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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소일 Mar 23. 2023

서울에서 대형견과 함께 산다는 것은,

프롤로그

  남편과 나는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가족의 모습을 늘 꿈꿨다. 결혼 2년 차에 결국 양가 부모님들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작고 귀여운 소형견도 아닌 무려 대형견을 입양하는 일을 저지르게 된다. 2021년 10월 2일, 당일치기로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제주도에서 태어난 지 3개월 밖에 안된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를 데려왔다. (물론 선 입양, 후 보고였다. 집에 갑자기 어린 짐승 한 마리가 떡 하니 있는 모습을 본 부모님들은 화를 내기커녕 정말로 어처구니없어하셨다.) 신혼부부가 애는 안 낳고 개를 키우다니… 심지어 서울 도심의 아파트에서 대형견을 키우다니...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대형견의 로망은 그저 로망으로만 간직했어야 했는데, 서울에서 대형견과 함께 사는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대형견과 함께 비좁고 팍팍한 도심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살기 위해서 우리는 부단히 노력한다. 층층이 네모난 공동주택에서 아파트 주민들에게 절대 미운털 박히지 않도록 ‘밥풀이=말 잘 듣고 얌전한 큰 강아지’라는 선한 이미지를 심겨준다. 한강을 우리 집 마당 삼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밥풀과 함께 산책을 나간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외향적인 성격인 밥풀을 위해 경의선 숲길에 가서 동네 강아지 친구들을 만난다. 에너지가 넘쳐나는 밥풀을 위해 상암 월드컵공원 내에 있는 반려견 전용 운동장에 가서 한 마리의 야생마처럼 마음껏 뛰어놀게 한다. 밖에 나가서 외식을 하고 싶을 때는 밥풀 혼자 집에 두고 가는 것이 내심 안쓰러워서 함께 갈 수 있는 ‘대형견 동반‘식당을 찾아 헤맨다.(반려동물 동반 식당이라고 찾으면 대형견은 동반 불가능한 곳이 의외로 많다.) 우리는 우리를 도시의 틀에 최대한 잘 끼워 맞추고 순응하면서 대형견과 함께 살아간다.



 사람 일은 정말 아무도 모른다. 어릴 적에 애완동물(그 당시에는 이렇게 불렸다. 사랑하는 장난감…)이라고는 고작 거북이, 금붕어, 햄스터만 키워봤던 내가, 생명공학 전공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반려동물 종양 검사에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반려동물에 관심이 생기면서 유기견을 임시보호하는 첫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엔 대형견을 입양하면서 하루하루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람의 하루는 반려동물의 일주일과 같다. 우리에게 ‘밥풀’은 삶의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밥풀은 우리가 세상의 전부기에 매일 밥풀과 함께 일주일 같은 하루를 보낸다. 슬프게도 대형견은 소형견보다 수명이 짧은 편이라서 평균 십 년 정도 산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동안 밥풀에게 후회 없이 사랑을 쏟아붓는다. 나중에 아빠, 엄마가 천국에 도착하면,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밥풀이가 행복한 기억만을 안고 우리를 향해 밝게 웃어주면서 마중 나올 수 있도록 네게 최선을 다할 거야.



 밥풀과 함께 다니다 보면 항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사람들이 종종 말을 건다. 하긴, 155cm의 작은 체구의 여자가 30kg나 되는 큰 개와 함께 쫄래쫄래 다니니 이해는 된다. 같은 동에 사는 이웃 아주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아이고, 새댁이 질질 끌려가겠어. 너가 엄마 좀 태우고 다녀.“ 농담 반, 걱정 반 말을 건네신다. 어느 날에는 갑자기 한 사람이 다가와서는 대형견을 키우고 싶은 로망을 대뜸 고백하시면서 길 한가운데 서서 삼십 분 넘도록 입양 상담을 한 적도 있다. 사실 파워E 성격인 밥풀과 다르게 내향적인 나는 밥풀과 함께 다니는 것이 때로는 부담스럽지만, 밥풀이 아니었다면 내가 서울에서 낯선 사람들과 이렇게 스몰토크를 할 수 있을까 싶다. 덕분에 정 없는 서울 사람들과 서로 눈길과 말을 주고 건네며 서울과 유대를 쌓는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자주 건네는 질문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글로 남기고자 한다. 이 또한 밥풀과의 소중한 추억이 될테니까. 글로 밥풀과의 추억을 차곡차곡 쌓는다. (더불어 우연히 나의 글을 읽은 사람들이 대형견의 로망을 깨부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서울 마포구 어느 한 아파트에서 남편과 나, 그리고 대형견 ‘밥풀’과 함께 사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밥풀 인스타그램  |  @kimbobpur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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