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즈막히 잠에서 깨어나 꾸역꾸역 몸을 일으킨다. 비몽사몽 침대 밖으로 벗어나 두 발이 땅바닥에 닿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목이 마르다. 안방 문을 열고 나가 부엌에 가서 단숨에 물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자연스럽게 옆으로 살짝만 시선을 돌리면 검은 유혹이 있다. 아 안되지. 참자. 별로 배고프지는 않지만 뭐라도 뱃속을 채워야겠다. 가장 만만한 간장계란밥을 해 먹는다. 밥솥에서 밥 한 주걱에 노른자 안 터뜨린 계란후라이를 올려 간장 한 스푼, 참기름 한 스푼,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깨 톡톡. 배를 채웠다. 건강한 현대인이 되기 위해 온갖 영양제들을 물 한 컵과 함께 입에 털어 넣고서야 검은 유혹에 못 이기는 척 결국 넘어간다. 진하고 쓴 검은 액체가 온몸에 흐르고 혈중의 카페인 농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몸의 모든 감각들이 활성화된다. 이제서야 정신이 맑아진다. 이렇게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카페인이 든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때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였다. 그 당시에는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 커피빈과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중고등학생들은 캔모아에서 무한리필 토스트와 함께 빙수를 시켜 먹던 시절이었다. 카페인 과다 복용이 필요할 시 편의점에 가서 고카페인 음료를 찾았다. 내가 선호하던 편의점 음료는 빨대를 꽂고 마실 수 있는 스타벅스 라떼였다. 지금도 편의점에서 팔고 있는 그 음료를 볼 때면 그때 사귀었던 선배가 포스트잇 붙인 스타벅스 라떼를 독서실 내 자리에 종종 놓고 갔던 기억이 난다. 풋풋한 추억이 깃든 스벅 라떼다. 십 대 때부터 커피를 가까이해서 그런지 카페인에 별로 예민하지 않은 편이다. 사실 하루에 커피를 여러 잔 마셔도 몸에 큰 변화가 없다. (심지어 잠도 잘 자는 편.) 물론 절대 좋은 현상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이십 대 때는 커피를 물 마시듯 마셨지만, 삼십 대에는 하루에 커피 한두 잔으로 스스로 자제하고 있다. 건강을 챙겨야 할 나이니까 말이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좋아하는 커피와 싫어하는 커피의 맛은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 산미 강한 커피가 좋다. 주로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원두를 고르면 내 입맛에 얼추 맞다. 여행을 가면 맛집보다 커피가 맛있는 카페를 검색해서 찾아다니는 편이고, 동네에는 단골 카페가 여럿 있다. 특히 동네 마실을 나오면 <프릳츠> 카페에 자주 가곤 하는데, 우리 동네를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이유 중에 하나다. 따뜻한 라떼 한 잔에 빵 한 개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남편은 ’배참새가 방앗간에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며 늘 나(배참새)를 놀리곤 한다.
집에는 홈카페 공간도 있다. 주부들은 보통 부엌의 로망이 있다는데, 나는 부엌 한 켠에 홈카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로망이었다. 지금의 우리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그 꿈은 이루어졌고, 나만의 홈카페를 바라만 봐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이 공간에는 세 대의 커피캡슐 머신과 핸드드립 기구들이 있다. 커피캡슐 머신은 돌체구스토, 네스프레소 오리지널과 버츄오 머신이 있는데, 번갈아가면서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다.(사실 집에서 커피 내리기가 너무 귀찮아서 캡슐머신을 구비하다 보니 어쩌다 세 대 씩이나 되었다.)
정말 맛있는 원두를 샀을 때는 정성스럽게 커피 브루잉을 한다. 보통의 노력이 아니다. 브루잉 커피는 에스프레소와 달리, 나만의 취향으로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아날로그한 매력과 커피 원두 본연의 맛을 잘 느낄 수 있어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커피를 내린다. 그 외에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도 시중에 많이 나오지만, 허접하고 애매한 머신을 살 바에는 차라리 안 사는게 낫다는 판단을 내렸고,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는 ‘비싼’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는 카페에 가서 남이 타준 커피를 마신다. 자고로 남타커(남이 타준 커피)가 제일 맛있는 법이다.
나에게 커피 한 잔은 하루를 살 수 있도록 생명력을 불어넣는, 검은 ‘생명수’의 역할을 한다. 하루 분의 생명력 포션을 얻는다. 잔 안에 든 검고 영롱한 샘물을 한 모금 마시는 것은 경건하게 오늘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나만의 의식이다. 지친 오후에 또 한 모금을 홀짝이며 그 시간만큼은 오롯이 나만의 휴식이자 안식처가 되어준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커피 중독이라 해도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래도 살면서 하나쯤은 내가 온전히 쉴 수 있는 무언가에 의존하며 중독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합리화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