들이 궁금해졌다. 집에 오자마자 토닥토닥 봄비를 맞으며 마당 앞으로 갔다. 오일장에서 들여와 심어 놓은 녹차나무 4그루, 남천 9그루, 천리향 1그루가 숨구멍을 있는 대로 열고 비를 맞고 있었다. 달게 젖 먹는 강아지 같이 예뻤다.
봄비가 오는 날은 젖 먹이는 아기엄마의 미소처럼 편안하다. 이런 날은 포도 하우스 창을 여닫을 일도 없다. 가만히 닫아 두어도 온도가 적당하기 때문이다. 귀한 봄비가 어제부터 쉬지 않고 내렸으니 하우스 안의 포도잎도 터질 만큼 싱그럽다. 이제 막 싹을 틔워 100원짜리 동전만 한 이파리가 있는가 하면 이파리가 세 장 네 장 나 온 것도 있다. 포도 순들은 슬슬 봉자의 손을 기다릴 것이다. 작년 농사 끝나고 올농사가 시작되면서 손이 가기 시작하면 적어도 40번 이상의 손길이 닿아야 포도가 시장에 나갈 수 있다. 이제 겨우 5번 손이 갔다. 거름 넣고, 펴고, 가지 치고, 가지 부수고, 부순 것을 펴고, 몇 번의 큰 일은 치렀지만 농사는 이제부터가 본격적이다. 봉자는 많은 일거리를 닥치면 하는 편이다. 믿는 구석도 없다.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면 되었다. 서른한 살이 된 첫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지금껏 그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